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우즈베키스탄 돈을 엄마께 다 드리다.
타슈켄트에서 온전한 하루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은 기차를 타고 국경으로 가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간다. 대중교통 타고 다니고 외식도 한번 하지 않았는데, 지갑에 있는 우즈베키스탄 돈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 화폐를 남기지 않으려고 애초부터 환전을 적게 했기 때문이다. 딱 200,000 숨, 이십만 숨이 내 수중에 있었다. 이십만 숨이라니, 이 0이 난무하는 우즈베키스탄 화폐단위는 아직도 영 적응이 안 되었다. 간단한 환율셈법으로 0을 하나 떼고 보면 우리나라 돈으로 이만 원 밖에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오늘 나와 주원이는 미리 잡아놓은 스케이트 과외 일정으로 후모 아레나에 가기로 했고, 엄마는 내 추천대로 우즈베키스탄의 국립예술박물관에 갈 예정이었다. 우즈베키스탄 돈 땡전 한 푼 없는 엄마에게 내가 가진 이십만 숨을 전부 드리며 말씀드렸다.
"엄마, 박물관에만 갔다 오지 말고, 그 앞에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고, 사고 싶은 것도 좀 사시고 여유 있게 쉬다 오세요."
감기를 힘겹게 극복 중인 엄마가 우즈베키스탄의 마지막날은 좀 더 행복하게 보내시기만을 바랐다. 이 돈을 다 드려도, 나는 어차피 숙소 근처 카지노 쿠폰 가서 미화달러를 조금 더 환전하면 마지막날을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초르수 바자르에서 기술장인에게 고친 유아차에 주원이를 태우고, 카지노 쿠폰에 들러 환전하고, 가는 길에 요기도 하고, 후모 아레나에서 스케이트를 한다면, 정말 완벽한 하루가 될 것이다. 룰루랄라 미화달러와 함께 출발한 나의 기대는 카지노 쿠폰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카지노 쿠폰은 오늘도 닫았다.
어제 동네 플로프 파티에서 만난 루슬란의 말이 떠올랐다.
"내일까지는 이드 알아드하 휴일인데, 문제는 공무원들만 쉬어요. 휴~ 저는 출근합니다. 사기업이거든요."
카지노 쿠폰은 나의 상식에서는 공기업이 아닌데, 이 카지노 쿠폰이 특이한 건가. 기분이 싸했다. 숙소로 돌아가서 주인아저씨를 찾아 환전하는 게 맞을까? 이 더운 날씨에 숙소로 돌아가자니 온 길이 너무 아까웠다. 이 카지노 쿠폰만 닫은 거일 수도 있잖아, 분명 다른 카지노 쿠폰은 열었을 거야. 내 특유의 낙관론이 다시 발동 걸렸다. 나는 유아차를 끌고 다시 길을 나섰다.
청원경찰의 "노(No)"
오늘은 40도가 넘지 않았지만, 여전히 더웠다. 인도(人道) 사이사이에 있는 잔디에 자그마한 스프링클러들이 쉴 새 없이 작동하며 인도의 열기를 식히고 있었다. 30여분을 걸었을까? 드디어 문을 연 카지노 쿠폰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호기로운 표정을 지으며, 경사로로 유아차를 밀며 카지노 쿠폰으로 진입했다. 들어가자마자 카지노 쿠폰의 청원경찰이 우리에게 우즈베크어로 뭐라고 했다. 청원경찰 어깨너머로 널따란 책상에 앉은 직원 1명과 업무처리가 되길 기다리며 나무의자에 주르르 앉아있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미화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아살람 알레이쿰(안녕하세요), 달러 to 숨"
청원경찰은 그제야 조금은 내가 우즈베크어도 러시아어도 못 알아듣는 외국인이라는 걸 인지했는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딱 한마디 했다.
"노(No)"
정신 차리고 카지노 쿠폰을 좀 더 살펴보니, 까사касса라고 적힌 조그만 창구들이 텅 비어있었다. 보통 환전은 저런 조그만 창구에서 해줬다. 나는 혹시 다른 카지노 쿠폰도 다 오늘 닫고, 환전도 못하는 거냐고 구구절절 구글 번역기로 물어봤지만, 청원경찰은 구글 번역기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이번에도 딱 한마디 했다.
"노(No)"
청원경찰의 대답은 내용만 보면 매우 무뚝뚝했지만, 그가 나와 유아차에 있는 주원이를 번갈아 바라보는 눈빛은 안쓰러움 그 자체였다. 그의 표정이 말하고 있었다. '오늘 모든 카지노 쿠폰이 닫아서 환전을 못해요. 외국인은 모르시겠지만, 오늘은 우즈베키스탄의 이드 알아드하 기간이랍니다. 이 간단한 문장을 당신께 알려드리고 싶지만, 우리 사이에는 언어장벽이 있네요.'
미련이 남은 나는 그 카지노 쿠폰을 나오고도 정신 못 차리고 또 다른 카지노 쿠폰에 들어갔다가 드디어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늘은 카지노 쿠폰 환전이 안된다는 사실을. 그나저나 어쩌나, 땡전 한 푼 없는 우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버스도 탈 수 없다. 숙소에 가든, 후모 아레나에 가든 유아차를 밀고 걸어가야 한다. 순간적으로 엄마에게 돈을 전부 다 드린 나의 효심을 원망했다. 지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무슨 엄마 생각한다고 돈을 다 드렸나.
문득 떠오른 힐튼호텔
3번째 카지노 쿠폰에 차였을 무렵, 카지노 쿠폰에서 나와 멍하니 하늘을 보는데 저 멀리 라마다 호텔이 보였다. 호텔이라면 분명 환전해 주거나, 환전할 곳을 알고 있을 거야. 나는 구글로 라마다호텔 전화번호를 검색해 전화를 걸었다. 유려한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라마다호텔은 환전 서비스가 없다고 했다. 라마다, 너희는 고급호텔 아니었니, 그때 갑자기 내 뇌리 속에 어제 타슈켄트시티파크에서 봤던 으리으리한 힐튼호텔이 나타났다. 힐튼 호텔에 전화하니, 라마다 호텔보다 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직원이 환전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유아차를 끌고 힐튼호텔로 향했다. 햇볕은 작렬했고, 땡전 한 푼 없는 나는, 유아차 짐칸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한 모금 들이키고는 다시 걸음을 뗐다. 그 날도 40도를 육박하는 더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