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몇 달 전 이사를 했다. 전세로 살던 오피스텔이 매매가 되며 새로운 집주인이 그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원래 집주인이 좋은 분이었던 덕분에 크게 전세금을 올리지 않고 살고 있었던 터라 아쉬움이 컸다. 처음 이사왔던 4년 전과 비교했을 때 주변의 전세 시세는 너무 큰 폭으로 올라 도무지 전세로 이사를 갈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이사 날짜가 맞는 집은 월세에다가 한 평 남짓이 작았다. 한 평 차이인데 수납 공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느껴졌다. 큰 평수의 집에서는 한두 평의 차이가 크지 않지만, 작은 평수의 집에서는 한두 평의 차이가 아주 크게 체감된다. 집을 구한 안도감도 잠시, 짐을 줄이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다. 대체 이 옷은 언제 산 것이지? 지네도 아닌데 신발은 왜 이렇게 많지? 읽지도 않을 거면서 이 책은 왜 샀지? 아니 이 목도리는 산 기억이 없는데? 딸은 이삿짐을 다이어트시키느라 이사도 하기 전부터 진이 빠져 버렸다.
이렇게 준비를 했는데도 막상 이삿날이 되니 딸은 온갖 쓸데없는 물건과 잡동사니를 부둥켜안고 살고 있었다. 이삿짐을 나르는 아저씨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원룸 이사라고 해서 짐이 얼마 안 될 줄 알았는데... 이정도면 오만 원은 더 주셔야겠는데요.”
딸은 머리를 조아리며 알겠다고 말씀드렸다. 카지노 쿠폰는 기가 찬 표정이었다.
"너 짐정리 했다더니 이게 한 거야?"
역시 청소와 정리는 카지노 쿠폰가 등판해야 한다. 딸도 나름 자취 경력이 6년차로 접어드는데 왜 카지노 쿠폰가 한 청소는 T.O.P.고 딸이 한 청소는 그냥 청소 같은 것인지. 딸은 말을 얼버무렸다.
"아니,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줄 몰랐지..."
"세상에 이게 다 돈인데... 너 힘들게 돈벌어서 헛짓하려면 계속 이렇게 살아."
카지노 쿠폰의 잔소리를 BGM으로 들으며 딸은 짐정리를 재개했다. 카지노 쿠폰가 나서니 정리가 일사천리로 되었다. 딸이 혼자 정리할 때는 보이지 않던 온갖 오래된 티셔츠며 구멍난 양말, 여행지에서 충동구매한 기념품, 대체 언제 다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학원 교재, 고등학교 때 샀을 법한 머리핀, 권장소비기간이 지난 화장품 같은 것들이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왔다. 20리터 쓰레기 봉지를 몇 개나 내다 버리고, 의류함에 한 자루치는 되는 옷들을 내다 버리고서야 집 안에 있는 수납장에 딸의 짐을 가까스로 우겨넣을 수 있었다.
"이런 싸구려 옷 사서 입지 말고 차라리 제대로 된 옷을 사서 오래 입어."
인터넷 쇼핑몰에서 산 옷들을 한가득 내다 버린 후 카지노 쿠폰는 딸에게 잔사설을 늘어놓았다. 옷 더 안사. 이제 옷을 더 사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이 집은 내 짐들을 토해버리고 말 거야. 딸은 다짐했지만, 얼마 가지 못할 다짐임을 딸도 카지노 쿠폰도 알고 있었다.
옷과잡동사니는정리했지만, 책이문제였다. 벽면에아주큰책장이자리잡고있어책을두단으로빽빽히꽂을수있었던이전집에비해새집은책꽂이가부족했다. 대학교와대학원때전공서적부터해서요즘은펼쳐보지도않는고전문학과오래된경영서까지, 버릴책은 많았다. 딸은책을빼서바닥에내려놓기시작했다.
"너 뭐 하는 거니? 이거 다 카지노 쿠폰려고?"
"응, 어차피 요즘은 읽지도 않는 건데. 봐, 종이도 다 누렇게 바랬잖아."
"그래도 그건 카지노 쿠폰 마라."
"왜? 이거 다 꽂을 데도 없어."
"TV에서 보면 유명한 사람들이나 작가들 인터뷰할 때 항상 뒤에 서재가 있고 책이 가득하잖아. 카지노 쿠폰 그게 참 좋아 보이더라고. 누가 아니, 네가 나중에 성공해서 유명한 사람이 될 지......."
딸은 이미 포기한 딸의 성공을, 딸의 미래를, 카지노 쿠폰는 아직 포기하지 못했나 보다. 아마도 평생 그 희망을 버리지 못할 한 사람이자 그 희망 위에서 살아갈 한 사람. 딸마저 스스로에 대한 기대를 내쳐도 딸에 대한 기대를 내치지 않을 마지막 사람.
"카지노 쿠폰, 나 이제 내일모레면 마흔이야. 성공하려면 진작 했겠지."
딸은 카지노 쿠폰에게 투덜댔지만, 뽑아냈던 책들을 차곡차곡 책꽂이에 도로 꽂았다. 짐이 부쩍 줄어든 집에서 책들만이 파수꾼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