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내가 살던 로컬을 떠나고 싶지 않은 청년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파
공교육에 대한 지나친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찌 됐든 나는 꽤나 순진했었다.
결국 초중고 12년, 대학교 6년 반, 군대 2년의 시간도 내 진로를 찾아주진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우여곡절 끝에 대전에 있는 한 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후 대학교 지원을 위해 학과를 선택해야 했는데 처음 마주한 부담스러운 막막함이었다. 청소년이 아닌 신분으로 스스로 자기 삶에 책임을 처음 져보는 경험이었는데, 이때의 나에게는 별다른 직업적 꿈은 없었고 내 삶의 청사진도 없었다. 어떤 선택지가 놓일 수 있는지도 충분히 알지 못하고 그 선택의 끝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선택의 시간은 다가왔다. 애당초 무게추가 달려있지 않았던 내 마음은 붕붕 떠 동네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고 있었고, 시간은 속도 없이 내 등을 떠밀어 갈림길로 나를 내몰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언제까지나 막연한 물음표를 달고 있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내 꿈이 비어있던 자리는 다른 이들의 희망들로 채워졌다.
'직업은 공무원이 안정적이지 않니?'
뭐, 썩 내키는 건 아니었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당시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었던 말이었고, 별다른 직업적 자기 선호가 없는 문과 졸업생에게 공무원은 선망의 대상이어야 했다. 공무원을 하려고 해도 혹시 모르기 때문에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고 했다.
여기에 나름 궁핍했던 지갑과 수능 성적점수를 고려해 지금의 대학과 학과를 선택카지노 게임 추천.
실은 이 때도 대전을 떠날 기회가 있었긴 했다.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학비에 생활비에 아르바이트로 점철될 미래의 내 모습은 나를 반강제로 대전에 머물러있게 했다.
행정학과를 다니고 있던 선배들은 대개 세 가지 진로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했다.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을 가거나 사기업을 가거나. 선배들의 선택지는 별 변수가 없는 한 자연스레 후배들의 선택지가 됐다.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과다 보니 일찌감치 진로를 공무원으로 정한 친구들은 한 두 학기 정도 학교를 다닌 후, 흔히 말하는 '잠수'를 타고서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모르던 나는 선배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결심의 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왔다.
공무원은 내 길이 아니었다.. 5급 행정고시를 생각했던 나는 최소 4년 간, 9과목의 두꺼운 책들을 달달달 외우며 노량진을 왔다 갔다 할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나는 '시험'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 비용을 감당할 계산은 감히 시작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3개월 만에 공무원의 꿈을 확실히 접었다. 그렇게 행정학과에 입학한 이유를 포기해 버렸다.
뭐,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배우는 행정학 4년 과정은 노량진에서 6개월 만에 배울 수 있다고 카지노 게임 추천. 덕분에 포기가 좀 더 쉬워진 것 같기도 하다.
다시금 불안이 시작됐다. '나는 대학을 왜 다니지? 이 학과에서 뭘 하지? 내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거지?'
공무원 선택지가 없어진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공기업과 사기업이었다. '공기업? 사기업? 뭐가 있지? 뭐가 더 좋은 거지?'
머리가 복잡해지려던 찰나, 궁핍은 고민할 시간을 앗아가며 나를 아르바이트의 길로 이끌었다.이와 함께 대학교 생활 내 각종 활동들과 수업, 시험기간은 마치 나를 급류에 떠내려가는 종이배처럼 만들었고 '멀리' 보다 바로 '눈앞'의 시간에 집중하며 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남아있었던 미래에 대한 불안은 학내 동아리 활동과 학과생활, 교내활동 등을 틈틈이 하는 것으로 눌러왔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답답카지노 게임 추천.
돈은 늘 부족했고, 아르바이트하느라 시간은 늘 부족하고,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다가올 진로선택의 갈림길은 다가오고.. 여기에 진로탐색에 참고할 정보가 참 없었다.
공무원 공부하는 학과다 보니 다들 혼자 공부했고, 학과도 재학생들의 기업취업 성과보다 공무원합격 성과를 더 중요하게 여긴 듯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기업취업과 관련된 노하우나 기회들이 4학년이 되기 전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기에 나의 아둔함이 합쳐져 복수전공의 존재와 중요성을 3학년 끝나서야 제대로 인지하게 되었고, 대외 활동을 3학년이 끝난이후부터 하게 되었으며, 기업취업 시 보는 인적성 평가를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못해 취업준비 내내 '솔직'하게 작성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었다.
4학년이 되니 확실히 느껴지는, 주변인들에게 깔려있는어두움이 있었다. 많은 친구들, 선후배들이 자기 삶의 한계를 지우고 있었다.
'지방대 출신은 딱 이 정도 밖엔 할 수 없어'
당시 여러모로 진로탐색이 늦었다 생각해 절박한 마음으로 풀타임 2년 휴학까지 해 가며 호주 워킹홀리데이(아르바이트 시간을 아끼려 홀리데이 없이 오직 돈 벌러 간 워킹여정이었다)와 전국단위 대외활동을 경험했다. 그 덕에 대전을 벗어나 전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대학생들의 면면(?)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의 경험은 내 삶의 궤적을 바꾸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슬픈 마음을 들게 했던 것은 그들과 우리의 '격차'였다. 특히 수도권 친구들과의 격차가 확연히 느껴졌다. 수도권 대학교의 취준생들을 보면 그들이 취업하기를 원하는 기업들이 그들이 사는 도시에 있고 그곳에서 활약하는 졸업생 선배들을 쉽게 만나 계속 교류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대내외활동과 배움의기회도 대전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질도 좋았다. 정말 부러웠다. 솔직히 말해 지금도 부럽다.
그런 격차들로 각자가 인지하고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세상의 크기가 달라지게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친구, 선후배들이 이런 격차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여긴 안된다'와 '지방대 출신인 나는 이 정도가 적당해'라는 생각을 꽤나 가지게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와중에 다른 마음도 들기 시작했다. '왜 다들 안된다고만 생각하지?'
호주 워홀 간 익혀 딴 토익 IM2, 운전면허증 1종 보통, 토익 760점, 학생회&동아리 활동 경험 정도로 시작한 교내 봉사활동으로 스노볼을 굴려 G마켓해외봉사단과 지구별꿈도전단 등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전국단위 활동에 선발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 입학점수 기준 범접할 수 없는 대학교 출신 동료들의 팀장으로 팀을 이끄는 경험도 카지노 게임 추천.
당시 가진 나의 무기는 '지원동기' 하나였다. 내 진로탐색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확인했던, 지방출신은 뭔가 잘 '안된다'는 마인드를 바꿔보고 싶다는 마음과 그걸 증명하고자 하는 목표. 반골기질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안된다'는 말이 은근히 기분 나빴고 시원하게 뒤집어보고 싶었다.
그런 지원동기가 전국무대에서 효력을 발휘하니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지방출신도, 지방에서 뭔가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카지노 게임 추천.
그럼에도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졸업을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앞서 기술한 자신감을 처음 느끼게 된 후 반년도 안되어 졸업을 하게 된 거다. 대외활동과 인턴경험을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알고 하게 된 것이 너무 아쉬웠다. 초반 경험을 포트폴리오 삼아 더 나은 경험을 할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부족한 포트폴리오로 취업을 하려 여기저기 넣어 서류합격은 종종 받았었지만 '인적성'시험 답안을 공부 없이 솔직(?)하게 적은 덕에 계속 떨어졌다.
취업도전의 마지막은 곧 다가왔고 나름 화려카지노 게임 추천. 유니클로 영업직 서류합격해서 면접을 보러 서울로 상경카지노 게임 추천. 서울에 있는 친구집에서 한 밤 자고 다음날 아침 면접장 앞에 갔다가 뭔가 신묘한 감정에 끌려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한 뒤 그 길로 대전으로 내려왔다. 그 신묘한 감정은 지금도 뭔지 해석이 잘 안 된다.
그렇게 4학년 1년과 졸업유예 반년 동안 취업에 도전했다가 결국 취업 선택지도 반 강제로 포기하게 되었다.
졸업 당시 28살, 가진 것은 대학 졸업장 한 장. 그리고 공무원 진로와 취업진로는 내 길이 아니라는 개똥확신.
그런 나는 졸업과 동시에 여러 결정을 해야 했다. '창업을 할 것인가?' 그리고 '대전에 있을 것인가?'
어릴 때부터 마약, 주식, 도박, 창업은 하지 마라는 어른들의 말을 참 많이 들었었다. 그런 나에게 창업 진로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창업 아이템도 하나 없었다.
대전을 떠나는 선택지도 고민했었다. 취업이든 창업이든, 이미 졸업으로 그 압박이 한층 심해진 나에게 빠른 승부는 중요했고, 빠르게 좋은 결과를 내려면 더 많은 기회가 있는 곳으로 가야 했다. 그것은 대전을 떠나는 선택지를 의미했다. 하지만 대입 시절에 했던유사한고민 앞에 또 다시 섰어야 카지노 게임 추천.
대전을 떠나게 되면 오랜 시간 알고 쌓아온 인적네트워크와 물적자본, 본가에서 받을 다양한 지원들을 포기하고 새로 다 쌓아야 카지노 게임 추천. 직장을 구한 뒤 옮기는 거라면 벌이가 있으니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포기한 것들을 새로 쌓는 것은 엄청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반대로 남고자 생각하니 또래에 비해 이미 늦어버린 진로탐색과 결정의 격차를 당길만한 기회가 충분치 않을 것 같아 고민이 컸다. 또 좋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친구와 선후배들을 보며 지속적인 상실감을 느껴야 했다.같이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또는 즐겁고 행복한 일과 삶을 계속 함께 도모하며 살아갈 수 있을 텐데 누구 하나 지역을 떠나면 그럴 수 없었다. 소중한 누군가가 좋은 기회를 얻어 떠나갈 때마다 기쁘면서도 착잡카지노 게임 추천.
2014년 8월, 코스모스 졸업 후 나름의 결심을 세웠다. 대전에 남기로 했다.여전히 돈이 부족카지노 게임 추천.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동기가 생겼다. 증명하고 싶었다. 대전, 내 로컬을 떠나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일과 삶의 모습을 찾아 이루고 누리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증명할지 갈피는 잡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대학교 입학 때처럼 눈뜨고 당할 수는 없었다. 어물쩍 내 기준 없이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소 늦은 나이지만 공교육이 해결해주지 못했던 진로탐색을 다시 해보고자 했다.
이미 늦었으니 기왕 내 삶의 선택기준 찾는 거 진득하게 찾아보자는 의미로 2년이라는 시간을 스스로에게 허락했다.그렇게 2014년 8월을 기점으로 내 삶의 나침반은꽤 다른 방향으로 돌려지기 시작카지노 게임 추천.
이어질 이야기들은 그 이후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감정, 인사이트에 대한 것들이다. 화려하고 멋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내가 살던 로컬을 떠나지 않고도 원하는 삶과 일을 찾아 누리고자 하는 청년들에게 작게나마 위로와 힘을 보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