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 기고7편, 카지노 게임정승 청백리의 이면
“네 말도 옳고, 니 말도 옳다.” 조선을 대표하는 청백리 황희 정승의 일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을 준다. 고려에 대한 충심으로 두문동에 은거하다 마지못해 출사하고 폐세자에 극렬히 반대해 왕의 미움을 사 유배를 떠나기도 했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뚝심을 배운다. 반면 세종 시절의 황금기를 함께 이끌어가며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위치에서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거주하며 청렴의 대명사가 됐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전한다. 조선시대부터 황희는 관후하고 정대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이러한 설화들을 묶어 위인전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완벽하게만 보이는 황희의 이미지는 어디까지 진실일까.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황희의 기사를 한 줄 한 줄 읽어가다 보면 신선 같은 현자라기보다 현실적이고 때로는 능구렁이 같은 기가 막힌 정치적 감각의 소유자였다. 왕자의난 때 중립을 지켰던 탓에 고려에 충성하며 은거했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으며 양녕의 폐세자를 반대해 귀양을 간 것이 아니라 그의 뇌물 수수 및 사사로운 처신을 문제 삼아 탄핵된 적이 많았다. 이뿐만 아니라 자식과 사위의 사건 사고, 국유지를 개인 사유지처럼 행사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물론 세종대왕의 국정파트너로서, 왕과 신하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진위도 불확실한 야사를 어느덧 진실처럼 믿게 됐고 도덕적인 완벽한 인간, 흠결 하나 없는 성역으로 자리 잡아 그 인물의 진가는 사라지고 왜곡만 남게 됐다. 황희 정승이 말년을 보냈다는 파주 반구정은 이러한 카지노 게임들이 마치 검증된 사실처럼 꾸며져 있어 심히 우려스럽다.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승전보를 남긴 행주산성도 이와 마찬가지다. 부녀자들이 행주치마로 돌을 날라 왜군을 물리쳤다는 설화가 각종 책이나 매체를 통해 카지노 게임적 사실처럼 알려졌다. 각종 기록을 찾아봐도 이 같은 내용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이전 기록부터 ‘행주치마’가 이미 존재했고 당시 행주산성은 민간인이 흩어진 터라 민간인을 동원할 여유조차 없었다 전한다. 행주대첩의 일등공신은 치마가 아니라 조선의 발달된 화포 덕분이다.
이 덕분에 최근 행주산성을 방문하면 행주치마에 관한 설화를 안내판이나 설명에서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이러한 예는 전국 각지에서 만날 수 있다. 김포 애기봉처럼 지명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케이스도 있다. 강만 건너면 북한이 바라 보이는 이곳을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평안감사와 애기라는 기생의 사랑 카지노 게임를 듣게 됐다. 그녀의 한(恨)과 실향민의 마음과 같다 하여 이름이 지어졌는데 실제로 평안감사는 이곳에 오지도 않았고 애기(愛妓)라는 명칭 자체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생성된 것이다. 그 이름 자체가 워낙 유명해져 불리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김포시는 애기봉 설화를 바탕으로 뮤지컬까지 제작하고 있다.
음식의 간이 심심할 때 양념을 치거나 열을 가해 그 맛을 올리기도 한다. 카지노 게임를 어려워하거나 낯선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첨가하면 사람들의 흥미도 얻고 호응도 받게 되니 이만한 유혹이 어디 있겠는가. 검증되지 않은 설화들을 사실처럼 들이밀었을 때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객관적 사실과 허구가 섞이면서 카지노 게임 인식이 흐려지게 되고 ‘재미’와 ‘감성’만 추구하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민족주의나 영웅주의에 경도돼 세상을 단순히 흑백논리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정확한 논리와 사고를 지닌 이야기로 거듭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