참관과 이해 사이의 간극
나는 때때로 가보지 않은 전시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국내 또는 해외의 다양한 전시회에 참가하는 기업들의 전시 준비를 위한 강의나 컨설팅, 언론 기고,또는 산업의 트렌드 파악을 위해서라도 비록 보지 않았지만 본 것처럼 이야기해야 할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자문한다. '보지 않고도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종종 우리가 직접 본 것에 의존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시회에 참가한 기업들은 그들이 만난 사람들, 부스 방문객, 전시회 참가 기업들의 제품들을 통해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에 3-4일 내내 부스에만 머무르는 기업들은 자신의 제품 전시만 신경 쓰는 나머지 전시회의 성격과 의미, 방향성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시회 방문객 역시도 전시회를 보기는 했지만 그 흐름을 이해하지는 못하는 일도 흔하다. 전시회를 본다고 그 전시회를 이해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수없이 많은 전시회를 일일이 가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마치 전시회를 가본 것처럼말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 직접 보지 않아도, 그 전시회가 어떤 메시지를 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전시회 공식 홈페이지에는 올해 개최되는 전시회의 개요와 참가업체 리스트, 세미나 주제 및 연사 등 다양한 정보가 게시되어 있다. 이중에서도 전시회의 질을 평가할 때 우선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전시회 총 개최 면적 대비 순 전시 면적의 비율이다. 흔히 주최자가 발표하는 면적은 부스 면적과 부대 행사 면적을 합한 총(Gross) 개최면적이다. 그러나 전시회의 질을 평가하려면 기업들의 부스가 참여한 순(Net) 전시 면적을 알아야 한다. 평균적으로 순 전시면적이 총 개최면적의 60%를 차지하면 베스트라고 볼 수 있다. 60% 이상은 사실상 부대시설 면적이 포함되어야 하므로 쉽지 않다.
참가기업 리스트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정보원이다. 그중에서도 올해 가장 우수한 기업이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은 전시회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시회의 Award 수상 기업 또는 Speech 기업이 누구인지를 파악하면 그 산업의 현재 리딩 브랜드와 리더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전시회에 대한 리뷰, 유튜버 참관기 등이 있지만 이런 논평은 자칫 편향된 정보를 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좋은 전시회란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서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참가업체 규모나 관람객 숫자를 따질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혁신적 기업의 참여 여부와 세미나의 주제 등을 놓고 평가할 수도 있다. 즉 자신만의 좋은 전시회의 기준이 있어야 타인의 분석에 끌려가지 않고 전시회를 주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전시회를 통해 우리 기업의 존재 가치가 빛이 날 수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Award를 통한 언론 노출 기회나 Speech를 통한 IR 투자자 발굴 기회가 있는지, 또한 바이어와의 미팅 및 기업 행사를 위한 이벤트 공간이 있는지, CEO/CMO 등 C-level의 미팅을 위한 별도의 미팅 라운지나 Ceremony 공간이 있는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바이어 매칭을 위한 매치 메이킹 플랫폼이나 사전 미디어 홍보 기회 등 다양한 자신만의 전시회 평가 기준을 세워두고 전시회를 논할 수 있어야 한다.이외에도 산업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는 세미나 주제와 연사의 적절성도 해당 전시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보지 않은 전시회에 대해 말할 때, 혹은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의견을 전할 때 신뢰를 얻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솔직하게 전제를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직접 다녀오지는 않았지만, 공식 자료와 참가사 리스트, 현장 후기 등을 바탕으로 분석했다”는 한마디가 청중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린다. 무리하게 ‘아는 척’하는 태도는 오히려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다.
또한 출처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막연히 “자료를 봤다”라고 말하기보다는 “참가사 20곳의 리스트와 주요 제품군, 유튜브 참관기를 참고했다”라고 하면 정보에 근거한 판단임을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이 청중의 신뢰를 쌓는다.
여기에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태도가 더해지면 전달력은 훨씬 높아진다. 데이터와 팩트를 먼저 보여주고, 그 위에 해석과 의견을 덧붙이면 청중은 자연스럽게 그 논리를 따라가게 된다. 또한 “현장에 있었던 분들은 다른 의견을 가질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반론과 질문의 여지를 열어두는 자세 역시 중요한 신뢰의 표현이다. 강요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자는 태도가 사람을 움직인다.
무엇보다 사례를 곁들이는 것은 큰 힘이 된다. 비슷한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전략을 세운 기업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그 말은 추상적인 설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조언이 된다. 마지막으로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서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시사점까지 제시할 때, 청중은 그 말을 실질적인 가치로 받아들인다. 신뢰는 그렇게, 겸손한 태도와 구체적인 근거, 열린 자세 위에 쌓인다.
현장에서의 생생한 체험은 강렬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 강렬함이 너무 가까워서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부스, 북적이는 사람들, 현장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중요한 맥락을 놓치기도 한다. 마치 한 장의 사진만으로 그 전시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현장의 일부 조각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전시장 바깥에서 그 전시를 이해하려 애쓴다. 누가 그 전시회에 참여했는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는가, 무엇을 강조했고, 어떤 시장과 고객을 향해 열려 있었는가. 현장의 생동감을 직접 느끼지 않아도, 전시회를 구성하는 의도와 전략, 그 배경을 읽어내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전시회는 단순히 ‘보는 것’의 영역이 아니라, ‘읽고 해석하는 것’의 영역이기도 하다. 현장 안에서 놓치기 쉬운 큰 그림을 그 바깥에서 더 명확히 볼 수 있을 때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