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의 산책
발코니 창 너머로 햇빛이 길게 아파트 놀이터를 덮는 것이 보였다. 일기 예보에서 오늘 기온이 많이 올라가 따뜻할 것이라 했는데 저렇게 철제 놀이 기구들을 밝은 햇볕이 덮어주니 따뜻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토요일 점심 식사 후 이런 햇볕을 집 안에서 보기만 하는 것이 아깝다 생각했다. 민재의 아내 수영도 같은 생각에 강아지 핑크와 셋이서 밖을 나섰다.
왠일로 수영이 집 근처 하천 산책로 까지 가보자고 한다. 평소 차 아니면 버스로만 가는 거리였는데 수영도 오늘 컨디션이 좋은 것 같다.
“자기 참 커피 쿠폰 있다고 했지?”
맞다 얼마전 민재는 은행앱에서 무료 커피 쿠폰을 받았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쿠폰 2장. 작년 까지만 해도 별다방 커피 쿠폰이었는데 경제가 어려워 진 것을 반영한 건지 저가 커피숍 쿠폰으로 바뀌었다. 이 커피숍 쿠폰은 민재 큰 딸 때문에 마셔본 적이 있다. 꿀 아메리카노가 맛있다고 해서 작년 여름 성수동에 갔을 때 한 잔을 시켜서 아내와 마셨었다. 뭔가 소박하고 적당한 단 맛이 좋았다. 그 이후로 몇 번 집에서도 꿀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봤는데 이상하게도 뭔가 그 커피숍에서 사먹는 맛은 나오지는 않았다.
집에서 커피숍까지 100미터도 안되는 거리 였지만 핑크가 여기 저기 맡고 싶은 냄새가 많아 길 옆 화단을 샅샅이 살피면서 가서 꽤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고3인 둘째 딸에게서 SOS 연락이 없다면 특별히 이번 토요일 오후는 민재와 수영에게 바쁜 약속 같은게 없었어서 한없이 여유로왔다.
커피숍 키오스크에서 어떤 것을 마실까 민재와 수영은 메뉴를 보았다. 민재가 받은 것은 아메리카노 쿠폰이었지만 다른 것을 마셔도 차액만 내면 대개 주문이 가능했기에 다른 메뉴를 보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메리카노의 카페인도 두 사람의 수면에 점점 방해가 되어 왠만하면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다.
문득 민재는 주문을 계속하기전 점원에게 이런 민재의 추측이 맞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만에 하나 다른 음료 주문이 안되면 아마도 민재와 수영은 그냥 쿠폰대로 아메리카노를 시킬 것이다. 아이들이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지출이 늘어난 마당에 먹고 싶은 음료를 마시는 것은 두 사람에게 사치로 느꼈졌다. 민재와 수영은 자신들이 아끼고 그 아낀 돈을 아이들이 더 좋은 곳에 쓸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다.
민재와 수영은 올해가 결혼 21주년이다. 다른 부부들 처럼 결혼 생활이 계속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고비들을 넘어 21년 동안 같이 살게 된 사실이 서로에게 감사했다. 민재의 수입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지출을 줄여서 그럭저럭 살 수 있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수영은 생각하는 것 같았다.
“네 가능하세요. 나중에 결재할 때 쿠폰 버튼 눌러서 사용하시고 차액만 결재하시면 되요”
제법 나이가 들어보이는 커피숍 직원은 그렇게 친절하지도 또 그렇게 불친절하게 느낄 정도도 아닌 중간 톤으로 민재에게 답을 했다. 민재는 사실 메뉴를 골라놓고 결국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되는 상황이되면 비효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직원에게 말로 물어 보았던 것이다. 민재는 기본적으로 누구에게 뭘 물어보는 걸 싫어했다. 그것은 민재의 회사에서 뭘 물어보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분위기 때문에 학습된 습관이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무언가 비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고 낭비를 하는 것이 더 싫었던 민재는 그런 경우에만 묻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키오스크에서 꿀아메리카노 따뜻한 것과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차가운 것을 골랐다. 민재는 예전 꿀아메리카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설렜다. 민재는 그런 사소한 것에 설레는 자신이 조금 웃기게 느껴겼다. 민재는 ‘큭큭’ 아주 작은 소리로 그런 자신이 웃겨서 웃었다. 키오스크에서 결재창으로 넘어가 쿠폰 등록을 하였다. 보통 바코드 등록이 잘 안되서 손으로 바코드 번호를 입력하곤 했는데 이번엔 바코드 등록이 한번에 잘 되어 기분이 좋았다.
이제 남은 금액만 결재하면 되었다, 카지노 쿠폰 순간 고민이 되었다. 보통 신용카드로 하면 되지만 이 키오스크에는 제로페이 결재도 가능했다. 카지노 쿠폰 바로 지난 주 서울사랑상품권을 구매했었다. 어떤 사람은 겨우 5% 할인인데 번거로운 것이 아니냐 했지만 5%로면 왠만한 은행 금리 보다 높았기에 카지노 쿠폰 주저하지 않고 구매를 했었다. 항상 자신이 아낀만큼 아이들이 조금 더 좋은 걸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민재는 제로 페이가 되는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반사적으로 제로페이를 눌러 결재를 시작했다. ‘띠띠띡, 유효하지 않은 결재 입니다’ 이런 결재가 되지 않았다. 제로페이에서 서울사랑상품권이 서울페이로 이관되고 나서 이전 제로페이 메뉴로 되지 않는구나라고 민재는 생각했다.
‘이런..’
민재는 난감했다. 처음부터 다시 주문을 해야 했다. 결국 민재가 처음에 비효울적 시간 세이빙을 위해 직원에게 물어보았던 노력은 소용없게 되었다. 민재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노력한만큼 돈을 벌수 있다 주의였던 민재는 좌절하지 않고 빠르게 원래 메뉴를 고르고 쿠폰을 입력한 후 남은 금액을 결재했다.
민재와 수영은 한 두발짝 테이크 아웃 창에서 물러나서 직원들이 바쁘게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카지노 쿠폰 별다방 보다 가격이 저렴한 만큼 직원들이 더 바쁘게 많이 만들어야 수지가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재와 수영이 이 가게에 온지 10분정도가 지났지만 직원들 손은 계속 바삐 움직였다. 손님들도 계속 줄지어 왔다.
“63번 커피 나왔습니다”
마침내 민재와 수영의 커피가 나왔다.
“우와 용기가 되게 크다”
수영은 별다방 커피 일반 용기 보다 1.5배는 커보이는 이곳의 용기를 보고 어린 아이 처럼 좋아했다. 민재는 그런 수영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민재는 꿀아메리카노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 ‘이야’ 민재는 작년 여름 성수동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꿀 아메리카노가 너무 맛있었다.
민재와 수영은 다시 길을 나섰다. 핑크는 기분이 좋은지 민재와 수영보다 몇 발자국을 앞서 가면서 줄이 팽팽해 지면 뒤를 돌아 멍멍하고 짖었다. 마치 ‘엄마, 아빠 뭐해 빨리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 잘 짖지 않아 벙어리가 아닌가 처음에 걱정까지 했던 핑크인데 저렇게 짖는 걸 보니 기분이 정말 좋은 것 같았다.
얼마 후 민재는 하천 산책로에 도착했다. 따뜻한 날씨와 봄내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수영과 핑크와 함께 이 시간을 누릴 수 있는게 민재에게는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하천에서 천천히 걷는 큰 부리의 하얀 새들과 운동하는 사람들, 산책을 하는 사람들 벤치에서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사람들 모든 광경이 너무 좋았다.
“갈까?”
수영은 민재를 돌아보며 말했다. 하천 산책길에서 40분정도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민재는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 하면서 티비 채널을 돌리거나 게임을 할 생각에 웃음이 났다. 그리고 또 밤이 되면 공부하느라 고생하는 고3 딸을 데리러 갈 것이고 항상 바쁜 대학생 딸이 밤 길에 잘 오는지 걱정하면서 작은 집 안에서 민재와 수영은 평범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냥 아무것도 새로울 것 없는 이런 토요일이 민재에겐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일도 다음주도 이럴 수만 있으면 겸손하고 감사하게 살아야 겠네'하고 민재는 스스로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