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생님' 도전기_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3월호 주제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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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를 만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겨울 내내 찬 서리 맞으며 자라난 민들레 꽃 한 송이가 만나게 해 준 인연이었다. 원하지 않았던 과에 입학하면서 적응이 어려웠다. 수업이 들어가기 싫다는 이유로 매일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새는 줄 모른다 했던가? 관심 없는 학과 수업을 들으러 가기보다 피시방에서 음악 들으며 노는 게 더 재밌고 신난 나란 여자... 고등학교 때도 조용히 학교 잘 다녔고 할 일은 하자 주의였던 내가 가기 싫은 대학에 떠밀려 가면서 뒤늦은 ‘사춘기’가 왔다. 일명 조용한 날라리 대학생이라 하겠다. 1학년 내내 피시방을 떠돌며 놀기 바빴다. 맨날 수업을 제치고 놀다 보니 과목마다 점수가 바닥을 기었다. 1년 가까운 시간을 하는 것 없이 배부른 돼지처럼 놀기만 했다.
교육과에 관심도 없는 애가 교육 전공 공부를 하려니 이보다 지루한 일이 어디 있나 싶더라. 어쨌든 엄마한테 맞아 죽지 않으려면 전공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졸업은 해야 했다. 계절학기로 구멍 난학점을 메우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20살이 넘어서 찾아온 권태기 같은 학교 생활은 지루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졸업’이라는 의무적인 생각뿐인데 나보고 실습을 나가라니... 와! 생각만 해도 재미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흐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했다. 내 삶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 꽃’이 피어나는 시간이 올 거라고생각지 못했다. 실습도 학력적으로 ‘대학 졸업장’을 얻기 위해 나가는 셈이다.
시린 겨울이 지나고 민들레가 피어나는 화창한 봄. 짧은 기간 함께 하게 될 아이들을 만났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5명. 그중에 여자아이를 전담하게 되었다. 꼬맹이와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은 그때부터였다.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민들레꽃이 피는 계절 꼬맹이는 인사를 하고부터 내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너무 편안한 복장으로 가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뒤를 쫄랑쫄랑 따라다니며 내가 뭘 하는지 계속 노려보는 느낌이었다. 청바지에 편안한 면 티셔츠, 재킷하나 걸치고 다니는 게편했던 때였다. 며칠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내 셔츠를 잡아당겼다. 손을 달라며 뻗길래 내어주니 새끼손가락을 꼭 쥐고서 하얗게 꽃씨를 품은 민들레가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속으로 ‘얜 뭐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귀엽다는 생각에 순순히 따라갔다.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려 여기저기 하얗게 눈꽃처럼 퍼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홀씨를 보며 세상을 다 가진 듯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노란색원피스에 하얀 레이스가 달려 있고 까맣고 살짝 웨이브가 진 기다란 머리카락을 한 녀석은 처음으로 웃었다. 음표를 그리며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를 보는 게‘저렇게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아이구나’라는 생각과 그 웃음에 이끌려 관찰 일지는 이 녀석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점심시간이면 꼬맹이와 함께 운동장 가장자리를 돌아다니는 게 내 일과가 되었다. 매일 보는 민들레 홀씨인데 바람이 불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꺾어다가 입 앞에 대고 후후~ 하고 불면서 돌아다녔다. 매일 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팔랑팔랑 뛰어다니는 꼬맹이의 밝은 웃음은 내게도 전염된 것 같았다. 어느샌가 나도 홀씨 불기에 동참하며 신나게 웃었다. 그렇게 신나게 뛰어다녀본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는데 이 녀석을 쫓아다니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도 신났다.
실습시간이 끝나가는지도 모르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머니를 기다리며 같이 쫓아다녔다. 어머니가 오신 줄도 모르고 세상 신나서 둘이 민들레만 찾아 쫓아다니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집에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는 다정한 어머니의 말씀... 그제야 이 녀석과 헤어져야 함을 직감했다. 실습기간이 이렇게 짧았었나 싶을 만큼 온라인 카지노 게임랑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담임 선생님께서 날 부르시더니 아이의 어머니시라며 인사를 시켜주셨다. 수영이 어머니께서는 다짜고짜 내 손을 잡으시면서 감사하다고 고개를 몇 번이나 떨구시며 인사를 하셨다. 혹시나 ‘아이가 학교에서 위험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까?’ ‘혹여나 미움받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잠도 못 주무시고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내 아이를 겪고 있는 지금에서야 그때 수영이 어머니가 두 손 맞잡으며 인사하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실습을 무사히 ‘해냈다’라는 성취감보다 이 녀석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 난 며칠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나 보다. 두 손을 잡아주신 어머니께 “수영이를 맡을 수 있어서 오히려 제가 즐거운 마음으로 잘 마칠 수 있었어요.”라며 인사를 드렸다. 그제야 안심하신 듯한 어머니께서 “선생님, 수영이가 학교만 갔다 오면 즐거워했어요. 말도 잘 안 되는 애가 쫑알쫑알 떠드는 걸 처음 봤어요.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이 빨개졌다. 터져 올라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고 “제가 오히려 행운이었어요.선생님도 아닌 제게 ‘선생님’이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랑 전화번호 교환해요. 어머니.”
난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땐 지금처럼 스마트 폰이 아니라 폴더식 핸드폰이었는데 작고 귀여운 기종도 많았다. 대학교 올라가면서 처음 받은 핸드폰이 신기했는데 1번에 저장번호가 새겨졌다. 가족들이 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을 시기는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엄마가 마지못해 해 주신 핸드폰에 수영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번호를 찍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연락이 오실 줄 알았으나 연락하지 않으셨다.
실습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왔으니 관찰일지를 써서 제출해야 되는데 이상하게 꼬맹이에 대해 쓰고 싶지 않았다. 처음엔 제일 조용해 보여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했던 관찰 대상인 아이가 이렇게 깊숙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될 줄 몰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그때도 유명한 케이스들이 많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연구를 한다. 내가 사랑한 꼬맹이 녀석은 예쁘장한 원피스에 맑은 눈을 반짝이며 민들레 홀씨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귀여운 꼬맹이었다. 결론은 난 관찰일지를 제출하지 못했고 졸업을 포기했다.
엄마한테 신나게 두들겨 맞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난 그때 관찰일지를 제출하지 않은 것 대해서 일말의 미련도 후회도 남기지 않았다. 이후에 어머니께서 가끔씩 연락을 하셔서 통화도 했는데 내 핸드폰 기종과 번호가 바뀌면서 연락이 끊겼다. 그 꼬맹이는 내게 유일한 기쁨으로 남은 녀석이고, 별 볼일 없고 흥미 없었던 대학생활 마지막을 행복한 기억으로 남겨주었다. 수영이는 유일하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준 어머니의 딸이고, 민들레 꽃만 보면 배시시 웃게 만드는 꽃바람을 가진 나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