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건 가끔 서글프기까지 하다.
국민학교 6학년 동창회가 있던 날 친구들은 시험을 보았고 아이큐 검사를 했던 날을 얘기했다.
난 한 번도 시험을 본 기억이 없다. 내 아이큐가 몇이었는지도 모른다.
학교 앞 문방구는 2층가정집 1층을 문구점으로 개조해 운영을 하던 곳이었는데
친구들의 기억 속에 그 문방구 앞에서 뽑기를 하며 앉아 있었 모습과 점심시간 문방구 2층집에 올라가는
계단에 걸터앉아 컵라면을 먹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고작 나라는 아이의 기억이 뽑기와 컵라면이라니.
다행히도 20대에 만난 친구들의 앞에 서 있는 난 제법 멋들어진 아이로 변해있었기에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다. 속으론 지질하다 못해 지질했던 날 기억하는 이 친구들을 언제까지 만나야 할까 심각한 고민도 했었다.
1997년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의 자영업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되었고 슈퍼마켓에 딸린 방 두 칸에서
우리 여섯 식구의 판자촌을 벗어난 생활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되었다.
난 매일 한 봉지씩 새로운 과자의 맛을 보았고 엄마의 살림을 돕기 위해 늘 집에 오셨던 외할머니는
가게에 팔 물건을 축낸다며 등짝을 때리시곤 했다.
"내버려두어 엄마, 못 먹던 거 질릴 때까지 먹게"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먹고 싶은 것 하나 마음대로 먹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었다.
엄마의 생각대로 매일 한 봉지씩 뜯어대던 과자들은 신제품이 나올 때 맛보는 정도로 끝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게 아래에는 오락실이 하나 있었는데 50원에 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용돈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돈이 필요해도 나에겐 구실이 없었다.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온갖 주전부리와 간식들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기에
어디 가서 껌하나 사 먹겠다 돈을 달라고 할 수 없었다.
나의 유일한 용돈은 카운터 뒤, 진열대 사이, 아이스크림 냉동고 바닥을 기다란 막대기로 휘저어 나오는
동전들이었다. 그 기다란 막대는 새시문을 내리는 도구의 쇠꼬챙이였다.
우연히 가게에 앉아 있다 손님이 떨어뜨린 동전이 또르르 음료냉장고 밑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다.
손님은 얼굴을 바닥에 붙여 요리조리 찾아보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간 동전을 꺼낼 수 없었다.
처량한 눈빛으로 주인인 엄마에게 내 돈을 돌려다오 바라봤지만 엄마는 내 알바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전이 10원짜리인지 500원짜리인지 알 길이 없으니 내어줄 수 없었을 거라.
그때였다.
내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간 것.
허망하게 굴러들어간 동전들의 주인은 줍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수시로 냉장고 밑을 뒤졌고 먼지와 쓰레기들이 뒤엉켜 십 원짜리부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짜리까지 간간히 발견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짜리라도 찾는 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엄마는 어이없이 웃었지만 나의 노력을 가상하게 생각했는지 이리저리 바닥을 휘젓고 다니는 날
특별히 제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주운 동전으로 난 오락실을 갔다. 그래도 돈이 남으면 건너편 슈퍼에 가서 껌이나 젤리를 샀다.
우리 집에 널리고 널렸지만 내 돈으로 무언갈 사고 싶었던 것 같다.
슈퍼마켓을 인수하시고 하루도 쉬지 않고 아침 6시에 문을 열어 밤 12시가 되도록 불이 켜있었다.
18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둘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결혼식을 대전에서 치르는 바람에 딱 하루를 쉰 것 말고는
큰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결혼을 한 날도 오후에 아빠는 가게 문을 여셨다.
국민학교 3학년 즈음에 처음으로 우리 가게에 일하는 언니가 들어왔다.
아마 이쯤 부모님은 쉼이 필요했었나 보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교를 하고 돌아오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있었다.
나에게 참 잘해주었던 기억이다.
난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교묘하게 잘 이용(?)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만 줘 언니."
"엄마한테 허락받았어?"
"아니, 줘 그냥 주면 안 돼?"
"안돼,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혼난단 말이야"
거짓말이었다. 그 당시 가게 금고는 누구나 손만 닿으면 열 수 있었다. 단지 그 구역에 들어오지 못할 뿐.
부모님의 부재에 통신수단이라고는 가게 전화뿐이니 허락받을 리 만무했다.
"엄마한테 말 안 하면 되잖아, 주라, 줘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손님이 오면 일어나 원하는 제품을 찾아주고 카운터로 와 계산을 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난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을 외쳤고 간지럼을 태우며 "달라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
참 징그럽게도 괴롭히고 나서야 언니는 금고를 열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을 손에 쥐어주었다.
이젠 바닥을 기어 다니며 동전을 긁어모으지 않고도 오락실에 갈 수 있었다.
하교가 가장 빠른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구원투수였던 것 같다.
집에 도착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에게 잠시 가게를 보고 있으라고 하고 자리를 비웠다.
그런 날이 있다.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손님이 들어오다 적막하리만큼 뚝 끊기는 순간.
난 오늘은 또 어떻게 언니에게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을 뜯어낼까 머리를 쓰며 기다리고 있었고 그때 손님 하나가 들어왔다.
사고자하는 물건을 집어 나에게 왔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주며 거스름돈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의 셈은 가능했기에 천 원을 받고 동전을 건네주었다.
그 순간 난 엄청난 두뇌회전과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다. 이 천 원을 금고에 넣을 것인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화장실에 다녀왔고 난 친구들과 놀러 가겠다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오락실에 가 천 원짜리를 동전으로 바꾸고 한편에 쌓아놓는 채 질릴 때까지 오락을 했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동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날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동네친구들에게 동전을 나눠주며 "돈 없어? 자, 이거로 해" 인심을 쓰고 빈 손으로 집에 갈 수 있었다.
증거인멸을 위해 한 나의 베풂은 아이들에게 추앙을 받을 만큼 대단했다.
기분이 좋았다.
딱히 친한 친구도 없었고 학교가 끝나고 은행나무 아래 있다 보면 하나 둘 모이는 동네 아이들과
때때 맞춰 게릴라성으로 놀곤 했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친구는 없다.
그런 난 동전 몇 개로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은 꽤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난 더 대범해졌다.
금고는 2단짜리였는데 1단엔 동전들로 가득했고 가운데 구멍엔 천 원짜리 지폐만 넣는 형태였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자리를 비우는 틈을 타 금고를 열어 구멍에 손을 넣고 한 장씩 빼곤 했는데 나중엔 한 주먹을 움켜쥐고
주머니에 구겨 넣어 화장실에 가 한 장씩 펴내며 세어보면 많게는 열 장이 넘기도 했다.
4학년 아이에겐 너무 큰돈이었다. 막상 쓸데도 없었는데 난 그 돈을 들고 은행나무 아래로 갔다.
아이들에게 천 원씩 나눠주기도 했고
우르르 오락실로 데리고 가 동전을 나눠주었다.
롤러장이 한창 유행이었지만 혼자 갈 길이 없었던 난 동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오빠들을 끌고 집에서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롤러장에 가서는 대신 돈을 내주었다.
모두 날 기다렸고 난 가게를 서성이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자리를 비우는 때를 노렸다.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없었다.
그만두었다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엄마아빠의 눈을 피해 금고를 여는 일은 좀 더 어려워졌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의 그 사건 이후로 난 금고 근처도 얼씬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