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게임를 바라보며 ‘광기’의 예술에 빠져들다.
나는 사람에 대한 갈증이 느껴질 때마다 박물관과 전시회를 종종 찾는다. 특히 회화는 좋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새로운 사고와 지평을 넓혀주는 길로 인도하는 듯하다. 모네, 클림트, 고흐 등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만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물려갈 무렵 ‘카라바조’ 전시회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고 하기에 한가한 날을 잡아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10년 전이었던가? 신혼여행으로 로마를 방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 무너지고 뼈대만 남은 고대 로마유적들은 판테온을 제외하고 폐허나 다름없었고 테르미니역의 집시와 사기꾼은 절로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창문이 깨져있는 지하철과 주머니를 노리는 음흉한 눈빛이 넘쳐나는 도시에서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지닌 존재는 카라바조의 그림이었다. 나보나 광장의 산 루이 데이 프란체시, 포폴로성당, 보르게세 미술관, 바르베리니 궁전, 카피톨리니 등 로마 어디를 가든지 그의 작품은 주옥같은 로마의 보석들 사이에서 찬란한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 가장 극적인 순간을 절묘하게 포착한 영화 같은 구성, 디테일한 묘사 등 그를 말해주는 수식어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마주 볼 때마다 나만 가지고 있던 비밀이 들킨 것처럼 상대방을 바라보는 눈빛이 정말 노골적이다. 그의 광기가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파도가 덮치듯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나의 감정이 거울처럼 그림에 반영이 돼 분노와 욕정, 슬픔과 후회, 체념과 환희의 감정이 교차되는 듯 그림이 말없이 대화를 건네는 듯했다.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이란 주제를 가지고 온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은 카라바조의 작품이 아니다. 바로 인간 ‘카라바조’를 이야기하고 그가 받았던 영향과 향후 바로크라는 사조에 끼친 영향력이 주제다. 카라바조의 주요 작품은 로마나 피렌체에 가면 만날 수 있지만 그가 영향을 주고받았던 화가의 작품까지 한자리에서 만나보기란 흔치 않다. 그의 예술적 뿌리인 롬바르디아의 화풍들을 통해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스타일이 이전부터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천재성도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꾸준히 갈고닦은 결과물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그림이 한점 있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이란 작품에서 한 소년이 도마뱀에게 물려 깜짝 놀라는 찰나의 순간은 포착한 것인데 머리에 꽃을 꽂은 이 소년은 카라바조 자신이다. 그림 자체의 인상도 강렬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찾기 위해 가만히 그를 응시하다 보면 흥미로운 요소가 여럿 포착된다. 아래에 자리한 과일을 집어먹으려다가 도마뱀에게 물린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마치 몰래 집어먹으려다가 물린 상황에서 문이 때마침 열려 도둑질이 들킨 듯 당황과 모멸. 후회의 표정이 절묘하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다짐하면서 한편으로는 정물화와 인물화 둘 다 잘 그린다는 사실을 큰손인 귀족들과 성직자들에게 적극 어필하고 싶었을 것이라... 카라바조 그를 설명하는 프로모션 격인 작품으로 제격이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그의 인생은 그림만큼이나 빛과 어둠으로 굴곡진 삶을 살았다. 수많은 귀족들과 추종자들은 작품을 만날 때마다 그에게 열광하며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로마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카라바조는 귀족들보다 하층민의 삶에 스스럼없이 어울려 빈자를 성인의 얼굴로, 창녀를 성모마리아로 그려냈고 예술적 영감의 바탕이 되었던 광기를 제어하지 못해 많은 사람들과 갈등을 빚게 되었다. 폭력, 도박, 난동 해마다 끊이지 않았던 감옥행, 후원자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토마소니와의 결투로 살인을 저지른 그는 참수형을 선고받고 각지를 떠돌았다. 후원자 콜론나 백작부인의 영지인 나폴리의 저택에서 숨기도 했고, 교황의 사면을 얻기 위해 몰타에 가서 그림을 그려주고 기사작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그의 성격은 곳곳에 적을 더 만들었다. 그도 두려웠다. 그는 언젠가 복수를 위해 그를 노리는 적들의 칼날이 자기의 목을 노릴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에 지니고 있었다. 갑자기 그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기를 골리앗에 빙의해 다윗의 손에 참수되어 머리만 남은 모습이다. 골리앗은 고통인지 체념인지 아리송한 표정이 드러나있다. 입은 조용히 벌려져 있고, 이마의 미간은 찡그린 채 눈은 반쯤 잠겨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의 표정도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젊은 날의 카지노 게임가 도피자 신세가 된 카지노 게임를 바라보는 것처럼......
카라바조는 사면을 기다리다 토스카나의 해변마을에서 객사한다. 39세의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의 작품은 아직도 빛과 어둠으로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인생을 예술로 만드는 예술가는 그의 삶을 갉아먹으며 사람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가져다준다.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가는 누구인가? 시대를 초월할 사람은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