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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Mar 25. 2025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서걱거린다

잘 차려진 밥상. 윤기가 흐르는 하얀 쌀밥. 후후 불어 크게 한 입 먹는다. 밥의 온기에 모든 날선 감각이 둥그렇게 무뎌진 순간, 서걱. 맞부딪힌 어금니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 모래다. ‘이렇게 하얀 밥에 모래가?’ 온갖 의심을 뒤로 하고 연거푸 서걱서걱. 얼마 전엔 돌이었을 커다란 알갱이가 씹힌다. 하지만 이미 한 입 크게 베어 물었기에 도로 뱉을 수도 없는 노릇. 목구멍이 벌개지도록 꾸울꺼억 밥 한 술을 삼킨다. 이후로는 깨작깨작. 밥 한 알 한 알을 혀로 더듬거리며 확인한다. 식사시간은 힐링이 아닌 의심의 시간이 되어버린 지 오래. 그렇게 한참 동안 밥알을 핥는다.


뜻밖에 모래를 씹은 서걱거림.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의 관계를 표현하자면 이것과 비슷하다. 멀리서 보는 우리는 가깝다. 누구나 머릿속에 그리는 사이좋은 모녀 같다. 누구나 퇴근길에 그리는 찰진 쌀밥처럼. 하지만 우리 사이는 뜻밖에도 서걱거린다. 대화를 길게 이어가는 것도, 서로의 팔짱을 끼는 것도, 나란히 걷는 것조차도 자연스럽지 않다.


7년 전,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처음으로 교토에 갔다. 편집하던 여행책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단둘이 떠난 교토여행 이야기를 읽고 충동적으로 항공권을 결제했다. 다정한 기념사진을 남기려고 스냅사진 촬영도 예약해 두었다. 여행날짜가 가까워질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아빠도 동생도 없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런저런 관광지에 가고, 기차를 타고,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일이 막막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딸이라지만 실은 10년 넘게 따로 살아 온 타인. 생각만으로도 불편했다.


사진 촬영은 생각한 대로였다. 각자 독사진은 잘 나오는데 둘이 같이 있으면 어색한 공기가 감돈다고, 이상하다고 사진작가는 말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주보며 웃고, 뒤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끌어 안는 일 모두가 쉽지 않았다. 사진작가의 주문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 중간 사진을 보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나 모두 입만 간신히 웃고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두 분 좀 떨어져서 서서 입 가리고 어색하게 웃어 보세요.”

마지막 주문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 대신 카메라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것이 그날의 A컷. 2018년의 추억으로 남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딸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싫어한다. 감동을 자아내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 그걸 보면 눈가가 촉촉해져서 눈물을 흘려야 할 것 같다. 서로를 다독이며 따뜻한 눈물을 흘리는 것. 우리에게 그건 몹시 어색한 일. 그렇기에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일이다. 마음에도 포즈가 있다는 어느 소설의 문장처럼 관계에도 포즈가 있다면 우리가 가장 편안해하는 포즈는 핀잔이다.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진짜 그만. 이제 전화 끊는다.”

이런 말을 던질 때 나는 목소리가 커진다. 매번 전화해서 같은 말을 하고 또 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못마땅하다.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30대 암환자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밤중에 안 좋은 꿈을 꿨을 때, 내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불안 스위치는 한 번 켜지면 걷잡을 수 없다. 시도때도 없이 전화하고 카톡하며 내가 잘 지낸다는 걸 확인받아야 한다. 그래서 어떤 것도 말하기 힘들다. 아플 때도 바쁠 때도 마음이 힘들 때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괜찮다’고 한다. 그래야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안심시킬 수 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안심해야만 내가 편히 지낼 수 있다.


아프고 바쁜 걸 말하지 못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괜찮지 않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많은 이야기를 나는 과거형으로 듣는다. 요며칠 몸살이 세게 왔었다고, 입원한 이모 대신 가게 보느라 정신 없었다고. 마음이 힘들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힘들다는 말 대신 심심하다고, 적적하다고 한다. 그 말에 숨긴 힘듦을 알아채 주길 바랐을까. 하지만 우리 관계에 감정이 끼어들지 않게 하려 안간힘을 쓰는 내가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하는 일은 없다.


“밥 먹었어?”

“응.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도 이제 곧 먹으려고.”

“그래, 맛있게 먹어.”

우리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어떤 곳에도 흠잡을 곳 없는, 흠이 끼어들 틈을 허용하지 않는 대화. 그렇게 우리는 가까스로 매끄럽다.


온라인 쇼핑을 하다 편한 구두를 발견하면 온라인 카지노 게임 생각을 한다. 아무리 편해도 예쁘지 않은 건 싫다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 잠깐 집 밖으로 나갈 때도 치마를 입고 나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이걸 신으면 어떨까. 고민하지만 사지 않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한테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세계가 있으니까, 하고 생각해 버린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안목과 내 눈은 다르니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세계엔 또다른 예쁜 게 있을 테니 그걸 존중하기로 한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 들른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신고 온 빨간 꽃신. 내가 발견한 구두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그걸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역시, 주문 안 하길 잘했어. 온라인 카지노 게임한테 물어보고 색깔 고르고 사이즈 고르는 것도 일이야.


뒷모습만 보면 나이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젊어진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패션. 통 넓은 바지와 허리까지 오는 짧은 패딩은 어디서 샀을까. 물어보니 동생이 자기 껄 사면서 하나 더 사줬다고 한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꽃구두와도 썩 잘 어울리는 동생의 옷.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세계 안에 자신의 세계를 툭툭 잘도 얹는 동생이 부럽다.


30년 전,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가게에 출근했다. 둥근 카라에 데이지 꽃이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시계약을 갈고 반지와 팔찌를 팔았다. 버리려고 산처럼 쌓아둔 옷더미에서 원피스를 찾아내 세탁했다. 본래의 뽀얀 빛깔을 되찾은 원피스는 내가 10년째 아껴 입고 있다. 사실,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거의 모두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서 나왔다. 그런데도 나한테는 나만의 세계가 있다고, 그건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세계와 다르다고 큰소리를 친다. 이 모든 걸 아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나의 큰소리가 좀 귀여울까. 귀여워서 그저 볼멘 소리로 “알았어” 하고 마는 걸까.


한 달 전,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두 번째로 단둘이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에도 일본. ‘사람이 없는 교토’라 불리는 소도시였다. 사실은 동생과 셋이 가기로 한 여행. 여행을 2주 앞두고 동생이 갑자기 취업하게 되어 둘이서 가야 했다.

“그냥 취소하자. 다음에 시간 되면 셋이 가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말했다.

“다음엔 시간 안 나. 취소 수수료도 비싼데 그냥 가.”

나는 막무가내였다.


아침 8시 비행기를 타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고, 여행지에 도착한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호텔 체크인을 하자마자 아기처럼 긴 잠에 들었다. 자다 깨면 다시 잠들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기만 몇 시간.

“나 그냥 혼자 나갔다 올게.”

하늘이 어둑해진 시간에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나간다는 딸이 못미더웠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하는 수 없이 따라나섰다. 이자카야에서 생맥주를 나눠 마시고, 이국의 언어로 쓰인 메뉴판에서 아무거나 손짓으로 주문하고, 전혀 상상할 수 없던 메뉴가 눈앞에 놓이는 걸 보며 웃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단둘이 웃기. 철들고 나서는 할 수 없게 된 일을 여행지의 설렘을 빌려 해보았다.


그날 술집에 갔던 게 참 좋았다고. 취소 안 하고 여행 가길 잘했다고. 데리고 와줘서 고맙다고 마지막날 밤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말했다. 이 모든 말을 한 번에 한 건 아니고, 정신없는 대화 와중에 더듬더듬 한 말조각을 기워내듯 하나로 이어본 것이다.

“재밌었으니 다행이네. 나도 재밌었어.”

나도 이렇게 말했다. 이 말 또한 절대 한 마디로 이어서 한 것은 아니고, 2박3일 동안 대답한 ‘다행이네’, ‘재밌었어?’, ‘나도’, ‘재밌네’를 이어붙인 것이다. 그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용케 이렇게 기억하고 친구들한테 자랑하겠지. 우리 딸내미가 여행을 가서 신기한 맥줏집에도 데리고 가고, 예쁜 가게 구경도 많이 시켜줬다고. 사실은 모래알이 가득 든 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는 잘 먹었다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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