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 중에 최고는 장비 빨
주말의 루틴, 세차를 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다음 주 브런치에 뭐 쓸지 알 것 같아."
"엉?"
"제순이 산 얘기 쓸 거지? 1. 친구들이 왔다. 2. 제습기가 좋다고 했다! 3. 그래서 나도 샀다, 제습기!"
"...?!"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온라인 카지노 게임 구입기를 써보겠습니다. (보고 있나 송아지)
앞이 안 보이게 비가 퍼붓던 며칠 전 동무들이 집에 놀러 왔다. 웬만하면 약속을 취소해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지만 우린 웬만하지 않으므로 비를 뚫고 만났다. 포장 음식을 사 와서 먹으며 야불댔는데 창밖으로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쏴아아아아 쏟아졌다.
"진짜 습하다. 축축해."
"요새 빨래가 잘 안 말라."
"제습기 틀어야지! 난 이제 제습기 없인 못 살아!"
"진짜 좋지, 제습기."
슈니와 니니는 입을 모아 제습기를 칭찬했다. 제습기 몰까...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내 마음은 궁금함으로 둥실 부풀었다.
지금 사는 집은 풀옵션이라 들어올 때 가전이라고는 내 돈 주고 산 게 하나도 없다. 남편과 상의 끝에 제습기를 주문하고 나는 신중하게 이름을 고민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어때?"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어감이 좀 그런데... 뽀송이 어때?"
"우리 집은 '순' 자 돌림인데... 청순이(청소기), 토순이(토스터), 집순이(나)..."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작명 천재 니니에게 얘기했더니 뽀송+제순=뽀순이라는 기똥찬 이름을 지어주었다.
택배는 늘 반갑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미 입에 붙어버렸다.)를 데리고 온다는 기사님의 문자는 유달리 두근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먼저 퇴근한 남편에게서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방금 왔어~
-오오오오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커다란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편과 나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환영하는 의미에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상한 전개)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다 먹어 치우고 나서야 박스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꺼냈다.
"네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구나아아아~ 눈, 코, 입이라도 그려줄까."
"...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좋아할까?"
최근 평균 습도 80도를 넘나드는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하는 의미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전원을 켜보았다. 우우우우웅 큰 소리가 한참 나더니 뱃속에 물이 조금씩 생겼다. 신기하네!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기대를 하진 않았는데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쏟아지는요즘 제순이는 우리 집의 영웅이다. 아무리 날이 궂어도 제순이만 있다면 당당하게 세탁기를 돌릴 수 있다. 이렇게 가전의 세계에 눈을 뜨는데... 역시 살림은 장비 빨이군요. 다음에는 로봇 청소기 어떤가요, 송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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