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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Mar 26. 2025

기억나지 않는 카지노 쿠폰



외까풀의 매서운 눈매를 가졌다.

남자는 날렵한 콧날 아래 뾰족한 입술을 움직이며 고민을 뱉어냈다. 자신이 이성에게 매력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네? 오히려 그 반대일 것 같은데요…!?”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빗말이나 위로가 아닌 게, 그가 실제로 굉장히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매와 입꼬리는 뾰족한 만큼 방향에 따라 큰 변화를 만들었다. 무표정일 때는 차가운 인상이지만, 웃을 때는 온화한 눈매와 장난스러운 입꼬리를 가지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 차이는 꽤 멋진 것이었다. 심지어…


“아니, 심지어 그, 그 연예인 닮으셨네.”


나는 별안간 그와 똑같을 정도로 닮은 배우가 떠올랐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서 출연작을 시작으로 그 배우에 대해 설명했다. 그 배우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빠르게 주연급 위치가 되었고, 액션부터 멜로까지 모든 역할을 소화한다. 연기의 호흡도 독특하다. 다른 누군가라면 감정을 폭발시키며 소리를 질렀을 장면에서 오히려 침묵과 날숨을 뱉고는 미간만 살짝 찌푸린다. 잠시 후 “왜 그랬어?”정도의 대사를 읊조리면서 몰입감을 만든다.


“아, 누군지 알아요.”


상대방도 배우가 누군지 알아챘다. 문제는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본래의 주제를 잊고 이름을 기억해 내기 위해 한참을 애썼다.


카지노 쿠폰


잠에서 깨어나며 남자와의 대화가 꿈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그런데 꿈에서 나온 후에도 여전히 그 배우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출근을 위해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고, 양치를 하고, 옷을 걸치고, 에어팟을 주머니에 넣고, 휴대폰을 넣고, 신발에 발을 넣고, 문을 열어 집밖으로 발을 꺼낼 때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열차 안의 수많은 광고판들에 도움을 청했다. 그 카지노 쿠폰으로 연결될 수 있는 단서를 얻기 위해서다. 출근 준비를 하며 이미 기역부터 히읗까지 훑어본 뒤라서 좀 더 불규칙하게 다가오는 글자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에듀윌’과 ‘개인회생’ 그리고 노선표에 있는 수많은 역들은 그 배우에게 다가설 수 있는 길목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환승을 할 때쯤, 나에겐 ‘그 카지노 쿠폰을 원래 몰맀던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모를 리가 없다. 그는 꽤 유명하고, 나는 그가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를 세 편이나 보았으며 영화도 몇 편, 심지어 재밌게 봤다. 얼굴을 비롯하여 여러 표정의 이미지를 분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 이름도 분명히 나의 뇌 속 저장 공간에 있을 것이다.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적고 심지어 최근 몇 년간 더 줄었겠지만, 이름 석자가 비빌 공간쯤은 있을 터였다. 기억하기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그곳으로 도달하기 위한 시냅스들이 매우 약해진 탓일 것이다. 혹은 끊겨 있거나.


물론 당장이라도 검색을 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검색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이 이름을 ‘안다’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초조해졌다. 이런 기분은 최근 동료와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면서 심해졌는데, AI를 활용한 생산성에 대한 대화가 “이러다 결국 바보가 될 것 같아요.“라는 말로 끝났기 때문이다.


검색 후에 알게 되는 기억들을 ‘아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나는 검색법 외에 스스로 기억해야 할 게 많지 않을 것이다. 우연히 그 이름과 비슷한 글자들이 뇌리를 스치더라도 그것을 캐치하고 이 배우와 연결시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이 배우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다. 잊은 것이다. 그런 식으로 꽤 많은 것을 잃어가고, 결국 외부의 정보를 다시 외부에 검색하는 중간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생각 탓인지, 나는 마치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 서서히 무너지는 기억 속에서 그 이름을 움켜쥐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시간이 흘러 회사에 도착했고, 더 긴 시간이 흘러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그 이름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한 글자가 우연히 다가서며 점차 선명해졌고, 나는 그것이 셋 중 하나의 글자라는 확신으로 주변의 시냅스 다발을 끌어모았다. 이윽고 그에 연결돼 있는 다른 글자가 따라붙으면서 순식간에 세 글자가 나타났다. 기쁨을 주최하지 못하고 그 이름을 크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동료가 적지 않게 놀랐다. 만세 자세도 취했던 것 같다.


이것은 단순히 ‘기억해 내는 것’ 이상의 경험이다. 나의 뇌, 그러니까 한 번도 본 적은 없으나 머리통 속에 있는 그것이 뇌로써 잘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휴대폰이나 모니터에 손끝이나 의식이 연결되지 않은 채로, 긴 시간 머릿속을 떠돈 후에야 얻은, 일종의 성과이기도 했다.


기억나지 않는 것들 투성이인 삶에서, 이따금 두 손을 비우고 이런 여행을 떠나야 한다.


카지노 쿠폰




참고로 그 배우는 손석구다.

왠지 그의 카지노 쿠폰을 다시는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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