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각은 없었는데 카지노 게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했다 카지노 게임
나는 부모님의 이혼 이후 결혼에 대한 환상은커녕 기대도 별로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는 그래도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디즈니 공주병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 나는 영화에서 보던 부부가 아이와 함께 살다가 헤어지는 일이 내 부모님의 일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울 엄마 아빠가 이혼이라니.' 내 머릿속에서만 가능했던 상상이 내 앞에 현실로 다가온 순간, 내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이랬다. “그럼 내 결혼식 때 누가 손잡고 들어가?”
나에게 한 줄기 희미하게 남아 있던 결혼에 대한 환상은 그때 완전히 사라졌다. 부모님의 이혼은 당시 나에게는 매우 큰 충격과 슬픔이었지만, 그와 동시에 분명히 배운 게 있었다.
배우자와 어떻게 지내면 이별하게 되는지 말이다.
어떤 말투와 표정을 사용하면 배우자가 상처받는지, 그리고 슬퍼하는 배우자를 공감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빠르게 대화가 줄어드는지 부모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존심을 부리며 사과를 먼저 하지 않으면 더 일이 커지거나 스스로 찌질해 질 뿐이라는 것도 부모님을 보며 알게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갈등이 있거나 의견이 다를 경우 늘 소리를 지르며 싸웠다. 가끔은 '이 두 사람은 정말 지치지도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부모님의 그라데이션 분노와 급 발진 분노들을 수년간 지켜보며 나는 나중에 내 배우자와 잘 지내기 위해서 나의 엄마 아빠가 서로에게 보인 행동은 절대 나의 반쪽에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성인이 되어 연애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잠재적 배우자가 될 수도 있을 애인들을 배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친구들과 선배들은 나에게 “남자친구에게 너무 잘해주지 말라”고 충고했다. 내 언니는 “적당히 밀당을 해야 네가 만만한 여자친구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연애하는 사람 따로 결혼하는 사람 따로야."
대학교 1학년 친구들하고 술을 먹다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매우 놀랐다.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연애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했다.
학점 관리도 하고 놀러 다니며 연애하는 게 힘들어 죽겠는데, 밀당 같은 것에 쓸 에너지가 아까웠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사랑을 찾으려 노력했고, 사귀는 상대에게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했다. 나는 주변에서 놀랍다고 말할 정도로 정말 사귀었던 남자친구들에게 잘해줬다.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사귀는 상대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을 참고 이해해 주면 상대방도 내 진심을 알고 서로를 배려하고 발전하는 연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보인 배려와 애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한 것이 되어갔다. 나의 배려와 이해심을 당연하게 여기던 몇몇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남자친구들을 겪으면서 나는 나름대로의 연애관을 확립했다.
‘내가 잘해주는 걸 당연시하지 않고 늘 고맙게 생각해 주는 사람과 만나야겠다’.
대학교 시절 사귄 애는 내가 게임을 줄이고 취업 준비를 더 하는 게 너에게 좋을 것 같다고 말하자, "네가 싫다고 하면 이제 앞으로 게임을 절대 안 하겠다" 고 선언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애는 나에게 잘 자라고 사랑스러운 카톡을 평소보다 더 길게 보내는 날이면 늘 새벽에 롤을 하고 아침 수업에 지각을 했었다.
롤 전적 페이지를 나에게 보여주다가 이 사실을 들킨 후 미안해하며 다시는 게임을 안 하겠다던 그는 계속 반복해서 거짓말을 들켰고 나중에는 게임을 못하게 하는 내가 너무 자신을 억압한다고 투덜댔다. 그 이후 그 애는 자기는 게임을 못하게 하는 사람이랑은 결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니? 너가 안 한다며...ㅎ
그 당시 나는 그 애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보다, 몸이 안 좋아 일찍 잔다고 구라치고 게임을 해 놓고는, 며칠 뒤 자신의 롤 티어가 올랐다며 나에게 자랑하던 그 아이의 지능이 더 실망스러웠다.
그 애와 헤어진 이후 나는 게임하는 남자와는 사귀지 않았다. 이후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거짓말하는 사람, 멍청한 사람하고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다. 이후 여러 연애와 미팅 경험을 통해 사귀고 싶은 남자친구에 대한 기준들이 생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귀고 싶지 않은 남자에 대한 기준들이 생겼다.
재밌는 사실은 결혼한 이후 나는 남편과 같이 게임을 한다. 나는 사실 게임하는 남자가 싫었던 게 아니라 자기조절 능력이 없는 사람이 싫었던 거다.
대학교 이후 만났던 남자친구들은 생각해 보면 그냥 다 비슷비슷하게 나랑 안 맞았었다. 나 또한 걔네들한테 그랬겠지.
취업 후, 지인들이 카지노 게임을 해 주겠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대학원 졸업장과 대기업 회사원이라는 그 두 가지 만으로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주변 지인에게 카지노 게임을 주선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데이트도 하고 연애도 하고 싶어서 나는 열심히 카지노 게임을 했다. 나의 20대 중반 시기를 대학원에 갈아넣었으니 이제 남은 20대 시간을 회사에만 갈아 넣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친구 중에 인맥이 많은 애한테 카지노 게임을 하고 싶다고 하니, 한 단톡방을 보여줬다. 그 단톡방은 내 친구의 동기들끼리 만든 단톡방이었는데, 거의 일주일에 2,3번씩은 남자 사진과 프로필이 올라온다고 했다. 벚꽃이 피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봄, 겨울이 시즌이라고 했다.
내 친구는 내가 남자친구가 생길 때까지 그 단톡방에 올라오는 남자들 프로필을 보고 카지노 게임을 할 건지 물어봤다. 내가 원하는 기준을 말해주면 친구는 그걸 메모장에 적어 놨다가 내 조건에 맞는 사람이 카지노 게임을 하고 싶다고 모집이 뜨면 나에게 전달해 줬다.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대단했다. 내가 결혼 전까지 했었던 카지노 게임의 절반 정도는 이 친구가 주선해 줬던 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친구도 의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시간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카지노 게임 주선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그 친구가 톡을 보내오는 식이었다.
친구: <나이 33, 연세대 졸업, 거주지 수원, 삼성, 키 180(비율 때문에 더 작아 보일 수도 있다 함), 자가보유, 자차 없음, 현재 서울에서 부모님과 거주 중이지만 곧 자가로 독립할 예정이라 함. 키 큰 여자를 좋아함, 여행 좋아함, 맛집 좋아함
나: <스펙 좋네. 근데 나이가 걸리네. 난 패스.
친구: <남자 친구 만들고 싶다며, 나가봐 그냥. 조건 좋아서 이 사람 빨리 오케이 안 하면 누가 채갈 듯. 일단 이 사람 카지노 게임 받는다고 한다?
나: <아 구래. 나가보지 뭐
친구: < 연락처 보냈으니까 기다리면 남자한테 연락 올 거임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으면 어느새 나의 주말 일정은 카지노 게임으로 꽉 차게 된다. 카지노 게임은 희한하게 한 번에 몰려 들어올 때가 많았다. 카지노 게임이 겹쳐서 들어오는 때는 주말에 카지노 게임 두 번을 하기도 한다. 내 주말은 소중하니까 둘 다 별로일 경우를 대비해 하루에 몰아서 만나는 게 좋다.
점심에 한 개, 저녁에 한 개.
점심에 만난 사람이 맘에 들면 저녁 카지노 게임을 끝내고 다시 점심에 만났던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한 번 보고 헤어진 사람들도 많고, 두세 번 더 데이트를 했던 사람들도 있다. 다 그냥 제 각각의 이유로 나랑은 잘 안 맞았다.
20번이 넘는 카지노 게임을 한 이후에도 나는 연애를 하기 위해 피곤해 죽겠지만 주말에도 화장을 하고 배에 힘을 줘야 하는 옷을 입고 카지노 게임을 나갔다. 진짜 피곤했다.
물론 나도 처음 카지노 게임을 나갈 때는 카지노 게임을 한다는 사실에 두근두근 했다. 오늘은 정말 나의 인연이 나올까?라는 기대로.
놉. 나의 인연은 없었다.
29살이 되니,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다 괜찮아 보이는데 왜 연애를 하지 않는지 물어보고 싶은 애'가되었다. 결혼도 슬슬 해야지~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이때부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별로 딱히 결혼 생각은 없었는데, 카지노 게임에 나가면 결혼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랑 사귀고 결혼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하다 보면 현타가 와서 피곤했다.
50번째 카지노 게임을 하고 나니 이제는 나의 주말은 토요일 일요일 모두 매우 소중 하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은 그냥 점심에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애프터가 들어오면 퇴근하고 다시 만나서 카지노 게임 남과 저녁을 먹었다. 카지노 게임을 많이 하던 당시 정말 서울에 있는 맛집이란 맛집은 다 다녀서 그런지 결혼 이후 요즘은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맛집들에 가지 않아도 전혀 아쉽지가 않다.
아무튼 이렇게 카지노 게임을 하면서 나는 나 나름대로 남자친구는 물론 배우자에 대한 기준이 생겨 갔다. 친구는 나보고 그 정도면 너가 기준이 너무 높은 거라고 했다.
아니, 카지노 게임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재미가 없는 걸 어떡하나. 카지노 게임도 재미가 없는데 사귀면 뭐 더 볼 것도 없는 거 아닌가?
친구들은 나에게 카지노 게임 남이 그냥 적당히 맘에 들면 사귀어 보고 그래야지 다 따지면 남자친구를 만들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적당히 맘에 드는 사람을 사귀었는데, 진짜 너무 힘들었다. 진짜 재미없는 연애를 몇 번 하고 나니 더더욱 신중하게 연애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웃긴 건 카지노 게임을 하면 할수록 나중에는 오히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더 편하다고 느꼈다.
매번 잘 되지 않는 카지노 게임을 반복하던 어느 여름, 나는 그냥 당분간은 혼자 지내는 게 제일 맘 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회사에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에 나는 남자 친구 만들기 프로젝트는 잠시 접어 두고 이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직 성공.
새로운 지역으로 매일 왕복 3시간을 운전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카지노 게임을 할 체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마스크를 쓰고 다시 열심히 카지노 게임을 했다. 내가 친구에게 부탁하기도 하고, 친구가 나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다. 물론 다 몇 번 만나서 데이트하다가 흐지부지 끝나는 일들의 반복이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마스크를 후다닥 벗고 습기로 무너진 화장을 고치며 식당에 들어서는 것도 이젠 피곤했다.
지친 나는 카지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로 인해 더 강력해진 ott 컨텐츠 들과 혼술 유행으로 인해, 집에 혼자 있어도 할게 많았다.
외로우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고, 심심할 땐 동네 친구들과 만났다. 그렇게 남자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카지노 게임이 들어와도 별 기대 없이 맛집 탐방하는 느낌으로 마실 다녀오듯 카지노 게임에 나갔다.
이직한 회사에 적응해 갈 때쯤, 어떤 남자가 자꾸 생각나기 시작했다.
나보다 연차가 많은 팀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