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風磬) 이야기
습성(習性)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에, 내 의식에, 내 언어에 버릇처럼 생겨버린 것들이 있다. 말할 때 고개가 살짝 왼쪽으로 기울어진다든가, 알고리즘에 휘둘린 것도 아닌데 특정 방향으로 사고가 흐른다거나, 평소 자주 쓰는 단어나 말투가 있다거나 할 때 정작 나는 모르는데 다른 이들이 나의 그 습성을 알려주곤 한다. 어떤 이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나와 조금 떨어져 객관화된 시각에서 보고 얘기하는 것이니만큼 새겨 들어야 할 것이다.
사진을 꽤 오랜 시간 찍고 다니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 사진에도 일정한 습성들이 생겼다. 어디를 가든 하늘을 날고 있는 새를 만나면 일단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래서 새 사진이 유독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유럽에서도, 쿠바에서도, 아프리카에서도 새를 만났고 여지없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만큼은 아니지만 절에 가서 풍경(風磬)을 만나면또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커다란 절 건물에 비하면 처마 끝에 조그맣게 달린 그 풍경이 뭐라고 이리저리 각도를 바꿔 가며 부지런히 앵글에 담는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런 사진들을 뒤적거리다가 정말 어느 순간 번쩍하고 깨달음이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새도, 풍경도 아니고 하늘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새가 좋았다면 새의 디테일을 담으려 한다거나, 거대 장비를 둘러메고 산속 호수를 찾아다녔을 텐데 나는 전혀 그러지 않았다. 새는 그저 하늘을 날고 있는 조연이었고 주연은 그 배경이었던 하늘이다. 그래서 한낮의 밝은 햇살이나 석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는 나에게는 새든, 풍경이든 그저 역광으로 새카맣게 보여도 별 상관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푸른 하늘을 헤엄치는 새, 붉게 물든 저녁 하늘을 날아가는 풍경의 물고기가 좋았던 것은 그저그 새나 물고기가그 하늘에 가볍고 경쾌하게 퍼져나가고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때문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는 물고기
산사(山寺)를 가끔씩 찾는 것은 경쾌함이나 즐거움 때문이 아니다. 대체로 고요함, 평온함, 뭐 이런 종류의 것들이 고파질 때가 되면 '절에나 한 번 다녀올까?'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산사에서 가끔씩 경쾌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풍경(風磬)이다. 자연스레 흘러내리던 지붕이 살짜쿵 발끝을 들 듯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드는 처마의 끝부분에 매달려 바람의 움직임을 소리로 들려주는 것. 범종의 묵직함과는 달리 카랑카랑한 맑은 소리를 내며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것이 참으로 경쾌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살랑살랑 몸을 흔드는 것이 물고기가 아닌가. 고요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사찰에서 조금은 덜 그래도 괜찮다는 듯한 그 소리와 자태는 존재감을 한껏 드러낸다. 작은 것이 존재감은 참으로 크다.
그래서 더욱 크다.
바람결을 따라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가 '따랑따랑'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다닌다. 작고 가벼운 소리를 공중에 흩뿌리며 바람 속으로 퍼져 나간다. 근원이 어디인지를 알리려는듯 제 몸은 그 자리에 있지만 그 맑은 소리로 온 하늘을 휘돌아 다니게 한다. 고요히 잠들어 갈 것만 같은 숨막히는 적막이 몰려와도 이따금씩 '따랑'하며 소리를 내다. 잠들어서는 안된다. 파묻혀서도 안된다. 그대로 잊혀져서는 안된다. 그래서 깨어 있어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그 소리는 더욱 크다. 침잠하려는 중생들과, 번뇌에 파묻힌 중생들과, 소리없이 사라져가는 중생들을 위해 두 눈 부릅뜬 물고기는 처마 끝 하늘에 매달려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소리를 카랑카랑하게 내고 있다. 그래서 그 소리는 참으로 크다.
역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풍경 소리는 제멋대로 아무때나 소리를 내면서도 규칙성이나 리듬감은 전혀 없다. 그래서 율법을 따라야 하는 사찰의 엄숙함을 함부로 깬다. 마음의 평온함을 얻고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그 고요함을 아무 때나 깨는 존재이다. 그래서 처마 끝 작은 종에 소리를내는 존재로 하늘의 동물도, 땅 위의 동물도 아닌 물 속의 동물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느닷없는 조합은 새로운 느낌을 만드니까 말이다.물론 불교에서는 '물고기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으므로 수행자는 마땅히 물고기처럼 자지 않고 수행에 임하라.'는 뜻으로 쓴다고 하지만 범종각 안에 흔히 목어도 따로 있는 만큼 그것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어울리지 않는 둘을 하나로 어울리게 하는 것,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을 만들어 내게 하는 그 역설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나는 물고기가 울리는 풍경 소리의 참 의미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삶의 어디에나 존재하는 역설을 풍경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날다.
그래서 물고기도 그렇게 엄숙한 법당 처마 끝에서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며 날아 오른다. 물 속 존재가 물결이 아닌 바람결을 타고 하늘을 나는 셈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시각으로, 하늘을 유영하는 물고기는 청각으로 나에게 그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푸르고 시원하고 경쾌한 자유로움을 한껏 보여준다. 그러니 그런 자유로움을 동경하는 인간에게 하늘은 늘 매력적인 곳이 된다. 그러니 그 곳에서 마음껏 노닐고 있는 새의 날갯짓과 풍경의 맑은 소리가 나에게 이미 습관처럼 각인이 되어 있던 게 아닐까 싶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하늘을 활강하는 새의 모습과 소리를 낼듯 말듯 출렁이다 기어코 '띠링'하는 소릴 무심결에 내는 풍경은 그 모습이 경쾌하고 역동적이지만 또한 소란스럽지 않은 고요한 움직임이고 소리이기도 하다. 이 또한 알듯 모를듯한 역설이다.
강물 따라 올라와
대웅전 처마에서
바람 소리 모아서
산새들을 깨우는
그 맑은 풍경소리에
정한 마음 머문다
- 이철우의 「풍경소리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