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을 올리고 싶을 때
가격을 인상해야 할 때가 있다. 대부분은 그냥 올린다. 별 이유도 설명 없이 가격을 올려버린다. 혹은, 해가 바뀌는 시점에 물가를 이유로 가격을 올리기도 한다. 보통 1월이나 아니면 구정을 기준으로 한다. 현명한 식당은 올려야 하는 이유를 공지하고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그 올려야 하는 이유가 이해되더라도 억울한 편이다. 이해는 되지만, 손님은 식당주인과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서다. 반면에 우리 맛창처럼 천원을 올리면 3~400원의 원가를 들여서 천원에 육박하는 느낌표를 주고 올리는 식당도 있다. 만일, 3천원을 올린다면 천원은 손님 입에 들어갈 뭔가에 사용한다. 결국 2천원을 올리는 셈이다. 2천원을 올리기 위해서 3천원을 받아내는 거다. 손님 돈 천원으로 3천원이 아깝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짜 9번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건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전술이다. 이 전술을 통해 현재의 가격을 인상함과 동시에 아예 가격의 앞자리까지 바꿀 수 있는 큰 그림이다. 현재 보글부대의 가격은 12,000원이다. 사실 여기서 천원 더 인상은 아무일도 아니다. 주인이 착해서 걱정할 뿐이다. 그 착한 마음이 이뻐서 가짜9번을 제안한다. 18,000짜리 부대찌개를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 녀석이 바로 가짜 9번이다. 가짜 9번은 스트라이커인척 한다. 하지만 사실은 공격미드필더다. 스트라이커를 돕는 역할이다. 바로 18,000원짜리 부대찌개를 만들면 12,000원짜리도 13,000원으로 올리기 쉽다. 18을 보면 13은 싸게 보이기 때문이다. 착시효과다. 이렇게 팔려도 그만, 안팔려도 그만인 가짜 9번 18,000원짜리 부대찌개를 만들면 된다.
지금 이 일단계 목적은 12를 13으로 올리기 위함이다. 18을 팔려는게 목적이 아니다. 그렇게 12가 자연스럽게 13(나는 이참에 14도 좋다고 생각하지만)이 되어 자리를 잡으면, 이제 가짜 9번이었던 18,000원 부대찌개가 진짜 스트라이커가 되게끔 해야 한다. 이게 최종 목표다. 아니면 적어도 2가지가 반반이 팔리게만 된다면 식당은 손님의 수가 늘지 않으면서도 매출이 올라가게 된다. 그정도만 되어도 성공이다. 왜냐면 반반의 매출일 때는 결국 비싼 가격이 이기기 마련이다. 맛창 식당에서 비싸다는 건, 그만큼 품질이 더 좋다는 뜻이다. 5천원 더 내고 먹는 게 못넘을 산은 아니라서, 손님들은 어느새 13보다는 18짜리 부대찌개를 먹으면서 “서울에서 제일 비싼 부대찌개를 아무렇지 먹는 나”라고 좋아하게 될 것이다. 손님은 싸고 푸짐한 걸 먹는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비참해서다. 비싸고 푸짐한 걸 먹는 걸 백에 백이 당연히 좋아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잘 주려면 잘 받는 수 외에는 없다.
카지노 게임 9번의 등장을 잘 써먹은 식당은 노작골부대찌개다. 12,000원 부대찌개를 팔다가 햄폭탄부대찌개라고 16,000원짜리를 출시했다. 우리는 동수론을 쓰는 식당인지라 3명에게 2인분을 권하지만, 모든 손님이 그걸 반겨하진 않는다. “괜찮아요. 우린 양이 많으니까 인원수대로 3인분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이 있다. 그처럼 3명이 3인분 36,000원을 기꺼이 지불 하겠다는 손님들에게 “햄폭탄으로 2인분 드시면 어떨까요?” 손님은 32,000원에 3명이 먹으니 4천원이 이득이다. 맛창식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왜 손님이 36,000원어치를 먹겠다는 걸 4천원 덜 받고 파는지 궁금할 것이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손님은 자신에게 이득을 준다고 느끼는 식당에 재방문을 한다. 소문도 내준다. 그게 앞서 설명한 동수론의 진가다. 노작골은 그렇게 배가 큰 손님들에게 12,000원 짜리를 정인분에 파는 대신에 카지노 게임 9번으로 등장시킨 햄폭탄을 팔고 손님을 늘려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곁눈질로 기존 부대찌개를 먹던 손님들에게 햄폭탄 부대찌개는 다음에 주문할 계획을 심어주니, 매출도 늘어 즐겁다.
행당동에 집밥 같은 만두를 파는 곳이 있다. 거리의 조미료 만두에 길들여진 입이라면 평양냉면처럼 여겨지는 만두집이다. 바로 만두전빵이다. 만두전빵은 만두전골만 파는데 2인분에 18,000원이다. 가격이 싸다고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다. 품질에 비해 가격이 싸도 너무 쌌다. 행당동에 이어 수유리에 만두목장을 만들었다. 신선한 만두를 파는 곳이라는 상호다. 행당동보다 비싼 만두전골을 팔았다. 의도적 테스트였다. 만두전골에 아롱사태를 올려서 작품 같은 만두전골을 완성하였다. 그 작품 전골을 행당동에 붙였다. 2인분 25,000원으로 가짜 9번이었다. 그리고 18이었던 전골의 가격을 22로 올렸다. 무려 4천원을 인상해버렸다. 사실 그래도 그만한 만두전골이 1인분에 11,000원은 여전히 싸다. 그걸 알기에 손님들도 오른 가격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가짜 9번 역할을 하던 아롱사태전골의 매출은 가짜라서 초기엔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덧 매출은 반반이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아롱사태전골을 찾는 손님이 늘어가고 있다. 가격 인상을 제안할 당시엔 설명할 論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걸 가짜 9번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 이 장사론의 진짜 중요함이다. 약간의 가격 인상을 위한 가짜 9번이 논리의 목적 같지만 아니다. 가짜 9번이 정상 가격으로 자리를 잡는 게 목표다. 부대찌개 13,000원짜리와 18,000원짜리가 동등하게 팔리는 걸 원하는 것이 아니다. 5대5의 비중으로 팔리면서 점점 18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면, 그때 13짜리 부대찌개를 없애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온리원을 더 견고히 쌓고자 함이 가짜 9번론의 결말이다. 하지만, 맛창 식당들은 이 결말까지를 원하지 않는다. 가짜 9번이 판매량에서 앞서도, 기존의 메뉴는 유지해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라서다. 마음이 따뜻한 식당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