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아하는 걸 좋아하게 할 순 없다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한 작가 지망생이 어렵게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당장 세상이 끝나도 꼭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말겠다는 구구절절 절실한 마음을 조용히 듣고 나서 작가가 물었다. "어떤 글을 쓰고 있나요?" 당황한 지망생이 대답했다. "바빠서 아직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진 작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책은 읽고 있나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아니요.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차가워진 얼굴의 작가는 단숨에 외쳤다. "때려치워라, 이놈아. 하고 싶고 되고 싶은데 하루에 단 1분도 사용치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게 도둑놈과 뭐가 다르냐!"
책을내고나서종종질문을받는다. 어떻게책을쓸수있었냐고. 다른이유가없기도하고진실이기도해서글쓰기가좋아계속하다보니되었다고하면별로믿지않는눈치다. 뭔가특별한계기나결심이있었던거아니냐며재차묻는다. 그런거없이쓰는게재밌어서꾸준히즐겼더니기회가찾아왔다고솔직하게전할뿐이다. 가끔눈을동그랗게뜨면서본인도쓰기좋아하고이름박힌책한권내는게평생소원이라며대화를더이어나가려는사람이있다. 반가운마음에그저먼저했을뿐인내경험이도움이된다면얼마든지알려드리겠다며한발짝다가서지만, 곧단단하게가로막힌벽을발견한다. 그렇게좋아한다면서한글자도 안 쓰고 있기때문이다. 쓰는건그렇다치더라도꼭 내고싶다는책도한자안읽는다. 더이상해줄말이없어서둘러뒤돌아도망친다. 좋아서한다는유일한공감대가빠진상태에서는아무말도통하지 않을 테니.쓸데없이잡혀있기싫어아무거나둘러대고빠져나오면문득 심각하게궁금해진다. 시간과정성을전혀들이지않는데입으로만좋아한다고하면좋아하는건가싶어서.
이젠 흔해진 '덕후'라는 말. 좋아하면 깊숙하게 빠져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식과 경험을 쌓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좋아하는 진심을 알 수 있다. 온몸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이 빠져있는 취향이 진실일까. 운동을 좋아하는 데 몸으로 직접 하거나 눈으로 관람하지 않고, 노래를 좋아하는 데 목으로 직접 부르거나 귀로 듣지 않는다면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있다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만큼 덜 좋아한다는 뜻이다.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과의 데이트에 나가기 싫은 마음을 떠올려보자. 적극적인 행동을 위해선 취향의 강도가 세져야 한다. 요만큼 밖에 좋아하지 않는 걸 이만큼이나 당장 움직일 만큼 좋게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이제부터 이걸 많이 좋아하겠어!'라고 다짐해도 마음이 변할 리 없다. 아무리 혼자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주변에 좋아한다고 떠들어도 정작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딱 그만큼 덜 좋아하는 거다.
문제는혼자해결하지못하는욕심을채우고싶어지면서생긴다. 별로좋아하지도않으면서정말좋아하는사람만큼이루고싶은마음에괜히안달이난다. '나도이만큼이나간절하고바라는데왜나는안될까?'라면서조급해진다. 행동이없어생기는차이가쉽게좁혀지지않자답답해하며실제로 즐기는 남을찾아간다. 소용없다. 바라는도움은남이해줄수없는대상이다. '더좋아하게만들어주세요.' 이걸해줄수있는남이어디있겠나. 남의행동을끌어낸다는건결국취향을변화시킨다는말이다. 아무것도하지않고있는사람을'덕후' 수준까진아니어도주변에서한눈에알아볼정도로실제로즐기게만들어야한다. 이게말이되는일인가? 불가능하다는말은이럴때써야한다. 자기마음도좋아하고싫어하는걸마음대로못한다. 근데그걸밖에있는남이이래라저래라할수있겠는가. 도울수있는게없다고시인하면믿지못한다. 별것도없으면서감춘다고여기며못마땅해한다. 나도너만큼좋아하는데여건이안될뿐이라며편하게핑계를뱉어가면서.
'하고싶은데못해서' 남에게상담과조언을받고만족해하는 걸 목격하면 눈을 의심한다. 도대체무슨말을주고받고나서흡족하게돌아섰을까? 타인의선호도를올려줄수있는상담가가대단한건지, 아니면남의말을듣고순식간에취향이강해진방문객이대단한건지모르겠다. 사실이라면이제부터세상에짝사랑은사라져야하지않을까? 내가좋아하는사람이나를좋아하지않아도갑자기좋아하게만드는게가능해졌으니까. 남이좋아하는대상과정도를마음껏휘두를수있다면손쉬운일일테니. '무슨헛소리를이렇게진지하게하는거야?'라는생각이들었다면제대로 의도를파악했다. 바로그게‘정말좋아하는데아직시간이없어서못하고있어요. 어떻게하면할수있을까요?’를들을때의내마음이다. 실제로좋아하지도않는데어떻게남이좋아하게만들수있을까? 다른이의취향을변화시키는건어불성설이다. 취향이변하지않으면행동도변하지않는다. 그러므로타인의행동을바꾸는건있을수없는일이다.
'무엇이 좋다'라고 착각하기 좋은 세상이다. 보기에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게 많으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다. 말로 좋아하는 건 쉽다. 계속 내뱉다 보면 진짜로 좋아한다고 믿게 된다. 환상이 사라지는 건 한 발짝 나서서 실행하려고 할 때다. 망설여지고 귀찮아지고 미루게 된다. 손쉽게 느꼈던 흥분된 감정은 온데간데없다. 행동할 수 있는 취향은 많지 않다. 살면서 진짜로 좋아하며 움직이는 순간은 손에 꼽는다. 시간과 정성은 유한하기에 몸으로 보여주는 대상이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거다. 전부 다 하고 살 순 없다. 이걸 좋아해서 하면 저걸 좋아해도 할 수 없다. 어제 기꺼이 한 일을 떠올려보자.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면 그걸 좋아하는 거다.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했다면 지금은 그걸 좋아하는 거다. 우리가 한 일이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건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덜 좋아할 뿐이다. 행동과 바람이 다르다고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이거 좋아하는데, 저거 하고 싶은데’라는 말은 무의미하고 무용하다. 아무리 그런다고 행동 없는 희망 사항이 갑자기 온몸을 바칠 정도로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많이 안 좋아해서 말만 하고 안 하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게 덜 괴롭다. 한 발짝도 물러서기 싫어서 '절대 그런 거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야'라고 줄줄이 입에서 나온다면 이미 안될 이유가 좋아함을 앞선다는 반증이다. 진짜로 좋아하면 핑계는 사라진다. 안 좋아하는 걸 괜히 좋아한다고 비틀어 위안하며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자.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기도 짧은 시간이니까.
남이 무엇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남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확률 없는 일에 소중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라고, 세상을 알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글을 쓰라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대상과 강도가 다를 뿐이다. 변화는 스스로 깨닫고 정말로 좋아지면 일어난다. 결국 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다. 취향의 변화, 그러니까 행동을 바꾸는 일은 남이 해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