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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작 May 14. 2025

카지노 게임 사이트 세 번 모이면

2025.05.14.

엄마의 생신날이었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미역국을 끓여야지 싶어서 ‘엄마, 미역국 끓일 건데 드시죠?’라고 물었다. 엄마는 거절했다. 그럼 저녁에 축하 외식을 하자고 말했다. 역시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케이크를 사 와서(별이가 좋아하는 케이크로 골라오겠다는 말로 적절히 쿠션을 더하고) 조촐한 축하 파티를 하자고 하니, 어버이날 이미 했다고 생각한다며 거절했다.


거절이 세 번 모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엄마에게는 그 거절이 진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부담이 될까 봐 다 싫다고 할 거지만 정말로 하나도 안 하면 속상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숨은 메시지를 해석하며 살아온 날들이 워낙 길었기에 이제 나는 그 사려 깊은 의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엄마의 마음도 지킬 수 있을 법한 행동을 택하여 실행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게 미역국을 끓이기로 한다. 평소에 하던 것처럼 압력솥까지 동원해서 거창하게 만드는 대신, 최대한 쉬운 방법으로 미역국을 끓여서 ‘딸이 별로 고생스럽지 않았음’을 최대한 드러내야 한다. 딱 한 끼 분이 나올 정도로 끓여 점심을 차려 드렸다. 엄마의 표정은 알쏭달쏭했다.




작은딸이 멀리에서 출산한 후, 엄마는 꼬물거리는 신생아 손주를 당장 보고 싶었으나, 면회가 어려우니 굳이 내려오지 말라는 작은딸의 말과 충돌해야 했다. 산모의 말을 들으라는 큰딸의 조언은 귓가에 닿지도 않았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면 더 기회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지 엄마는 퇴원하는 날에 맞추어 작은딸을 보고 와야겠다고 했다. 작은딸이 오지 말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에 먼저 연락을 하지도 않고 예고 없이 다녀와야겠다고 말이다.


이번에도 나는 알았다. 엄마는 ‘친정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며 당신 마음 편해지고자 기어코 내려갈 것이고, 손수 만든 반찬이 잔뜩 들어 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그 먼 길을 찾아온 엄마를 보며 작은딸은 기겁했을 것이며, 엄마는 진짜 목적인 ‘갓 태어난 손주 얼굴 보기’를 달성할 거란 걸.


몇 겹이나 덧씌워진 진짜 마음, 그걸 숨기고자 ‘희생’과 ‘양보’라는 무기를 줄곧 써 온 엄마를 내가 모를 리 없다. 이런 고맥락 환경을 오래 버티며 살아와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남긴 흔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건 엄마의 인생이다. 오랜 시간 남을 할퀴어 왔지만, 딸보다 자신을 더 해쳤을…. 할퀴고 잡아 뜯어 너덜너덜해졌으나 그것도 자신의 일부라 받아들였을, 그저 엄마의 인생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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