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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기 Dec 20. 2022

모던걸

책 읽기

우리나라 근대 여성작가들의 수필 모음집을 읽었다. 100년 전의 사람들, 특히 그 시절 여성들의 생각과 시각을 듣고 볼 수 있는 것이 좋았다. 100년 전과 지금은 많은 것들이 다르겠지만, 그 시절의 언어적 표현(물론 출판사에서 현대어로 번역했다고는 하지만)은 너무 멋지다. 그 당시의 삶도 다르지는 않구나, 그 당시는 한편으론 더 힘들었겠구나, 그 당시는 작은 것에도 정말 깊게 알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편, 강경애 작가의 '빨래하는 마음'은 머릿속으로 풍경이 그려지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그런 일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작가의 솔직하고 구체적인 심정과 반짝이는 표현과 묘사로 그 마음이 공감되었다.


눈 오던 그날 밤 - 백신애

...그러나 그녀는 무엇에 취한 듯 자꾸 내 곁으로 다가오며,

"언니!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동안에 눈이 자꾸 내려서 이 속에 포옥 파묻혀 버렸으면......"

그는 커다란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함께 웃으며 옷 위에 쌓인 눈을 서로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가로등에 펄펄 날리는 눈발이 우리를 눈 속에 파묻으려는 듯 싶었다. 이윽고 함께 걷기 시작하였을 때, 나의 가슴은 이국 정서로 가득해지며 남의 나라를 방랑하는 듯 노스텔지어의 마음이 자못 설레였다.

p.35-36


직장의 변 - 노천명

우리는 절대로 현실적인 생활을 무시하고 함부로 덤벼선 안 된다. 생활을 무시하는 태도가 오히려 무시를 가져오는 경우가 생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내 최저 생활의 확보를 위해서 언제나 즐겁게 "짬"을 가질 각오를 하고 있다.

들뜬 생활, 들뜬 생각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늘 무섭다. 요새 가만히 보면 들뜬 친구들이 많이 있다. 들떴던 것은 반드시 가라앉게 마련이다. 가라앉는 데 몇 해가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고 들뜬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남을 보고 내 처지를 살펴볼 때면 때로는 아니꼬운 심정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고생하시는 내 은사 몇 분을 생각한다.

p.53


원두막 - 노천명

"백사과나 가지참외는 없어요?"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고향 참외 생각이 나서 짐짓 물어 봤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참외는 모름지기 백사과가 그만이다. 잘 익은 백사과는 칼을 댈 때부터 사근사근하게 얼른 받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남다르다. 유달리 곱게 잘 익은 백사과는 과장이 아니라 정말 입에서 슬슬 녹는다. 그리고 노랑참외, 개구리참외, 별종참외(서울서는 감참외라던가), 가지참외, 청참외도 참 맛있는데 사치스러운 맛임에도 시원하고 계속해서 먹고 싶은 것은 까맣게 익은 청참외일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이 없는 할머니들이 숟가락으로 긁어 잡수기에 좋은 건 가지참외다. 노르끄레한 표면에 파아란 줄이 죽죽 간 그 빛깔하며, 유난히 부드러워 보이는 촉감하며, 나는 어려서부터 집에 참외가 들어오면 다른거 다 제쳐놓고 길쭉하고 예쁜 가지참외와 배꼽참외만을 골라내 가지고 번갈아 가며 업고 다녔다. 그런데 웬일인지 서울서는 가지참외를 볼 수가 없다.

p.71


무던히 보이는 품이 도무지 장사치가 될 사람 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나보다 인생을 더 잘 알지도 모른다.

가게에서 며칠씩 시들다 곯아버린 참외나 먹다가 이렇게 갓 따온 싱싱한 것을 원두막에서 시원히 벗겨 먹으니 그 맛이 썩 괜찮다.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부대끼고 지내느라 신경이 예민해지곤 하였는데 농촌에서 이렇게 지내는 것도 퍽 좋은 것 같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노인에게 말했다.

"여기서는 먹는 걱정 외에는 별 걱정이 없어서 좋겠군요."

그랬더니,

"먹는 걱정이 그게 작은 걱정 아니죠"

하는 영감님의 태도가 갑자기 철인같이 느껴졌다.

p.72


골동 - 노천명

친구인 G여사에게서 받은 도자기가 한 개 있는데, 나는 이것을 바라다볼 때마다 한 서른쯤 된 청초한 여인을 연상하게 된다. 백자 몸에 돋을무늬로 되어 있는 매화와 대나무를 볼 때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데, 혹시 이것을 구운 사람이 자기의 그리운 여성이나 혹은 자기의 부인을 생각하며 만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닌가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고려 때 사람들은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취미에 운치 있게들 살았을까.

p.82


뉘 집엘 가든 구석에 있는 배나무 사방탁자 하나만 보아도 나는 그 집의 주인 얼굴을 자세히 보는 것만 같다. 낡은 탁자 하나가 풍겨 주는 격과 운치는 거추장스럽고 뻔적거리는 새 세간에 비교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다. 그윽한 운치며 은근한 맛, 이 자기들은 똑같은 것을 기계로 빼낸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다 손으로 만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서 그렇다. 그 하나하나를 한 사람이 만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제각기 다 다르게 생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또 재미있는 점이다. 한 사람의 솜씨로 열 개나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다 다른 개성을 지닌 것으로 만들어지지 결코 똑같은 것은 찾아낼 수 없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골동에 대한 많은 지식이 반드시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겠고, 또 값진 자기나 서화만을 만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값싼 것도 좋다. 내가 만져 볼 수 있는 한도 안에서 가루 물을 담았던 조그만 항아리도 좋고 복숭아 모양을 한 벼루그릇도 좋고 또는 시의 한 구절을 써서 구운 분원의 갑반 사기 술병도 좋다. 여기에서 우리가 넉넉히 지녀 온 예술의 혼을 찾을 수가 있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p.84


젊은 부부 - 나혜석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옆에서 보다가 속으로, '퍽도 사이 좋은 젊은 부부다'하였다.

이 세상,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 그 남자, 그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일러주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야 말로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인가. 과연 일남일녀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처럼 Good and Fine(좋고 멋진)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들은 끊임없이 속삭이며 비밀이 없고, 울 때 같이 울며 웃을 때 같이 웃고, 어려운 때 서로 도우며, 상대가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 내 몸과 같이 아파하며, 서로의 말은 은연 중 다 듣고 서로가 없으면 무슨 일이든 성사하기 어렵다. 서로가 중하게 간직한 책이자 모든 일의 참고서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귀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랴. 간간이 말다툼쯤 하면 어떠하랴. 다툼도 그렇게 여러 번 쌓이 ㄴ것 중 싹이 나면 결국에는 아름답고 귀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된다.

부부 생활에 세 시기를 지내야만 참 아름답고 귀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된다고 하였다. 첫 번째 시기, 서로 연애할 때는 본능적으로 유혹하게 되어 열과 정이 있어 모든 카지노 게임 사이트 좋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결혼 당시로 약 1년 반 동안 그러하다.

두 번째 시기, 한 가정 내 한 방구석에서 2년쯤 서로 지내면 차차 결점을 알게 된다. 즉 권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리하여 미보다도 추, 선보다도 악, 장점보다도 단점이 보이게 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이혼 통계를 보면 결혼 후 2년 혹 3년 된 때가 제일 많다. 그 고비만 넘기면 다시 의식적으로 무엇을 찾아낼 수가 잇다.

세 번째 시기, 결혼 후 2,3년을 지내고 보면 두 사람간에 자녀가 생겨 부득이 떠날 수 없게 되고, 사람도 많이 겪어 보고 하다 보면 세상에는 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개성을 가진 두 자가 만나니 맞을 리가 없다. 서로 양보하여 맞추는 수밖에 없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그들은 이미 서로 장점과 단점을 아는지라 총명한 자는 여기서 상대방의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보는 데에 힘쓸 카지노 게임 사이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이만치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끼게 되면 이보다 더 행복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어디 있으며, 이에 더 아름답고 귀한 일이 또한 어디 있으랴.

그러므로 우리도 한 번 배우고 체험하고 헤아려 이처럼 아름다운 생활을 해볼 생각이 없는지.

p.106-107


프랑스 가정은 얼마나 다를까 - 나혜석

이 집 주인은 50세 정도 되었으나 아직도 건장하고 부인은 다상한 만큼 생기가 넘친다. 부부 사이는 세 개의 시기가 있다고 한다. 청년기에는 정으로 살고, 중년기에는 예로 살며, 노년기에는 의로 산다고 한다. 이 부부는 의로 살 시기였건만 정으로 산다. 남편은 늘 부인의 낯을 엿보아 기쁘게만 해주려 하고 입 맞추기, 레스토랑 가기, 연극장 가기, 지방 연설하러 갈 때면 동반하여 같이 가기 등 일시라도 떨어지는 일이 없다. 아이들은 오히려 따로 돈다. 저녁밥을 먹고 난 이후에는 다 각각 밤 인사를 하고 방으로 올라간다. 부부는 서재에 남아 남편은 신문을 읽고 부인은 그 옆에서 뜨개질을 하며 종일 오늘 있었던 일과 내일 할 일을 상의한다. 그리고 자러 들어간다.

유럽인의 생호라은 성적 생활이라고도 볼 수 있다. 더구나 파리같이 외적 자극과 유혹이 많은 곳이 있으랴. 이들의 내면을 보면 별별 비밀이 다 있겠지만 외면만은 일부일처제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래도 자유로운 곳에 참사랑이 있는 듯싶다.

p.115-116


빨래하는 마음 - 강경애

남편과 날마다 쌈하게 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하니 내가 가정 일에 서툴러서 그러한 듯했습니다. 그래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적으나마 가정 일에 충실해야 할 것을 깊이 알고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

그 다음은 빨래를 하였습니다. 애벌 빠는 것은 비누칠만 해서 방망이로 두드리면 되니까 그리 어려울 카지노 게임 사이트 없으나 애벌 빤 것을 잿물에 삶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서툴러서 퍽이나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잿물을 너무 많이 풀었던 모양입니다. 손끝이 다 빨갛게 벗겨져서 며칠이나 앓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마다 남편은 흥!흥! 하고 비웃었습니다. 나는 끝없이 원망스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이렇게 지나기를 한 일 년이 넘으니 힘들던 빨래질에도 일종의 취미가 붙으며 때로는 예술적 감흥이 생기더이다.

...

가는 부인, 오는 부인, 나는 햇빛을 눈두덩에 받으며 지나가는 부인의 빨래 광주리를 보았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빛나는 빨래! 나는 그 순간에 그 흰 빨래가 내 가슴에 선뜻 부딪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햇빛에 하얗게 빛나는 저 빨래! 저것은 정성스레 빨래한 저 부인의 순결한 마음을 대표하는 듯하였나이다. 사랑하는 남편과 귀여운 어린애들을 생각하며 곱게 씻은 저 빨래, 어머니와 아내의 마음을 대표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아니고 무엇일까요? 봄볕은 저들의 다정한 맘에 따뜻하게 비치는 듯하외다.

강가에까지 온 카지노 게임 사이트 빨래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강가에는 방망이 소리로 요란하였습니다. 봄 하늘 아래 방망이소리, 얼마나 시원한 소리입니까.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의 어리석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저 하늘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의 카지노 게임 사이트 하늘을 건너 펄펄 카지노 게임 사이트 새의 몸같이도 가벼운 듯합니다.

내 손끝은 물에서 헤엄을 칩니다. 빨래는 희어집니다. 헹구면 헹굴수록 희어지는 이 빨래, 새 옷을 입을 때의 쾌감보다도 좋습니다. 때가 묻어 더러운 빨래가 눈이 시리도록 희어지는 쾌감이야말로 빨래하는 이가 아니고는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무심히 보니 내 손끝은 파란 물결 속에서 붉게 타오릅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손을 번쩍 들며 '봄이다!'하고 중얼거렸나이다.

p.160-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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