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의 일기 150 - 삶에 대한 고찰
2023년 7월 1일 토요일
7월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8시 반부터 재활이 있다. 오전에 재활 2개를 진행하고 잠깐의 휴식 시간이 생겨서 산책을 나갔다. 날씨는 흐렸지만 바람이 불어서 선선한 기분이 들었다. 동생한테도 바깥공기가 시원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름 한 점 없이 햇볕이 내리쬐는 날도 좋지만 오래 걷기에는 지금의 날씨가 딱 알맞다.
산책을 하다가 엄마한테 받은 기프티콘이 떠올랐다. 마침 근처에 GS 편의점이 보였다. 하지만 휠체어는 들어갈 수가 없었기에 카지노 게임을 잠시 바깥에 세워둘 수밖에 없었다. 빨리 사고 올 테니 혼자 있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주 잠시였지만 이렇게 카지노 게임을 혼자 두는 상황이 짠하면서도 불안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사고가 날까 봐 마음이 초조해졌다.
재빠르게 편의점을 들어가서 사야 할 것만 골랐다. 매대를 보니 카지노 게임이 먹고 싶다고 했던 빵이 2+1 행사 중이라서 야무지게 3개를 집어 들고 후다닥 나왔다. 동생은 휠체어를 탄 채로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동생은 빵을 한가득 품에 안고 있는 나를 보더니 눈이 동그래졌다. 그 표정에 너무 많이 샀나 싶어서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이 샀나? 근데 우리 이거 다 먹을 수 있잖아. 그렇지 않아?”
“어”
“그래 다 먹을 수 있다니깐. 그래서 종류별로 샀어.”
동생은 어차피 정해져 있던 나의 말을 듣고는 어이없는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어떤 것부터 먹어볼지 살펴보는데 빵 하나가 6월 30일까지로 유통기한이 어제까지였다는 걸 발견했다. 카지노 게임을 잠시 두고 얼른 다시 들어가서 교환을 하려고 하는데 제품이 없어서 냉장고라는 앱으로 빵 한 개를 보관했다. 수박맛 빵이라고 해서 골랐는데 맛을 보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병원에 들어가기 전 입구에 잠시 서서 말차 초코빵을 사이좋게 반으로 갈라서 먹었다. 동생은 맛있었는지 입가에 생크림을 잔뜩 묻히면서 먹고 있다. 맛있냐고 물어보니 입을 열심히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물론 동생의 입가에 덕지덕지 묻은 초코는 내가 다 수습해야 했지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은 좋았다.
카지노 게임이나머지오전재활을받는동안 병실로올라왔다. 잠시쉬려고침대에누워있는데얼마지나지않아서모르는번호로전화가걸려왔다. 누군가싶어서전화를받아보니낯설지만꽤익숙한목소리가들렸다. 뜬금없이큰아빠한테전화가왔다. 지금면회가되냐고묻길래3시이후에가능할것같다고말하니이미병원에있다며만날수있냐고한다. 너무나도갑작스러운방문에당혹스러웠지만그마음을일단뒤로하고1층으로내려갔다.
그런데 1층으로 갔지만 큰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왠지 낯이 익는 실루엣이 보이길래 긴가민가해하면서 다가갔다. 그리고 큰아빠를 확인하고는 한번 더 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3남 2녀 중 막내로 나에게는 큰 아빠가 2명이 있다. 그런데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였고 첫째 큰 아빠와는 왕래를 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분은 바로 둘째 큰 아빠였다.
당연히 첫째 큰아빠인 줄 알았다. 목소리도 비슷하고 심지어 말투까지 비슷해서 단단히 착각했다. 다시 만날 줄은 몰랐던 얼굴을 갑자기 보게 되어서 놀라웠다. 둘째 큰아빠와는 초등학교 6학년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만난 적이 없다가 친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뵙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것도 5년 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였다. 도대체 얼마나 심한 갈등이 있었던지는 몰라도 사촌언니 결혼식에서도 볼 수 없었으니 굳이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가족이기는 하지만 장례식이나 이번처럼 큰일이 아니면 볼 일이 없었던 터라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과 직접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서 부정적인 감정은 없었다. 다만 너무 오랜만이라서 뻘쭘할 뿐이었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내 앞에서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를 몰라서 한숨만 내쉬었다. 일단 병원 내에 있는 카페로 가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눴다.
소식을 어떻게 알게 됐냐고 물으니 며칠 전에 엄마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말했다. 둘째 큰아빠한테도 소식을 전해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을 하더니 결국은 전했나 보다. 물론 고모 두 분한테는 말을 안 했으니 여전히 동생의 소식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큰아빠와 큰엄마는 내게 고생이 많다며 용돈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쿠폰과 마카롱을 사다 주었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방문하느라 돈을 많이 못 챙겨 왔다며 계좌번호를 보내달라고 했다. 그 말에 괜찮다면서 거절을 했지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말라며 지금 바로 보내달라고 해서 결국은 계좌번호를 보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동생의 재활이 끝나서 카페로 데리고 왔다. 누군지 알아보겠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지노 게임이 교도관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더니 큰아빠가 신기하다는 듯 웃어 보였다. 알고 보니 교정 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주말마다 교도소로 봉사를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카지노 게임이 퇴원을 하면 교도소 견학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동생도 그 말에 신이 나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큰아빠는 동생에게 자신만 믿고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하라며 큰 소리를 쳤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동생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기분이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동생에게 어디서 일을 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울산이라고 대답했는데 마침 큰 아빠가 방문하는 곳도 울산이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나 싶어서 속으로 혼자 이 상황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세상 일은 정말 예측할 수 없다는 게 다시 한번 느껴졌다.
큰아빠와 큰엄마가 11시 반쯤에 면회를 와서 점심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오래 있지는 못했다. 그렇게 깜짝 면회를 끝내고 다음 오후 재활을 위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큰아빠들을 보면서 두 분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모는 물론이고 말투와 목소리 성격까지 거의 똑같다. 서로 연을 끊고 산지는 어연 10년이 넘었지만 너무나도 닮았다고 느껴졌다.
카지노 게임이재활을받는모습을보며쉽사리떨어지지않는발걸음으로멀뚱히서있는모습그리고병간호를하고있는나를보는눈빛이비슷하다. 비록말을하지는않았지만표정을보면복잡하고수많은감정들이스쳐지나가는듯했다. 자신들은돈때문에피를나눈형제와도생사를알지못하고연을끊고사는중인데누나라는이유만으로카지노 게임을돌보고있는모습을보면서어디서부터문제였던건지과거를되돌아보는느낌이들었다. 내가카지노 게임을지키는걸보면서어쩌면자신들은카지노 게임을지키지못했다는죄책감을느꼈을수도있다. 물론모든감정을헤어릴수도알수도없지만나였으면그런생각이들었을것같다.
인간은 큰일을 겪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문제를 깨닫고 변해야겠다고 느낀다. 물론 모든 걸 잡기 위해서는 어떤 선택을 할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야 한다. 이미 멀어져 버린 그 길로 그냥 걸어갈지 아니면 늦었지만 되돌아갈지를 말이다. 틀린 선택은 없다. 그 어느 길도 정답과 오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단지 어떤 길이든 장점과 단점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냥 가던 길을 가면 마음 한편은 불편할 수 있으나 더 이상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돼서 편하다. 되돌아가서 관계를 회복시킨다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더없이 부족하다. 서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어쩌면 그 과정에서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도 있지만 원만하게 해결된다면 묵혀왔던 감정의 응어리를 풀 수도 있다. 세상은 여러 가지 갈래를 제시해 줄 뿐 어떤 선택을 해야 될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동생의 점심을 챙겨주고 후식으로는 고구마 말랭이를 주니 아주 잘 먹는다. 아무래도 콧줄을 빼고 나니 음식을 먹을 때 걸리는 게 없어서 그런지 확실히 더 잘 삼키는 것 같다. 간식을 안 줬으면 어쩔 뻔했나 싶을 정도로 맛있게 먹는 걸 보니 흐뭇했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아침, 점심은 그렇게나 잘 먹더니 저녁은 잘 먹지를 않아서 밥을 먹이느라 1시간 반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동생과 밥으로 실랑이를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밥시간이 늦어지거나 사라진다.
동생에게 저녁밥을 겨우 다 먹이고 진이 빠진 채로 간이침대에 앉았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애꿎은 휴대폰만 매만졌다. SNS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의 현실과 비교가 된다. 아니 정확하게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행복을 전시하는 SNS 공간 속에서는 모두가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연기한다. 그에 반해 나는 어떤 곳에도 속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곳에서 나는 그저 그들이 하는 연기를 보는 관객일 뿐이다.
물론그실체가허울뿐이라는것을알고있다. 마치화려한가면뒤에감춰진맨얼굴을이미알고있는느낌이랄까. 현실에서는단한번도부러워해본적없는삶이왜갑자기소셜미디어를보면서문득부러워진걸까. SNS와현실이다르다는걸알면서도어떤것이진짜모습인지헷갈리기시작한다. 행복한척일수도있고정말행복한것일수도있다. 좋은척일수도있고정말좋은것일수도있다.
요즘같은세상에는빛좋은개살구가좋은것일까남들이알아주지는않지만속이가득찬알밤이좋은것일까. 시대가변하면서예전과는삶을사는방식이변하고있다. 어쩔때는시대에발맞춰가는개살구가부러우면서도어쩔때는한결같이우직한알밤이부럽다. 그렇다면나는무엇을원하는것일까. 남들이알아봐주는화려한삶을원하는것인가그것이아니면남들처럼화려하게살지는못해도투박하고단단하게사는삶을원하는것인가. 도대체어떤결정을해야만족을할수있을지모르겠다. 삶의본질에대해질문을하게되면서괜스레이런저런생각이많아지는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