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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Apr 21. 2025

카지노 게임가 윗집에 산다-1

“꼭 그래야겠니? 우리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야.”

“그래, 나도 바빠서 너희들 사는 것까지 신경 쓸 수 없어. 기껏해야 아침 출근길에 밥은 먹고 가는지 계란 프라이 정도 해서 갖다 줄 수는 있겠지만.”


신혼집 계약을 앞두고 시부모님이 내심, 아니 대놓고 서운함을 표현했다. 당신들이 살고 계신 건물에 들어와 살라는 제안을 거절했더니 섭섭하다 하셨다. 30년 넘게 끼고 살던 아들이 결혼하는데 돈을 달라 한 것도 아니고 각자의 돈을 합쳐 전셋집을 구하겠다는데도 죄를 지은 것처럼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감히 며느리 주제에 시부모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인이었다. 대놓고 못된 소리를 한 이는 없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아마도 K 며느리였기 때문이겠지.

남편은 상관없다 했지만 영진에게는 상관있었다. 물론 먼저 결혼 생활을 시작한 다른 K 며느리들의 반대도 크게 한몫카지노 게임. 다른 건 몰라도 시부모님과 같은 건물에 사는 것만은 양보하면 안 된다는 게 그녀들의 의견이었다. 결혼하고 나면 시댁이든 친정이든 최대한 거리를 두는 게 옳다고 했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였다. 시부모님 보란 듯이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 반대쪽까지 꾸역꾸역 날아가 전셋집을 구해 자리를 잡았다. 연고지도 없는 그곳은 영진에게도 낯선 동네였지만 그래서 좋았다. 새출발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나를 아는 이가 없는 동네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라니, 다시 태어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물론 친정과도 거리가 멀어졌기에 그것 또한 마음에 들었다. 영진은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은 독립된 가정을 꿈꿨으니까. 단란한 ‘우리만의 둥지’를 바랐다.

시댁에 가게 되는 날이면 마치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아들을 반기듯 유난을 떨며 버선발로 뛰어나오셨다. ‘오랜만에 왔는데’ 자고 가라고 조르는 시부모님의 말과 행동을 볼 때마다 본인의 선택에 확신을 가졌다. 이 정도 거리도 부족하다 여겼다. 시부모님 호출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자신의 센스에 감탄하며 신혼 생활을 즐겼다. 시부모님의 원망과 아쉬움이 섞인 눈빛 따위 애써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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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진의 독립생활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카지노 게임. 남편의 사업이 망카지노 게임. 그냥 망한 것도 아니고 쫄딱 망카지노 게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은 회사를 그만뒀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나 뭐라나. 처음엔 제법 잘 되어 일손을 돕기 위해 영진마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카지노 게임. 덕분에 그의 꿈을 함께한 대가로 사이좋게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번듯한 회사였는데, 꿈을 펼치고 싶다더니 모든 걸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이런 게 그의 꿈은 아니었을 텐데.

‘이렇게 말아 먹을 거면 국숫집을 하지 그랬어.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사람이 살다 보면 실패도 할 수 있고, 실패를 거름 삼아 성장하면 된다는 마음에 없는 소리 따위 나오지 않았다. 만약 남의 일이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거짓말까지 하며 그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사업이 하고 싶었으면 결혼 전에 했어야지 굳이!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영진이 회사를 그만둘 때쯤 임신 사실을 알았다. 마침, 임신과 동시에 몸이 안 좋아져 핑계 김에 퇴사했고 이제는 갓난쟁이 아이까지 있는데, 세 식구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었다. 암담카지노 게임. 그럼에도 특유의 쾌활함으로 ‘오빠만 믿어’라고 말하는 입을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어쩜 이렇게 무책임할 수가.


그의 밝고 당당한 모습이 좋았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꽃다발을 사 들고 나타나 허허 웃는 그의 해맑음이 좋았고, 속상한 일이 생길 때마다 웃게 해주는 그의 유쾌함이 좋았다. 조금은 차분한 편인 영진과 달리 탁구공처럼 통통 튀는 그의 밝음에 전염되는 것 같아 결혼까지 결심카지노 게임. 하지만 지금은 그의 밝음이 싫다. 당장 먹고살 길도 찾지 않으면서 생각 없이 웃고만 있는 그의 무책임한 모습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 흔한 말이지만, 너 없으면 못살 것 같던 그는 너 때문에 못살 것 같은 그가 되었다.

현실을 탓하며 우울할 틈도 없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많았다. 빚을 갚아야 카지노 게임. 적금을 깨고 퇴직금을 끌어모아 시작했기에 돈이 없었다. 아무리 추가 대출을 알아봐도 실직자 남편과 무직인 영진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없었다. 전셋집을 내놓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돌아오는 건 통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말과 허공에서 맴돌다 끊어지는 연결음이 전부였다. 그렇게 영혼까지 내어줄 것 같은 친구 관계는 간단하게 정리됐다.

지금껏 삶에 회의감이 들었다. 모두에게 외면을 당했고 품 안에 아기는 영진과 함께 울기만 카지노 게임. 매일 걸려 오는 독촉 전화와 집 안 여기저기 붙어있는 빨간 딱지만 현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더 이상 몰릴 궁지가 없는 것 같았지만 놀랍게도 매일 새로운 일이 터져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게 두려웠다.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30대 부부. 갓난쟁이 아이도 함께”라는 타이틀로 뉴스 한 꼭지를 장식한다 해도 무리가 없을듯카지노 게임.


“그래, 이렇게 살아서 뭐 해. 차라리 같이 죽자.”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영진이 우는 아기를 끌어안고 남편에게 달려들려고 한 날, 카지노 게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밑에 집 나가라고 카지노 게임. 들어와서 살아. 사무실 한 칸도 내줄 테니 다시 시작해. 세는 안 받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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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고 해야 할지, 왜 기회를 주냐고 원망해야 할지.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남편은 신이 나 1초의 망설임이나 상의 따위 없이 알겠다고 답카지노 게임. 사실 선택권이 없기도 했지만, 똥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드는 그의 모습이 영 못마땅카지노 게임. 시부모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는 건 내키지 않았지만, 그의 말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선택이란 것은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니까.

얼마 남지 않은 짐을 챙겨 죄인의 마음으로 시부모님 건물에 들어가기로 했고, 카지노 게임의 마음이야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들에게 다시 집이 생겼다. 분명 사업이 망한 건 남편이고 시부모님의 아들이었는데 죄인은 그녀였다. 아래층 작은 사무실에 책상과 컴퓨터를 가져다 놓고 새출발을 도모하는 남편은 당당했지만, 위층에 살고 계신 시부모님을 향해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건 오히려 카지노 게임 쪽이었다. 밑에서 밀어 올리고 위에서 찍어 누르는 그 사이에 갇히고 말았다. 폐차 당하는 자동차처럼 힘껏 찌그러질 뿐이다. 제대로 숨조차 쉴 수가 없다.

시부모님은 분명 좋은 분들이시다. 몇 년 동안 세입자들과 관계도 좋았고, 건물도 직접 청소하셨다. 어느 한 군데도 시부모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이 많아 많은 것을 나눌 줄 알고 늘 나눠주고 친절카지노 게임. 다만, 그들의 상냥함은 물리적인 거리가 유지될 때의 이야기다.

건물 입구를 함께 쓰고 위아래 오가며 하루 종일 부딪혀야 하는 카지노 게임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시부모님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녀와는 맞지 않았다.

‘친정엄마와는 같이 못 살아도 카지노 게임와는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농담처럼 뱉었던 말이 영진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이래서 말할 때는 신중히 해야 한다고 하나보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을까. 차라리 친정엄마였으면 화라도 냈을 텐데, 망한 아들 내외를 거두어주신 천사 같은 분들에게 반기를 들 수 없었다. 다만 매일 얼굴을 맞대며 지내다 보니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카지노 게임. 어쩌면 그래서 불편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적당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잠투정하는 아기가 울면 문이 벌컥 열리며 ‘왜 애를 울리니?’라는 차가운 한마디를 내려놓고 아기를 안고 나가셨다. 마치 맡겨놓은 물건 가져가는 것처럼, 아기를 울리기나 하는 매정한 엄마라는 듯 흘겨보는 눈빛에 이유 없이 작아졌다. 아기에게 이유식을 먹이는 동안 또 문을 열고 들어와 ‘집에 있으면서 밖에 비 오는 것도 몰랐니’라며 옥상에서 걷은 젖은 빨래를 우르르 쏟아냈다. 먹은 것을 전부 게워 낸 것처럼 바닥에 쌓인 축축한 빨래를 쭈그리고 한데 모았다. 쭈글쭈글한 빨래는 한없이 초라해진 자기 모습 같아 속이 상했지만 그럼에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영진은 틈이 나면 아기를 업은 채 남편 사무실에서 일을 도왔다. 워낙에 작은 체구의 그녀였기에 등에 매달려있는 아기의 무게는 하루하루 다르게 무거워져 힘에 부쳤다. 영진의 목을 조르는 모든 것들이 뭉쳐진 것 같았다. 휘청거리며 하루하루 버텼다. 혹시라도 남편과 언성이 높아지기라도 하면 ‘무슨 일인데 이렇게 시끄럽니?’라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리기도 카지노 게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예고도 없이 열리는 문밖으로 도망치고 싶었지만 등에 업고 있던 작은 아기는 거대한 족쇄 같아 영진을 꽉 움켜쥐고 놔주지 않았다.

하다못해 쌀독의 크기부터 간장의 위치까지 주방일부터 청소하는 스타일, 식사 시간, 부부 관계까지 어느 하나 시부모님의 관심이 아닌 것이 없었다. 마트에서 배달시킨 상자를 멋대로 뜯어 아기 이유식 재료로 산 소고기를 본인 반찬에 올리기도 했고 ‘우리 때는 다 이렇게 키웠다’라며 입에 넣고 씹던 고기를 아기의 빨간 혀에 올리셨다. 손 탄다고 안아주지 말라 참견하더니 품 안에서 내려놓지를 않는다. 덕분에 아기를 종일 안고 있거나 업고 있어야 했지만, 또 손 탄다고 그마저도 뺏어가기 일쑤였다. 마치 본인의 아기를 키우는 것처럼 혹은 그때 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누리고 싶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차라리 지금이라도 하나 더 낳으라고 하고 싶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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