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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리업 Apr 27. 2025

저는 카지노 게임 될 수 있을까요?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독서 감상 일부

"저는 카지노 게임 될 수 있을까요?"

김영하 <단 한 번의 삶 142쪽


이 질문은 카지노 게임 지망생이라면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예전엔 챗지피티도 없었는데, 기어코 그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고 마는, 참을 수 없는 그 질문을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김영하 작가님께서 교단에 섰던 시절, 이 질문을 꽤 받으셨다고 한다. 질문을 던진 학생들에게 답을 주지 못하셨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들려오는 소식을 돌이켜봤을 때, 그 질문을 한 학생들 중 작가가 되었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여기서 내 마음이 불편했다. SNS에도 이 부분을 인용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자기도 이래서 성공했다며 하고 싶은 마음이 불안을 이겨내야 한다고 했다.


질문을 기어코 하는 이유, 그것은 보장된 글쓰기를 하고 싶어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기 확신이 없고 두려운 마음 때문이다. ‘비웃음이나 당하지 않을까? 나에겐 재능이 없어서 영영 글을 완성 못 하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질문이다. 나에게 물어보면 도돌이표, 영원히 질문만 하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름 판단도 해봐도 답이 안 나와서 누군가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카지노 게임 될 수 있는가?’ 사실 이 질문 너머에 질문이 더 있다.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나는 누구인지 내 미래는 어떨지 생각하며 불안에 떠는 자들의 단골 질문.


이 질문을 타인에게 던지는 자들은 삶의 답을 찾아보려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 요행을 바란 것 일수도 있다. 요행은 실패를 부를 확률이 높다. 나의 경우, 고등학생 3학년 때는 ‘80일 만에 서울대 가기’가 가능하다고 믿었고, 취업 준비할 때는 '6개월 만에 9급 공무원 합격하기' 이런 걸 믿었다. 당연히 실패했다.


내 글은 '쓴 것’보다 '토해낸 것'에 가깝다. 살고 싶다는 비명을 꺼내서 글에 옮기는 것이다. 속 안 좋을 때 토하고 나면 속이 좀 편한 것처럼, 글을 쏟아내고 나면 개운해진다. 아주 조금. 아직 긁어내야 할 게 태산이다. 평생 걸려도 다 못 긁어낼 것 같다.


내가 쏟아낸 글, 이건 과연 글일까? 똥덩어리 아닌가?


이걸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누군가 무슨 뜻인지는 알아먹을 수 있게 번역하는 게 참 어렵다. 나도 모르는 그 감정을 내가 번역은 하는데 이게 맞는 번역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찝찝한 채 끊임없이 글을 수정한다. 그래서 내게 그냥 쓴다는 건 어렵다.


책을 덮고 나니, 10년 후에 카지노 게임 되지 못한 사람이 바로 내가 될 것만 같다. 죽기 전까지 못 할 거라고 못 박는 말 같다. 그렇게 단정 짓 듯 내 미래를 말하는 게 싫어서 변명을 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작가님께 편지를 섰다. 나는 작가님의 팬이다. 그래서 더 두려웠다.


나는 카지노 게임 될 수 있을까?


나는 최근에 ‘하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쓴다. 카지노 게임 안 돼도 누가 안 봐줘도 글 쓰겠지. 살기 위해서, 섭섭하고 외로운 마음 가득 안고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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