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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모즈 Apr 24. 2025

카지노 게임 불안을 보듬은, 작약

무겁고 어두운 색채, 다소 기괴하기 까지한 카지노 게임의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과연 그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감히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드바르드 카지노 게임는 1863년 노르웨이의 로텐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으나 이내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 모두가 오슬로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네, 카지노 게임의 아버지는 의사였어요. 비록 군인의 신분이었지만 일반 환자들도 진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가정 환경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의 집이 진료실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는 어린 시절 부터 아픔과 죽음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답니다.

카지노 게임가 다섯 살이던 해에 그의 어머니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꼬마 카지노 게임는 얼마나 큰 충격과 상실에 빠졌을까요? 쉽게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카지노 게임 불행의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카지노 게임가 14살이던 때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형제 중 가장 친했다고 알려진 한살 터울의 누나인 소피가 어머니와 같은 병인 결핵으로 사망합니다. 이후 소피는 카지노 게임의 그림에서 아프거나 죽음을 앞둔 소녀의 모습으로 자주 표현되기도 해요.


카지노 게임 가족의 불행은 이후에도 계속 됩니다. 성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젊은 나이인 26세에 카지노 게임는 아버지를 떠나 보냅니다. 그리고 3년 후 형 안드레아스가 폐렴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 게임의 가족 중에는 신경쇠약이나 정신분열 등으로 긴 시간 사회에 나서지 못한 채 고통 받았던 이들도 여럿 있어요.

카지노 게임의 불행을 나열하는 것만 같아 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아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들만 보아도 카지노 게임가 얼마나 고통과 죽음에 가까이 있었고 그 아픔을 절절히 견뎌 내어야만 했을지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됩니다. 어쩌면 카지노 게임는 가족 한 명 한 명에게 죽음이 닥칠 때 마다 혹시 이 다음은 내 차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가지지 않았을까 해요. 이 두려움과 공포는 결국 형 안드레아스가 죽은 다음해에 '절규(The scream 1893)'라는 작품을 통해 표현 됩니다.


나는 풍경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내 영혼의 상태를 그린다

카지노 게임는 대표적인 표현주의 화가입니다. 어쩌면 그 자체가 표현주의를 시작했고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예요. 카지노 게임의 그림은 대부분 인물 중심적이지만 그렇다고 인물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카지노 게임가 그린 것은 사람의 외면이 아닌 감정이니까요. 그리고 그 감정의 대부분은 공포와 슬픔 그리고 불안입니다.


표현주의의 대두는 당시로서는 필연적이었을 거예요. 카메라의 발명은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라 해도 카메라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게 되었어요. 수 많은 화가들이 붓을 꺾었지만 또 많은 이들은 새로운 길을 찾았습니다. 바로 사진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여전히 그림으로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 즉,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카지노 게임는 캔버스 가득 불안의 감정을 담아 내었습니다.


불안, 우울, 신경쇠약, 공황장애는 물론 알코올 의존 등 여러가지 마음의 병을 얻은 카지노 게임는 오랜기간 힘겨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도저히 스스로의 의지로는 이 고통에서 빠져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는 전문적인 치료를 받기로 해요. 다행히도 이 시도는 그의 삶은 물론 그림의 분위기 까지도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1908년 10월 부터 이듬 해 봄인 5월까지 약 8개월 동안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야곱센클리닉(Dr. Jacobsen’s Clinic) 이라는 곳에서 요양과 치료에 전념하게 되는데요, 개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시설이 우수하고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가장 진보된 정신 의학 치료가 진행된 곳이라고 해요.

주요 치료 방법은 대화와 산책 그리고 규칙적인 생활들이었어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죠?

요양원의 곳곳을 산책하며 카지노 게임는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시야를 내면이 아닌 주변의 풍경 특히 자연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카지노 게임는 일기와 메모 그리고 은유적인 짧은 글들을 통해 그의 마음 상태를 기록하였는데요, 치료 기간의 글들을 통해 카지노 게임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어요. 정말 다행이지요.


나는 이제 어둠 속에서만 살지 않으려 한다.
햇빛과 꽃, 푸른 하늘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치료를 마친 카지노 게임는 노르웨이 오슬로로 돌아와 여생을 이곳에서 보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카지노 게임의 화풍은 1908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닐거예요. 그의 색채는 훨씬 밝아지고, 무엇보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자연, 특히 꽃(!)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정물 처럼 꽃만 그리는 것이 아닌, 여인이나 소녀가 꽃을 돌보거나 물을 주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였는데요, 이는 어린 시절 결핵으로 떠나보낸 어머니와 누이의 투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카지노 게임Woman with peonies, 1926

그는 여느 화가들 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나 해바라기, 양귀비 등을 자주 그렸습니다. 꽃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 중 저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작약을 그린 것이었어요.


5월의 꽃, 작약

작약(Peony, 학명 Paeonia 파이오니아) 은 온화한 기후대에서만 자랄 수 있습니다. 북반구에서는 5월에 개화를 해요. 우리나라 역시 작약은 5월에만 꽃을 피웁니다. 노르웨이는 우리나라 보다 훨씬 높은 위도대에 있는데 작약이 자랄 수 있을까요? 네, 그렇다고 해요. 카지노 게임가 살았던 오슬로는 난류의 영향으로 5월 기온이 10도를 웃돈다고 합니다. 작약이 꽃을 피울 수있는 충분한 조건이지요.

오슬로의 정원사들은 공원이나 정원에 작약을 많이 심었기 때문에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지노 게임유럽작약. 출처 위키피디아

우리가 볼 수 있는 작약은 크게, 꽃 잎이 여러장 포개져 있는 겹작약과 꽃잎이 하나의 층으로만 이루어진 홑작약이 있습니다. 겹작약은 종자 개량을 통해 생산된 것이므로, 아마도 카지노 게임 시대의 작약은 (위 사진과 같은) 홑작약이었을 거예요.


겹이든 홑이든 작약은 강한 향이 특징입니다. 5월의 꽃시장에 가면 그곳 가득 작약의 향으로 차있는 것이 느껴진답니다. 작약의 향은 달콤해요.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 기분 좋은 달콤한 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5월이면 작약이 무척이나 기다려 집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약의 향이 기다려 진다고 할까요? 연중 딱 이 맘 때만 맡을 수 있는 향이지요.


5월의 어느 날, 카지노 게임가 오슬로의 공원을 산책하던 때에도 그의 후각과 시선을 끄는 작약들이 피어 있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작약이라면 카지노 게임의 상처 받은 마음을 충분히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카지노 게임는 1944년,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는 평생 죽음과 고통에 대해 걱정하며 불안해 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마음의 병을 제외하고는 신체적으로 심각한 사고나 질병을 겪은 적 없이 삶을 다하게 돼요. 하지만 마음의 병 역시나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거예요.

평생을 고독 속에서 죽음의 불안 가운데 헤매었을 그가 작약을 비롯한 꽃들을 통해 치유 받고 평온히 눈을 감았길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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