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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27. 2025

나는 카지노 쿠폰 집중한다

나는 카지노 쿠폰에 예민한 사람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이름의 렌즈가 있다. 어떤 이름의 렌즈를 주로 쓰는지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달리 보인다. 내가 자주 쓰는 렌즈는 ‘나는 왜’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다들 잘 견디는 걸 나는 왜 견디질 못할까. 나는 왜 기쁨보다 카지노 쿠폰에 집중할까.


한참을 스스로에게 파고 들다가 생각했다. 렌즈를 한번 빼보자고. 렌즈를 빼고 그냥 사실을 담백하게 앞에 놓아보자고. ‘나는 왜 카지노 쿠폰에 집중할까’라는 문장에서 ‘나는 왜’를 빼고 나자, 한 가지 사실이 남았다.

나는 카지노 쿠폰 집중한다

그리고 놀랐다. 이 문장이 나를 꿰뚫어보고 있음에. 나를 꿰뚫어보는 눈길이 어느 쪽으로도 삐뚤거나 기울어지지 않은, 담담한 눈길이라는 사실에. 몇 천년을 늙지 않고 살아 온 현자가 ‘그런 사람도 있지’라는 투로 내게 말하는 듯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학교에 들어가기가 그렇게도 싫었다. 야자시간엔 어떻게든 학교를 빠져나오려 애썼는데, 필사의 탈출을 하고 찾는 곳은 근처의 초등학교였다. 어둠이 내린 초등학교 조회대에 친구와 누워 초록 천막을 보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날의 주제는 남의 이야기를 자주 옮기는 한 사람이었는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가 저 편에서 이렇게 말해왔다.

“세상에는 눈이 작은 사람도 있고 큰 사람도 있잖아? 어느 쪽이 딱히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 남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있고, 안 하는 사람도 있지. 그냥 나는 모든 게 그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 편해.”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친구의 말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었다.


카지노 쿠폰에 집중하는 건 나의 특성. 세상엔 기쁨에 집중하는 사람도, 카지노 쿠폰에 집중하는 사람도, 그 모든 것에 집중하는 사람도,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그것에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된다.


기쁨에 집중하는 사람은 보통 세상의 말로 ‘긍정적인 사람’이라 불린다. 그런 사람은 많은 이의 이상형이기도, 많은 기업의 인재상이기도 하다. 기쁨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는 수많은 이들이 그와 비슷해지려 노력해 보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집중하는 능력이라는 건 노력한다고 해서 잘 되지 않는 거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그렇게 되는 사람처럼 되려노력하다 제 풀에 지쳐버린다.


기쁨에 집중하는 사람에어딜 가나 조금씩 다른 모습의 기쁨이 있듯, 카지노 쿠폰에 집중하는 사람은 어디서나 카지노 쿠폰을 감지한다. 가만히 카지노 쿠폰 속에 자신을 집어 넣는다. 잠수부처럼 카지노 쿠폰 안에 푹 들어가 감각해 본다. 이건 어떤 종류의 카지노 쿠폰인가. 몸의 어떤 부분이 특히 아픈가. 전에 느껴본 적 있는 카지노 쿠폰과 비슷한가. 비슷하다면 어떤 부분이 비슷한가. 전혀 다르다면 어떤 부분이 특히 새로운가.


피가 뒷목을 타고 솟아 오르는 카지노 쿠폰. 대놓고 아프진 않지만 딱 신경 쓰일 만큼만 계속해서 따끔거리는 카지노 쿠폰. 배와 가슴을 잇는 부위가 대처할 방법이 없이 턱 하고 막혀버리는 카지노 쿠폰. 아무에게도 손을 뻗을 수 없을 만큼 철저히 혼자가 되게 만드는 고립무원의 카지노 쿠폰까지. 실로 다양한 카지노 쿠폰이 나를 거쳐갔다. 카지노 쿠폰을 느끼고, 카지노 쿠폰에 사로잡히고, 카지노 쿠폰에 잡아 먹히고, 어느쯤 나를 갉아 먹고 나서야 카지노 쿠폰은 지나갔다. 모든 카지노 쿠폰이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느끼지 않고, 사로잡히지 않고, 잡아 먹히지 않고, 나를 갉아 먹지 않으려고 버티자면 그럴 수 있었다. 오는 바람을 막고 서 있는 사람처럼 용감하게 우뚝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카지노 쿠폰을 가로막고 서 있으려면 힘이 들었다. 힘이 풀리면 카지노 쿠폰은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러고는 또다시 나를 잡아 먹었고, 나를 갉아 먹히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지나가고 나서야 괜찮은 몸과 마음이 되었다. 그래야 버티지 않고도 먹고 잘 수 있었다.


별 일 없이 먹고 자다 보면 카지노 쿠폰은 또 왔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바이러스처럼 카지노 쿠폰을 묻히고 올 때도 있었고, 내 안에서 아주 작게 또아리를 틀고 있던 카지노 쿠폰이 어느 날 갑자기 물에 붇은 것처럼 부풀어버릴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진다지만, 어떤 카지노 쿠폰에도 결코 무뎌지는 일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도 모든 카지노 쿠폰에 똑같이 무방비 상태였고, 무력하게 카지노 쿠폰을 받아들였다. 내 몸에는 굳은 살 대신 이곳저곳에 잔주름이 패였고, 성숙함과는 관련이 없는 주름을 카지노 쿠폰의 흔적이라 여기게 되었다.


나는 카지노 쿠폰 속에 있다. 카지노 쿠폰 속에 내가 있다. 아파하면서 나는 또 내가 된다. 여러 겹의 껍질을 벗어내는 생명체처럼 카지노 쿠폰의 거풀을 벗어내면서 발견하는 건 전혀 새롭지 않은 나. 나의 또다른 속살. 어디까지 있을지 모를 껍질을 끊임없이 긁고 벗어낸다. 몰랐던 무엇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다.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해 자기 몸을 긁는 사람은 없다. 간지러워서 별 생각 없이 긁는다. 긁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그럴 수 있지만 노력의 고삐를 늦추는 순간, 어김 없이 긁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된다.


그냥 그러고 있다. 아무 노력 없이 카지노 쿠폰 속에 머무르고 있다. 빠져나오려 노력하지도,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카지노 쿠폰을 등지고 서 있지도 않다. 노력하지 고도 집중하고 있다. 나는 카지노 쿠폰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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