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퍼(Prepper)는 한국어로 번안하면 ‘생존주의자’쯤 된다. 당장 내일 전쟁이 날지도 모른다고 여기며 생존배낭을 구비하는 이들이 있다. 『무료 카지노 게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무료 카지노 게임 마크 오코널은 미국의 백인 남성 프레퍼를 다음처럼 평가한다. “프레퍼가 된다는 것은 고통을 겪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 것이며, 남들의 고통을 줄이거나 예방하는 쪽으로는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프레퍼의 특징이 ‘독선’임을 지적한다. 프레퍼는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은 채 자신만을 믿는다. 무료 카지노 게임에서는 모든 것이 붕괴하기 때문에 자신만이 유일하게 기댈 곳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면 프레퍼는 개인의 고통이나 기쁨을 타인과 나누지 않는다. 프레퍼는 자신의 ‘믿음’이 타인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가장 먼 단어는 연대이고, 그들은 항상 고독하다. 이 점에서 <진격의 거인은 어느 정도 프레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엘런 예거는 먼 미래에 다가올 무료 카지노 게임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 결말은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으니 가까운 사람에게도 무료 카지노 게임하지 않았다. 진심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오직 그것만이 옳은 일이라고 믿었다는 점에서 그는 독선주의자인 프레퍼였다.
어떤 평가를 내리든 간에 <진격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품임은 분명하다. 2013년 첫 방영된 애니메이션은 1화에서 벽이 함락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초대형 거인이 벽 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모습과 주인공 어머니의 죽음, 주연의 사망 등이 명장면으로 남았던 것이다. 작품에서 등장한 ‘무지성 거인’은 공중파에서 인용무료 카지노 게임 등, 고유명사화되어 한국인의 삶에 깊이 자리 잡았다. 건담에서 유래한 ‘흑역사’나 와우에서 창안됐던 신조어 ‘신박하다’처럼 ‘무지성’도 흔히 볼 수 있는 말이 됐다. 생각해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이 공중파에서 언급되는 일은 2010년대 중반에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금에야 <최애의 아이처럼 메가히트작이 언급되긴 해도 ‘소년만화’ 자체가 유행어가 되진 않았다. 당시 ‘진격’이라는 말이 한국의 미디어를 장악했고, 더 나아가서는 밈이 됐다.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을 두고서 어미에 ‘진격’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이야기는 아마 여기까지다. 이후 작품을 둘러싼 외적인 잡음이 뒤따랐고, 연재가 장기화하며 자연스레 인기는 사그라졌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큰 인기몰이를 했던 것도 같다고 느낄 만큼, 그곳엔 아무런 것도 남지 않았다.
이는 물론 작품의 주된 장르가 바뀌었던 탓이 컸다. 거인의 정체를 알 수 없고, 인류가 사지에 내몰렸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 만화가 정치물로 바뀌어버렸다. 라이너의 갑작스러운 거밍아웃을 시작으로, 지하실의 비밀이 밝혀지자 작품은 급속하게 동력을 잃었다. 거인이 단순한 ‘탑승형 메카’처럼 보이게 된 것도 한몫했다. 마치 <야인시대의 1부에서 2부로 넘어가는 장면만큼이나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비유하면 정말로 잘 어울린다. TVA를 기준으로 시즌2가 거인의 정체를 알기 위한 인류의 항명 같은 느낌이었다면, 시즌3는 그동안 은폐됐던 역사를 마주하고는 향후 방향성을 재점검하는 시기였다. 완결편으로 가는 징검다리편이기도 했지만, 시즌3는 파라디 왕국의 정치적 혼란을 보여주는 ‘정치스릴러’에 가까웠다. 거인이 아니라 인간과의 내전에 초점이 있으므로 전편에 비하면 다소 늘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시즌3는 이후를 무료 카지노 게임 꼭 필요한 회차였다. 완결편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와 같은 논제 설정이 실패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즌 3는 ‘벽 밖’의 진실을 알게 된 엘런이 해변 너머를 향해 “저 너머에, 우리의 적이 있다.”고 되내는 일로 끝난다. 마치, 제3의 길을 찾았다는 듯 말이다.
모든 ‘에르디아인’은 거인이 될 가능성을 타고났다고 작품은 말한다. 이 가능성은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이다. 작품은 에르디아인을 잠재적인 범죄자이면서 동시에 선대의 원죄를 끌어안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만화는 이 원죄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다음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에르디아 민족 자체를 ‘안락사’하는 것이다. 지크는 아무리 해도 세상에 폭력이 근절될 수는 없다고 말하며 ‘원죄’가 사라지는 편이 낫다고 본다. 지크는 시조 거인의 힘을 사용해 에르디아인의 생식능력을 ‘제거’함으로써 비교적 인도적인 ‘절멸’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에르디아 민족 이외를 절멸하는 것이다. 엘런은 섬 안의 사람들을 살리고자 섬 밖의 풍경을 지워버리려 한다. 그렇게 하면 온 세상이 실질적으로 하나의 ‘섬’이 되므로, 일종의 세계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서 지크의 ‘안락사’는 당시 인터넷 밈으로 회자될 만큼 독자에 충격을 줬다. 주요 소비층이 2030 청년층이었던걸 감안하면 ‘안락사’는 뭔가 으스스하고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섬으로 고립되어, 재생산이 불가한 채로 절멸해야 한다는 이 말은 ‘헬조선’의 후속으로서 무료 카지노 게임마저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탈출’이 별다른 소용이 없는 세상 말이다.
지크의 안락사 계획은 ‘나 같은 건 차라리 세상에 없던 편이 더 나았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반출생주의와 강하게 연결되지만 반대로 내부를 향해 강하게 수축한다는 점을 고려할 수 있다. 가령 김홍중은 시몬 베유를 언급하면서 “노예-되기의 핵심은 바깥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그 말인즉 주체가 바로 서려면 항상 ‘바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앞서 무료 카지노 게임에 대해 말해왔던 것처럼, ‘무료 카지노 게임’이라는 절대적인 외부가 도리어 주체 개념을 제시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만화의 초반부가 ‘벽’ 너머를 보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후 역할은 ‘무료 카지노 게임’에 맡겨진다. 극복 불가능할 것만 같던 벽이 무너지고 나자 엘런은 ‘자기’의 논제 설정을 위해 무료 카지노 게임을 받아들인다. 문제는 엘런이 그런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했다는 점에 있다. 아르민이 엘런에게 ‘길’에서 말했듯, 엘런의 학살극은 오롯이 혼자서만 진행한 일이 아니라 그에게 대안을 제공하지 못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개인의 책임을 사회 전체로 분산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일화에서 되새겨야 할 건 하나다. 프레퍼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엘런은 미카사와 아르민, 그리고 나머지 모두에게 고통을 안기지 않으려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지크는 ‘에르디아(주체)’만 없으면 ‘세계(바깥)’에 고통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반면 엘런은 ‘세계(바깥)’가 없으면 ‘에르디아(주체)’에 고통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고통받지 않는 세계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가 되고자 했다. 생각하면 몹시 당연한 게, 사고의 당사자인 ‘나’가 없으면 당연히 고통을 느끼는 일이 불가하다. 뇌가 고통을 느끼는 기관이니 뇌가 없으면 자연스레 고통받을 일도 없다. 그런데 사유의 주체인 ‘나’의 바깥으로 탈출하는 일은 불가하다. 무료 카지노 게임의 논제는 항상 고통받는 ‘나’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몸에 갇힌 사람들이며, 세계-신체를 지니게 된 시조 거인 엘런도 한 세계를 떠나지 못한다. 다만 엘런은 그 자신이 세계가 됨으로써 무료 카지노 게임을 꿈꿀 수 없는 문제가 말끔히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엘런의 ‘세계-신체’는 지평선의 크기만큼 확대됨으로써 마치 세상 전부인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는 타인이 자신을 죽이면 모두가 이곳을 떠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자신이 절대적인 무료 카지노 게임이 되고자 친구들에게서 대화의 여지가 없음을 알렸다. 결국 엘런을 죽이는 과정은 한 세계를 죽이는 과정과도 같았다. 엘런을 죽임으로써 ‘이후’를 획책하는 것이 바로 만화의 이야기다.
즉, 양극화된 선택지 아래 어떠한 ‘대안’으로 테러가 제시된다. <진격의 논제 설정은 이 점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지크는 이 고통받는 ‘나’만 없으면 종국에는 ‘바깥’을 사람들에 돌려주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반면 엘런은 시조의 힘을 통해 ‘나’의 범주를 세계 전체에 확장했다. 자신이 곧 세계에 대입됨으로써 그 자신은 바깥이 된다. 둘 다 좋은 선택지로 보기는 힘들지만 둘 사이에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참사가 바로 완결편이다. 완결편에서 한지는 “우리가 엘런에게 마땅한 대안을 주지 못했기에 이런 참사가 벌어졌다”고 자책한다. 리바이는 엘빈을 대신해 아르민을 살린 자신의 선택을 두고서 “자신의 선택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면 여태까지 했던 노력과 희생은 무엇을 위함이었는지”를 묻는다. 이른바 <진격은 지크의 ‘안락사’가 내부로서 실패하고 엘런의 ‘땅울림’이 ‘바깥’으로 성공한 사례다. 지크가 에르디아인과 비에르디아인을 명확히 구분 지으면서 그들을 ‘타인’으로 지칭했다면, 적어도 그는 타인의 고통을 줄인다는 대의가 있던 것이다. 헬조선 담론이 안락사로 포인트가 옮겨간 것은 어떤 면에서 그렇게 탈진한 주체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프레퍼인 엘런에게 ‘무료 카지노 게임’은 자신이 끌어안은 ‘독선’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