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정동극장 대표 판소리 뮤지컬의 귀환
국립정동극장에 판소리 뮤지컬 <적벽이 돌아왔다. 판소리 뮤지컬 <적벽은 2025년 3월 개막으로 6연을 맞이했다. 공연 <적벽은 적벽대전을 소재로 박진감 넘치는 안무와 강렬한 에너지의 판소리 합창을 펼치는 ‘판소리 뮤지컬’이다. <적벽은 3세기 한나라말, 위 촉 오가 혼란한 정세 속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는 1368년 발간된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 500여 년 후 그를 바탕으로 조선에서 불렸던 판소리 ‘적벽가’를 원천으로 무대화한 작품이다.
조조에게 거대한 붉은 망토가 씌워지며 공연은 시작한다. 혼자서 감당하기도 어려운 기다란 망토는 무엇도 확신할 수 없는 정세 속의 권좌를 상징할 것이다. 이어지는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와 조조에 대항할 계략을 찾기 위해 제갈공명을 찾아가 삼고초려하는 장면, 손권과 연합을 이루는 장면이 이어진다. 한편, 권좌를 차지한 조조는 유비가 차근차근 힘을 쌓는 동안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카지노 게임 추천대전은 최약체였던 한나라의 유비가 절묘한 전략으로 최강의 조조를 대상으로 승리를 거둔 이야기이다.
삼국지에는 승자가 없다.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이 최후 승리자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진나라는 북방 민족에게 단기간에 멸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벽대전은 승자와 패자가 있는 이야기이다. 유비에게 주어진 것이 상승의 이야기라면, 조조에게 주어진 것은 하강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공연 <적벽을 본 많은 이들은 상승한 유비만큼이나 하강하는 권력, 조조에게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적벽은 적벽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으로 공연의 성격이 급변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조조이기 때문이다. 적벽대전 이전까지, 즉 완전한 승패가 나뉘기 전까지는 분투하는 약세군과, 절대권력의 조조가 품위 있게 무대를 뛰어다닌다. 그러나 적벽대전으로 승패가 명확히 갈라졌을 때, <적벽은 재빨리 희극으로 전환된다.
위엄있는 풍채로 무대를 호령했던 조조는 정신이 없어 자기 말도 거꾸로 타고 우왕좌왕 도망 나간다. 그나마 몇 남지도 않은 신하들도 막 대하며 자신의 목을 치러 온 관우에게는 목숨을 애걸한다. 목숨을 보전하는 것만이 조조의 모든 과제가 된다. 기세등등한 조조와 구질구질한 조조는 분명 한 사람이다. 공연 후반부에 웃음이 멈추지 않던 이유는 권세 있던 한 인물의 낙차를 보는 재미도 한몫했으리라. 그렇다면 기세등등함과 구질구질함 중 어떤 것이 진짜 조조인가. 그 두 가지가 모두 한 사람의 것이라는 점이 권력의 얼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 구질구질함마저도, 난세에서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절박함임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나름의 일관성이기도 할 것이다.
혼란한 정세, 영웅호걸은 보이지 않고, 끊임없는 전쟁만이 지속된다. 권세가에게 전쟁은 권력과 야망을 실현할 방도이겠지만, 이 세상을 갈아 길을 내며, 밭을 이고, 밥을 지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다. 조조의 군인들은 수세에 몰리자, 군인이 아니었던 자기들의 이야기를 토해낸다(카지노 게임 추천가 중 ‘군사 설움’ 대목). 조조도 실컷 무시해 준다.
몰아닥치는 정세에서 그 속을 살아내며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동시에 대단해 보였던 인물이 상황에 몰려 추접스러운 말을 내뱉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결국 무너지는 것은 민중의 삶이다. 삼국지연의와 적벽가는 모두 유비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쓰였다. 그러나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조조의 낙차는 권력의 얼굴을 보여주고, 군사의 노래는 위기 속 민중의 설움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유비라는 또 다른 승리의 서사는 이 정세의 판을 뒤집을 만한 계기인가. 그렇다기엔 우리는 그저 이리로, 저리로, 살아갈 뿐이 아닌가.
<적벽의 가장 큰 힘은 판소리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공연 <적벽을 보면서, 뮤지컬보다도 오페라를 먼저 떠올렸다. 오페라와 뮤지컬 모두 노래, 춤, 악기, 무대 등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하나, 구체적인 음악의 성격과 형식에 의해 구분된다. <적벽은 한국의 판소리 적벽가에 그 기반을 둔다. 판소리꾼들의 합창으로 구성되나 형식으로의 소리꾼과 고수의 존재, 막의 형식 등은 <적벽은 무용과 함께 보는 판소리 공연으로 이해된다. 오페라를 먼저 떠올렸던 것은 판소리가 요구하는 음악의 내용 및 형식은 클래식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판소리의 호소력을 극적으로 펼쳐 보인 ‘판소리 뮤지컬’이라는 형식은, 그러므로 이 공연을 보아야 할 모든 이유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