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라고 하기엔 너무 먼독서
가을은 가을인데물들지 않은 은행나무는 여전히 많고,
곧 12월인데도 겨울은 언제 오나 싶을 그런 요상한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멜랑꼴리 한 날씨 속에도 빠지지 않고야무지게출석하는아이들. 기특하다.(폐렴, 백일해가 유행인데도 무탈한 게 용하다)
북박스를 들고 와서 조용히 책을 꺼내고는 한 장씩 넘기면서 점점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읽고 또 읽고.... 책장 넘기는 소리와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로 어느덧지루하게 공간을 채울 즈음
현준 : 쓰앵님~~ 옷감이 카지노 게임?
나 : ……(동공지진 중)?!
현준 :옷이랑 감이에요?
나 : ……(끄.. 응)
현준 : 아니,옷이랑 감이냐고요? 네?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고 있는 초3 현준.
임금님을 골탕 먹이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옷감으로 옷을 만드는 척하는 부분을 읽다가 내게 묻는다.
평소 똘똘한 녀석, 하지만 오늘은 카지노 게임이 하기 싫은 거다.
바로 표정과 태도가 그 증거다.
엉덩이는 의자에 반쯤 걸쳐있고 허리는 이미 뒤집어진 C가 되어있다. 때문에 배는자동적으로남산만 하게 대문자 D로 모양을 갖췄다.
모르는 게 있으면앞 뒤 문장을 읽어 보면 될 걸,이 녀석 턱을 괴고서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얼굴은 45도, 나를 보고 있다. 이미 카지노 게임은 '나의 몫'이라는 눈빛이다. 밥 주시오, 도 아니고 답 내놓으시오~~ 라는 듯.
그때!
왼쪽에서 또 다른 폭탄이 날아온다.
"쌤!! 서자(庶子)가 카지노 게임?"
전교 상위권에 든다는 중학생 윤재, 슬슬 스팀 켜지려는쌤한테 기름을 통째 붓는구나?!
윤재 : 아... 왜요, 쌤? 서자가카지노 게임?
나 : 너....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지? 학교에서 오늘 <홍길동 단원을배웠다며!
윤재 : 하. 하. 하... 배웠죠. 그런데서자는.... 서자... 뭘까... 요?
'웃음으로 이 상황이 무마가 될까, 윤재야?
이왕 묻는거, 서자를 물으면서 적자도 같이 묻지?'
속으로만 외쳐 본다.
그나저나 이 정도면수업 시간엔 제대로 이해는 했을까, 라는 괜한 오지랖 섞인 염려가 스멀스멀 올라오기까지 한다.
잠시라도 글자를 붙잡고 카지노 게임할 시간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
까만 건 글자요, 흰 건 종이라더니
문맹률 제로에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분명 또박또박 읽는데 무슨 말인지모른다는 건 문제가 심각하잖니, 얘들아?
이게 바로 그 요즘 심각하게 거론되는 문.해.력의 현장인 거니?
아, 그래,쌤이 잠깐 잊고 있었네~
월요일이구나.
월요일은피곤에 절어 녹다운되는 그런 날인거지? 곰 한 마리 등에 업은 듯한 월. 요. 병!
그래서 옷감이 '옷'하고 '감'이라고폭탄 던지듯 카지노 게임 없이 막 던지고,
<홍길동전은 적서차별을 담고 있다고 교실에서 별표에 밑줄 쫙~ 하고선 4시간 만에서자(庶子)가 뭐냐고 슬그머니 묻는 거지?
그래, 너희가 설마 옷감도, 서자도 모를 리 있겠어? 그냥 잠시 카지노 게임에 정지가 왔을 뿐인거지.
책을 꼼꼼하게 정독하고 문맥을 살피면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데 말이야.
미안 미안. 잠시 오해했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해의 미덕을 세우고,마음속 먹구름을 걷어 치우며 다정한 얼굴로 변신하는 순간.
.
.
.
.
.
.
*월요병이라 믿고 싶지만,심각한 요즘 학생들의 읽기력 현장입니다.
읽기력 뿐만 아니라 1분도 '카지노 게임'이란걸하지 않는 공통적인 현상은 모두 고민해 볼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