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는 거 빼고 다 할 수 있는 카지노 쿠폰
“본인이 맞으시면 맞다고 하시고, 생년월일을 말씀해 주세요.”
어이가 없었다. 기계적이고 친절한 음성이 나를 압박했다. 카드 사용 신청 도중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ARS를 대표하던 익숙한 여성의 음성이 이제는 숫자 입력을 넘어 대화를 시도 중이다. 나아가 본인으로써 자질까지 묻고 있다니.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사람처럼 대답해야 할지 기계처럼 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한참을 침묵했다. 익숙한 목소리의 여자는 침묵이 싫었던지 딱딱하면서도 친절한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다. 결국 빨간색 종료버튼을 눌렀다. 당장 사람처럼 숨이라도 쉬고 싶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전혀 말이 나오지 않기도 했다.
‘이제 이런 일도 AI가 대신하는 것인가?’ 속으로 중얼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모니터가 오늘따라 멀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하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하는일조차 AI가 할 수 있다 생각하니 모든 것이 부질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침 내 자리로 다른 동료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물어볼 요량으로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꼭 내가 나이 많은 어르신 같고 젊은이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묻는듯한 기분이 들었기에 더 어색한 미소임이 분명했다.
그가 동그란 눈을 뜬 채 어이없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자기도 그랬다며 내 말허리를 잘랐다. 차마 ARS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없어서 전화를 끊었다는 것까지 나와 닮아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웃었다. 우리라는 말로 서로를 지칭하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이때만큼은 회사의 만행이 목적어가 될 수 없었다. 단지 사람으로서, 그러니까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지 않는 존재끼리의 소속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미 비슷한 경험이 많았다. 요즘에는 기차표 예약을 위해 개찰구를 찾거나 전화하지 않는다. 그냥 어플을 깔고 시간과 자리를 정하고 결재만 하면 끝이다. 심지어 역무원이 기차표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빈자리만 체크하며 지나갈 뿐이다. 어렸을 때, 잃어버리면 쫓겨난다는 심정으로 숫자가 지워질 만큼 표를 꼭 쥐고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군가에게 말하면 또 어르신이라며 깔깔 웃어대겠지.
이것뿐인가, 카페에 가도 주문은 사람이 받지 않는다. 멀대처럼 크고 희멀건 키오스크와 씨름하면 되었다. 어떤 곳은 커피조차 사람이 만들지 않았다. 모니터에 팔만 달린 로봇이 원두를 갈고 얼음을 채웠다. 인생 네 장 사진을 찍을 때도, 식당에 앉아 주문을 할 때도, 음식을 들고 서빙을 할 때도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을 하다가도 대뜸 숫자를 묻는 질문에 봉착하곤 했다. 지렁이 같은 상형문자 속 숫자를 찾아야 했다. 사람인지 검열을 하기 위함이란다. 내가 사람인데 사람인증을 해야 하다니, 심지어 틀렸을 때 밀려오는 허탈감만큼이나 상실감도 컸다. 가까운 미래에는 반대로 AI만 인증 가능한 검열이 생길 것임이 분명하다.
뭔가 이상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사람과의 대화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쳤다. 일상적인 대화마저 외국어 능력시험처럼 자격증이 주어질 것만 같았다. 숨이 막혔다. 기술이 편리한 만큼 또 다른 형태의 고립과 고통을 요구하는 것 같다. 지금도 엄마, 아빠, 남동생 핸드폰 번호를 외우지 못한다. 11자리 번호도 단축번호로 축약된 지 오래다. 가족의 집 주소는 집에 가야 알 수 있을 만큼 대단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어디를 가도 대화는 필수조건이 아니었다. 단지 과거를 치열하게 살았던 분들에게만 제공하는 옵션 상품 같았다.
사람과의 대화가 줄어들수록 편리하기만 한 걸까? 물론 관계 유지나 확장에서 오는 피곤함은 분명 있다. 그렇지만 그 반대면도 잘 봐야 한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되어야 하니까. 치유라는 뜻은 전보다 살만하다는 사실을 결괏값으로만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그냥 말하고, 듣고, 끄덕이며 서로가 서로가 되는 과정에서 오는 망각의 포근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오는 것이니까.
대화가 점점 줄어드는 세상에 산다. 그리고 묻는다. 편리함만을 위해 관계를 피한다면 서로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AI가 우리의 숨소리, 체온, 분비물을 파악하고서 알약 하나만 내어주기만 하면 살만한 세상일까? 무수히 많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서로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절실할 것 같다. 내가 여전히 연필과 책을 가까이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언젠가 모두가 필요할지 모를 감정을 채워가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사람으로서 자존감도 존재감도지킬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쩌면 감정에도 노아에 방주 같은 활자로 만든 배가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요란하다. 30분 전에 시킨 치킨이 도착했다. 문득 요청사항에 썼던 글이 떠올랐다. '초인종 누르고 현관 앞에 두고 가세요'어서라이더가현관 앞에두고 가길 기다리며 침묵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