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를 위한 기록, 내일을 위한 질문
지금 나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 글을 쓴다. 첫 문장부터 모순이다. 소통이 불가능한데 글을 작성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건 나의 들리지 않는 외침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독자는 어제의 나 한 명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 내가 이 세상이라는 지옥으로 떨어졌을 때부터 11,825일이 지났으니 내 독자는 11,825명의 ‘살아 있는 나’가 된다.
참으로 안타깝다. 사람들은 미래의 자신에게는 일방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자신에게는 소통 자체를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의미가 없을까? 그건 지금의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현재의 관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딱히 이유는 없다. 의미에 이유를 붙이는 건 이제 진절머리가 나고 지겹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보낸 편지, 영상, 기록물 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지옥에서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과거의 모든 내가 된다. 반면, 미래의 나는 예측 불가다. 노화 등 안 좋은 것들만 쌓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지도 예측조차 할 수 없다. 10년,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많은 예측을 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예측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틀렸다. 근접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예측을 어느 순간 포기했다. “나”라는 존재는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기에, 예측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 왜 과거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전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조금 더 악착같이 노력해서 대충 살아라”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제 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유아기를 지나 기억 속에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그저 부모님이 이끄는 대로 살았다. 그래서 이건 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춘기가 찾아오고, 내가 부모님의 말씀을 무시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바보인 줄 알았다. 남들보다 학습이 느리고, 성적도 낮은 바보가, 심지어 게으르기까지 했다.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성인이 된 후로 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실 바보였던 나는 남들이 무식하게 암기하여 시험 점수를 높게 받는 방식이 아니라 ‘이해’를 하느라 항상 느렸고, 심지어 게을러서 환상의 콜라보로 등수가 낮았던 것이다.
게으름뱅이였던 나는 20대 초반에 내가 가지고 있었지만 몰랐던 것을 하나 알게 된다. 신은 안타깝게도 이 행복한 소년에게 불행을 안겨주었지만 말이다. 알게 되었던 것은, 내가 IQ 웩슬러 기준 상위 1% 이내인 “Very Superior”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저주받은 재능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저주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성실하지 못한 자가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매일매일 차라리 내가 평균이었으면, 아니 바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불행한 소년은 운이 좋게도 남들이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똑같이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을 찾았다. 그건 바로 프로그래밍이었다. 카지노 게임 프로그래밍은 공부가 아니었다. 그저 게임이었다. 누가 게임을 싫어하겠는가? 그는 프로그래밍이라는 게임에 중독되어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프로그래밍을 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 순간, 동기 한 명이 카지노 게임 말했다. “이렇게 살면 프로그래밍밖에 못하는 바보가 되는 거 아니냐?” 충격이었다. 나는 한 가지만 잘해도 만족했는데, 그 사람으로 인해 나는 또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여러 가지를 ‘남들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제로 주입되었다. 그로 인해 남들보다 부족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수학, 과학, 인문학, 강연, 리더십, 철학, 디자인, 집필 등 가지각색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가지각색의 능력은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그저 프로그래밍이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필요했기에, 마치 몬스터를 막일로 사냥하듯 하나씩 얻어낸 것들이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뛰어난 두뇌가 뛰어난 능력을 얻었다. 이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간단하다. 그도 인간이다. 모든 인간처럼, 그도 ‘욕심’이라는 것이 있다. 돈, 명예, 지위와 같은 모든 것에 대한 욕망이 생기고, 이것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됨과 동시에 저주가 된다. 왜냐하면 나는 도전해서 실패한 적도 많지만, 결론만 놓고 보자면 전부 성공이라는 결과를 얻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욕심도 많고 능력도 있기에, 게임 캐릭터를 육성하듯 본인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좋은 거 아니야? 아니. 앞에서 말했듯 그는 게으름뱅이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이든 일단 저질러 놓고 시작한다. 요약하자면, 그는 ‘이해’가 필요하고, ‘재능’이 있고, ‘실력’과 ‘욕망’이 있다. 그는 다른 뛰어난 석학들처럼 점점 자신이 모르는 게 더 많아지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건 카지노 게임 있어 확실한 저주다. 앞서 말했듯,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는 정신이 무너진다. 그리고 동시에 ‘나태함’이 나타나서 귀에 속삭인다. “포기하면 편해”
지금의 내가 매일 생각하는 것이다.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진다. 이미 충분히 넘칠 만큼의 커리어와 공부를 했고, 많은 경험과 시도를 해보았다. 딱히 더 하고 싶은 건 없다. 하지만 ‘나태함’이란 녀석은 그리 강하지 않은지 완전히 나를 정복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귀찮아도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강제로 살아가고 있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미래의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그것은 곧 미래의 나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사라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쇼츠나 릴스를 보는 사람들은, 다음 날만 되어도 어제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미래의 나에게 소통하려고 노력 중이다. 문제는, 왜 내가 미래의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오늘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은 이야기가 아닌 질문이다.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미래의 나 말고는 없기에, 미래의 나에게 질문한다.
왜 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만드는가?
지금과 분명히 달라진 너는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가?
과거의 카지노 게임 조언할 내용이 있는가?
오늘이 언제인지 기억이 모호할 수 있으니 정확히 기억날 수 있도록 설명도 함께 보낸다. 300개의 별⭐을 본 평범한 날이다.
어제의 카지노 게임 나는 조언한다.“편하게 살고 즐겁게 놀아도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괜찮아”
미래의 카지노 게임 나는 요청한다.“내 질문에 반드시 답변을 해주길 바랍니다”
오늘의 카지노 게임 나는 질문한다.“오늘은 어떻게 해야 후회하지 않는 날이 될까?”
이 이야기는 저주받은 한 소년이 과거의 나에게 원망 섞인 이야기를 전하지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의미 없는 첫 번째 행동이다. 난 오늘의 시작을 의미 없는 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를 웃으며 읽는 미래의 나에게 전하면서 마무리한다.
발행: 2025.04.11
저자: 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