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집 정짓간엔 오목한 그릇과 소반이 소복했다. 겸상이 익숙지 않던 시절이었다. 가부장이니 전통이니 들먹일 것도 없는 세월의 흔적이었다.
찬이 시원찮을지라도 짝을 이룬 반상기는 늘 소반 위에 놓였다. 그득한 차림새가 아니어도 옹기종기한그릇으로 빛나는 밥상이었다. 소반을 꽉 채운 밥상은 따스했고, 은은한 짠내가 풍겼다.
종재기 냄새였다. 국과 조림, 찌개와 찬은 바뀔지언정 장은 늘 그대로였다. 곁들일 전이나 편육, 회가 놓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먹을 게 거기서 거기인 날들이 이어지면 할머니는 흰밥을 한 입 머금고 종지에 톡 찍은 숟가락 끝을 삼켰다. 가난한 시절이 물려준 소박한 전통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조약돌처럼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매끈한 종지를 가장 좋아한다. 종지에 밴 큰집 냄새가 그리워서 일지도.
흔히 카지노 게임 차림을 삼첩, 오첩, 칠첩, 구첩, 십일첩으로 구분 짓는다. ‘첩’은 반찬을 일컫고, 김치와 장은 첩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김치와 장이 한식 문화의 정수임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첩수가 늘어날수록 상차림의 고민도 깊어지는데, 얽매일 필요는 없다. 고서에 남은 기록을 살필 뿐 규율과 법칙이 널리 자리 잡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카지노 게임 문화가 소중한 까닭은 그 속에 담긴 추억 때문이다. 주발과 사발, 바리와 보시기와 종지에 담긴 사랑 탓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