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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ug 31. 2022

여름휴가는 카지노 게임

벽소령 대피소에서 맞이한 둘째 날 아침, D팩(등산용 아이스박스)을 취사실에 뒀어야 했는데 방에 갖고 들어오는 바람에 밥과 된장찌개가 상해버렸다. 할 수 없이 아침은 라면이다. 먹을 때는 만든 사람 천재라고 감탄하면서도 이상하게 라면을 먹으면 한 끼 손해 보는 기분이다. 애미는 한데서 라면 먹는데 초밥이는 뭐하나 톡을 해봤다.


“아들 둘하고 아버지 온 팀 있거든? 둘째(15살)가 너랑 닮았어. 표정이 똑같아.”

“(관심 없음) 내일 몇 시에 와?”

“물 없어서 호흡곤란 겪는 부부한테 내가 카지노 게임 가서 물 떠서 갖다 줬어. 엄마 유명해지면 미담으로 나올 이야기야. 유명해지기만 하면 돼.”

“그래... 파이팅.”

“근데 심심하다. 오늘 갈까?”
“(화들짝 놀라며) 심심하다니, 자연을 더 깊게 느껴봐.”

“넌 자유를 느끼고?”

“웅.”

초밥이는 이박 삼일의 자유가 일박 이일로 주는데 크게 반발하더니 나에게 내일 간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카지노 게임

점심은 세석카지노 게임에서 햇반을 사서 어제 구워둔 목살과 김치를 볶아 먹을 계획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세석산장에 도착하자 매점부터 달려갔다.

카지노 게임아침 햇살 가득한산길을 걸으면 쏟아지는 행복을 온몸으로 맞는 기분이다


“햇반 하나 주세요.”

“품절입니다.”

“아... 오늘 우는 사람 많겠는데요?”

나도 울고 싶었다.

“공지했는데요.”


1700미터 고지에 붙은 안내문 종이 한 장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품절이라고? 편의점에서 사야겠다’ 할 수도 없는데. 어제 연하천 카지노 게임에서 햇반이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다른 곳은 있겠지 했는데 세석, 장터목 카지노 게임에도 없었다. 그럼 벽소령에만 있었다는 건데 매점 이용시간이 오전 7시부터였고 나는 그전에 나왔기 때문에 살 수 없었다.


이제 남은 식량은 라면 1개, 어묵 조금, 꿀차, 김치 국물이 전부였다. 먹을 것도 없고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이 곤란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게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다

.

커피나 마시려고(커피는 4개 있었다) 물을 끓이는데 여성 두 분이 오길래 “커피 드릴까요?” 했더니 반색을 한다. 그분들은 커피 생각이 간절했지만 버너, 코펠을 가져오지 않아 못 마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신계곡으로 내려가니까 필요 없다며 볶음김치, 밥, 김가루를 주는 게 아닌가. 덕분에 좌절될뻔한 나의 김치볶음밥의 꿈이 이루어졌다.


카지노 게임좌절될뻔한 김치볶음밥의 꿈


그분들은 오기 전 카지노 게임에 전화해서 구비 물품을 물어봐서 햇반이 없다는 사실과 그 이유가 수송헬기 기장이 코로나에 걸려 물품 조달이 일주일 연기된 거라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미리 전화하는 치밀함을 탑재하지 못한 나 같은 예약자들 위해 직원들이 문자 한 통 보내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규정'에 없어서였겠지만 말이다.


세석평전은 지형이 움푹하고 사방에서 바람을 막아줘서 겨울에도 아늑하다. 배도 부르고 오늘 목적지인 장터목 카지노 게임까지 3.4km밖에 되지 않아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그때 70리터는 족히 넘는 배낭을 멘 아저씨 4명이 등장했다. 자기 몸만 한 배낭을 메고도 조금도 힘들지 않다는 표정이어야 포스가 흐르는데 그분들 얼굴은 한눈에도 후회와 번민이 가득했다.


“군대 이후로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다.”

한 분(공주 양반)이 배낭을 버리듯 내려놓으며 말했다.

“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대화에 목마른 사람이 물었다.

“몰라요, 대장이 쓸데없는 것만 잔뜩 넣으라고 했어요.”

“카지노 게임 종주 처음이에요?”

“카지노 게임 자체가 처음이에요. 친구들이 올해 정년이라고 가자고 해서 왔어요.”


네 분 중 한 분만 등산가여서 그분(윤대장)이 시키는 대로 2리터 물병 2개를 짊어지고 왔다고 했다. (지리산은 물 보충할 곳이 많아서 여름이라도 2리터 하나면 충분하다) 세 근이 넘는 삼겹살을 무겁다고 벽소령 대피소 직원에게 줘버렸다고 했다. 다음 끼니가 걱정인 나는 삼겹살도 버릴 정도면 저 큰 배낭에 무엇이 들었을까 하는 참으로 쓸모 있는 호기심이 일었다. 소고기 안창살이라도 구워 먹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는 나를 취사실로 이끌었다.


“에게, 겨우 라면이에요? 소고기나 안동 간고등어가 아니고요?”

“하하하, 그건 장터목에서 꺼낼 테니까 합류해요.”

“그래요.”

뭐가 이렇게 쉽냐고요? 심심하고 배 고프면 그렇게 되더라고요.

장터목 가기 전에 있는 '연하 선경'

세석카지노 게임에서 장터목카지노 게임까지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갈 때마다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자주 쉬면서 갔더니 오후 3시쯤 도착했고, 벤치에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잤다. 한 시간 넘게 잤지만 ‘배낭만 커 팀’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헬기를 부른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쯤 저 멀리 거대한 배낭 4개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기 위해 모두 취사실에 모였다. 내일 아침은 누룽지 같은 걸 먹으면 되니까 모든 음식은 지금 해치워버려야 했다. 나는 아저씨들이 두 개의 버너에 무언가를 끓이는 모습을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하나는 김치(오직 김치), 하나는 어묵(오직 어묵)이었다. 다른 추가 재료는 없었다. 얻어먹는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 없지만 고기도 참치도 없는 김치찌개라니 실망이었다. 아저씨들은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스팩을 서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실랑이를 했다.


배낭을 무겁게 한 장본인(물을 얼려오면 마시면 돼요)


“카지노 게임에 최소한 샤워기는 있을 줄 알았는데 당황했다니까.”


이렇게 말하는 공주 양반님에게 나는 한 컵의 물과 수건으로 샤워할 수 있다고 알려줬다. 아저씨들은 카지노 게임 종주를 시작으로 한라산 등반, 제주도 한 달 살기 등 그동안 꿈꿔온 은퇴 후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각자의 상실감을 감당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시간만 많은 나로서는 돈과 시간이 있는 아저씨들이 좀 부러웠다.

아저씨들이 소중하게 꺼낸 건 소고기가 아닌 장아찌였다

대망의 천왕봉 등정을 앞두고 나는 일출이 6시니까 4시 30분에 출발해도 충분하다고 했지만 아저씨들은 자기들 걸음으로는 3시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의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수긍이 되었지만 그래도 1.7킬로미터에 3시간은 너무했다. 결국 그분들은 3시, 나는 4시 30분에 출발하는 걸로 정했다.


셋째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마지막 식량인 라면 반 개를 끓여먹고 출발하니 5시 40분쯤 천왕봉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들은 천왕봉 아래에서 달달떨고 있었다.


“일찍 오면 추워서 고생하신다고 했잖아요.”

“맞어. 대장 바꿔야혀. 당장 대장 바꿔.”

나는 끓여온 커피를 따라줬다.

“대장님 입은 거 파카야 뭐야?”

어느새 아저씨들은 나를 대장님으로 불렀다.
“경량 패딩이에요. 높은 산 갈 때는 카지노 게임에도 가지고 다녀야 해요.”

“대장이 이런 걸 알려줘야지, 뭐하는 거여.”

비등산인 세 명은 아우성을 쳤고 윤대장은 “그려 그려”라고 했다.


그날 일출은 없었다. 어둠은 사라지고 운무가 가득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천왕봉을 내려가는데 부부팀, 삼부자팀을 차례로 만났다. 두 팀은 첫날 연하천 대피소, 나는 벽소령 대피소에서 잤기 때문에 이틀만이었다.

“예전 생각하고 왔다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나이 든 건 생각도 못하고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싶어서 둘째 날 내려가려고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컨디션이 괜찮길래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천천히 카지노 게임 데까지 가보자라고 여기까지 왔어요.”

아닌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남편분은 처음 봤을 때보다건강해 보였다.

“잘하셨어요. 대단하세요. 삼부자팀도 왔어요?”
“그쪽은 완전 씩씩해져서 어제는 우리보다 앞서 갔는데 오늘은 늦게 출발하나 보네.”

부부팀과 헤어지고 얼마 후 삼부자팀을 만났다.

“기상예보 보니까 일출 못 볼 것 같아서 느지막이 일어나 밥 먹고 올라왔어요.”

말하는 아버지 표정에 여유가 묻어났고 두 아들 얼굴에는 엷은 미소가 어려있었다.


첫날 만났던 사람들을 천왕봉에서 만나고 돌아가는 길, 모두들 어떤 마음으로 천왕봉을 올랐을까, 생각해봤다. 생애 한 단계의 끝과 시작을 앞두고 있을 때 가고 싶은 곳, 부쩍 커버려 거리가 생긴 자녀와 함께 걷고 먹고 자고 싶은 곳, 부부가 서로 걱정하고 도와주며 어떻게든 등정하고 싶은 곳이 지금은 천왕봉이지만, 어쩌면 그곳이 다가 아닐지 모른다.


나이, 성별, 하는 일은 다 달라도 사람들은 끝내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를 가슴속에 품고 산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지 않을 때 저마다의 천왕봉을 떠올리지 않을까.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왕봉을 밟고 나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싶을 때 또다시 배낭을 꾸리지 않을까.


내가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유는 생존신고 같은 거다. 노고단을 지나 지리산 종주 시작점을 통과하면 푸근한 품속에 안기는 기분이다. 임걸령 샘터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첩첩이 이어져있는 산등성이를 내려다보면 목 아래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보이지 않는 어떤 대상에게 이렇게 다시 찾아왔다고 확인받는 기분이 든다.


나한테 지리산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다시 일으켜주는 힘을 주는 곳이다. 지치지 말고 포기하지 않으면 갈 수 있는 천왕봉처럼 그렇게 한 발 한 발 가자고 토닥여주는 곳.


하산 후 생맥주는 생명수(백무동 샤워 가능한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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