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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우 Apr 29. 2025

싱글 카지노 게임 산다는 것(295)

중소기업의 카지노 게임 A 씨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늘 생글생글 웃는 인상이 인상적인 남자 그가 회사에서 맡은 일은 배송이었다 회사 소유의 스타렉스를 몰고 거래처를 돌며 물건을 전달하는 비교적 단순한 일이었다


게다가 동종 업계 다른 회사와는 다르게 그는 오후에만 일하는 파트타이머였다(보통은 풀타임 근무자를 많이 뽑는다)

일한 지 오래된 덕분인지 그는 아르바이트생 신분임에도 카지노 게임이라는 호칭을 달고 있었다


(조그만 회사에서 직급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아마도 사장님이 나이 많은 직원에게 예우 차원에서 붙여준 호칭이었을 것이다)


당시엔 내가 직접 부딪힐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른 부서의 부장과는 종종 마찰이 있는 것 같았다



“오늘 배송이 너무 많아서 다 못합니다.”


“...”



배송이 본인 일인데도 너무 많아서 못하겠다는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통은 다 들고나갔다가 못한 건 다시 들고 들어오는 법인데 아예 처음부터 못하겠다고 하는 건 처음이네.’



늘 웃는 얼굴과는 다르게 단호한 그 태도는 마냥 좋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당시 업계 7년 차의 베테랑이었음에도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 팀원 신분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이사를 하고 내가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전에 부딪히던 부장은 외근 위주로 바뀌었고 대신 나와 카지노 게임 A 씨 사이에 마찰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시절 나도 해봤던 업무임에도 그는 시외 일정이 잡히면


“시외 나가야 해서 안 된다”


배송 수량이 많으면


“너무 많아서 못 하겠다”며 반복적으로 업무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오전 시간대에 일하는배송 아르바이트생은 오전에 쌓인 물건을 거의 다 처리하고 퇴근하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들고나가시고 도는 중에 시간이 부족하면 못한 건 다시 들고 오세요제가 퇴근하면서라도 대신 전달해 드릴 테니까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는 나에게 말도 없이 사장님에게 직접 연락을 해버렸다 결국 사장님이 회의를 소집했고 도리어 내가 질책을 당하고 말았다.



“배송이 너무 많으면 여기서 처리하면 안 되는 거예요?”


“본인이 많다고 한 거고, 저는 충분히 가능한 양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에게 팀원 관리를 맡기셨으면 카지노 게임님이 직접 연락했을 때 저와 먼저 이야기하라고 하셨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배송직원이 배송을 못하겠다고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이후 사무실 남직원 한 명이, A 카지노 게임이 힘들다고 할 때면 회사 근처 물건을 대신 배달해 주기 시작했다하지만 며칠 후 또 사건이 터졌다사무실로 주정차 위반 딱지가 날아온 것이다 범인은다름 아닌 A 카지노 게임이었다그날도 그는 일이 많다고 투덜대며 몇 개의 배송 건을 남직원이 대신 처리해 줬던 날이었다.하지만 그는 그 와중에 주정차 위반 구역에 주차한 채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편히 눈을 감고 있던 사진이 찍혀있었다.


더 황당했던 건 사장님의 반응이었다



“A 카지노 게임한테는 이야기하지 말아요.”


도와줬던 남직원이 내게 묻는다.


“A 카지노 게임님,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예요?”


“아닐걸요?”


“근데 왜 저렇게 쩔쩔 매요?”


“그러게요. 난들 알겠습니까. 위에서 그러라면 그러는 거지.”



그리고 최근, 또다시 일이 터졌다일이 많다며 투덜대던 A 카지노 게임에게 사무실의 다른 팀장이 날카롭게 말했다.



“맨날 많다고만 하시고 안 된다고만 하시고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드려야 합니까?”



결국 A 카지노 게임은 또 사장님께 직접 보고했고, 나는 또 한 번 팀장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사장실로 끌려갔다그 주가 끝나고 나는 처음으로 A 카지노 게임과 직접 업무 이야기를 나눴다.



“카지노 게임님, 배송이 쉬울 것 같으세요? 아니면 창고 물류가 쉬울 것 같으세요?카지노 게임님 업무가 뭐시죠?”



대답이 없다.



“저는 영업도 했었고, 배송 납품도 했고, 물류도 했어요 이 업계에서만 9년 차입니다 카지노 게임님이 전에 어디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배송만 하셨잖아요 그런데 제가 다녀본 어느 회사에서도 배송 담당자가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못하겠다는 말부터 하는 건 처음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일이 많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카지노 게임님 일이에요 다 못 하시겠으면 가져오시라고 했고, 많으면 데이터를 만들어서 며칠 몇 건, 어디 어디 돌았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사장님께 말씀드리겠다고 했습니다그리고 저보다 어른이시잖아요어느 회사에서 문제 생겼다고 직속 상사 건너뛰고 사장님께 바로 갑니까? 제가팀장인데 왜 카지노 게임님 배송 건 때문에 사장님께 갈굼을 당해야 합니까?왜 제가 회사를 관둬야 하나, 이런 생각까지 해야 합니까?그리고 말씀 안 드리려고 했는데, 알고는 계셔야 해서요몇 주 전에 일 많다고 몇 건 두고 가셨던 날 있잖아요그날, 나무 그늘 아래서 낮잠 주무시다가 주정차 딱지 끊어 오셨어요 본인은 말을 안 해서 모르시겠지만그게 일이 많다는 사람의 행동입니까?그래서 지금 카지노 게임님이 아무리 많다, 힘들다 해도 믿음이 안 가는 것 아닙니까배송 담당은 카지노 게임님입니다. 제 일 아니에요여기 대기업도 아니고, 각자 맡은 일만 해도 인원 부족으로 힘든 회사예요그런데 본인 일이 하기 싫으시면 그럼 어쩌란 말입니까?”



그 뒤로 A 카지노 게임은 사표를 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사장님께 연락해 사표를 취소하겠다고 했다 다른 곳을 알아봤었는지 아니면 이 회사가 그나마 괜찮다고 판단한 건지는 모르겠다하지만 남은 직원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왜 사람들이 그토록 대기업 대기업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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