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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콜렉터 Feb 24. 2025

데칼코마니

활기차고 풍요로운 선율

다시 영주의 집이다.


아직 한낱 회색빛 일상에 머무르던 영주는 막막했다.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하는지, 아니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 답은 그녀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게 되었다.


이후로 영주는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따스한 빛을 최대한 집으로 들여놓았다. 바람에 집안에 쌓인 먼지를 날려버리고, 집안 구석구석 정리했다. 먼지가 쌓인 세탁기나 가스레인지 위를 쓸며, 그 위로 지나간 시간을 되새겼다. 고요한 집에 바지런을 떠는소리가 퍼져 나갔고, 영주는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평온함에 부유했다가, 이내 책상 앞에 앉았다. 깊게 숨을 들이켠 후, 천천히 그동안 마음속에서만 뜨겁게 끓고 있던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주저하지 않고 손끝에서 쓰이는 이야기들은 처음엔 주저함이 있었지만, 점점 치열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자신이 경험한 치열하고도 고달픈 순간들이 선명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글을 쓰는 동안 영주의 눈빛은 슬프게도 날카롭게 빛났다.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글을 계속 써 내려갔던 까닭은 그만큼 마음이 배불렀기 때문일 것이다. 영주는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의 파편들을 글로 담아내니 곯은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응어리가 사라지니 그 틈 사이를 편안함으로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도시의 소음과는 달리 영주의 삶은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선율처럼 흘러갔다. 속도가 그리 급하지 않지만, 확실히 활기차고 풍요로워 보였다. 힘차게 경쾌한 음들이 하나씩 쌓여 가며 울림을 지녔다. 영주는 자신만의 작은 의식도 만들어갔다. 책의 주인공의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어, 아침마다 밖에 나가 가볍게 등산을 했다. 단단한 주인공의 모습을 닮고 싶어 명상도 시작했다.


어느새 영주는 관성에서 벗어났다. 흘러넘치는 마음을 주체 못 해 이리 날뛰고 저리 날뛰는 모습은 저 편의 과거가 되었다.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는 것을 멈추고,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영주의 발걸음은 점점 단단해졌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영주는 이것들을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영주는 매일의 일상 속에서 작지만 확실히 발걸음을 남겼다. 그 걸음이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는 모르지만, 영주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진짜 나'와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영주의 이야기는 어쩌면 모두가 겪는 진짜 삶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매 순간 우리는 편협한 세상에 당연하게 끌려가고, 그것이 당연하다 생각해 두렵고 불안한 상황을 계속 마주한다.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과 만남의 문은 늘 옆에 있지만, 그 손잡이를 쉽게 잡지 못한다.


영주는 물론 굽이 굽이 긴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원하는 여정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렇게 쓰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영주와 꽤 닮은 모양새였다. 영주도 주인공도 급격하게 요동치는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우울에 잠식됐지만 이내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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