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카지노 게임이었다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정보 전달자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되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회적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며, 특정한 주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력은 단순히 정보의 양이나 전달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정보의 신뢰성, 전달 방식,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되는 관계의 질이 정보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디지털 시대의 정보 전달자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전달이 아닌,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지식이 확산되고 수용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카지노 게임(Maven)이란 용어는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에 나오는 개념 중 하나다. 그는 어떠한 사회적인 전염은 특별한 사회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의 끌어들임에 크게 의존한다는 '소수의 법칙'을 이야기하면서, 카지노 게임과 더불어 커넥터(Connector), 세일즈맨(Salesman)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선 메이븐은 지식을 축적한 자다. 이들은 능동적인 정보 수집가로 활동하며 시장의 조력자를 꿈꾸며, 입소문으로 전염시킬 만한 지식과 사회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인플루언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커넥터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다. 친구와 지인을 만드는 예외적 재능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로 쉽게 말해 '마당발'이다. 메이븐이 정보 제공자, 커넥터가 정보 전파자라면, 세일즈맨은 정보 설득자다. 고객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고객을 정보에 녹이는 재능을 가졌다. 유능한 '영업사원'이 해당되겠다.
자타가 공인하는 다수의 멘토들 대부분은 사실 메이븐인 경우가 많다. 영향력을 행사하고 그로 인해 수익도 얻는다. 때론 부러움을 넘어 경외심과 존경심도 이끌어 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말콤 글래드웰이 이야기 한 소수의 법칙에 걸맞은 걸출한 이들임에 틀림이 없다.
솔직히 선배, 선생, 코치, 트레이너는 멘토와 교점이 많아 사실상 그 경계를 명확하게 묘사한다는 게 어불성설인 개념들이다. 그러나 메이븐만큼은 다르다. 그들은 멘토가 아니다. 이번에는 메이븐과 멘토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아는 것이 병이라고 ‘지식의 저주’라는 용어는 세 명의 경제학자 마틴 웨버(Martin Weber), 조지 로웬스타인(George Loewenstein), 콜린 캐머러(Colin Camerer)가 1989년 발표한 유명한 논문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이 연구는 경제학에서 정보 비대칭성(asymmetric information) 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가정에 도전하며,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역설적인 현상을 설명했다.
마틴 웨버와 동료 연구자들은 경제학에서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항상 유리할 것이라는 기존의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통적으로, 정보가 많은 사람은 협상이나 거래에서 상대방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여겨졌지만, 웨버와 그의 동료들은 정보가 많은 사람이 오히려 자신의 지식에 갇혀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연구는 정보 비대칭성이 언제나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정보 때문에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보 과잉의 역설
웨버는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상대방의 판단을 잘못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영화 전문가들이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과대평가하거나 그로 인해 적절한 가격을 책정하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경제적 손실
웨버는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으며, 이는 경제적 자원 배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기술적 설명에 의존해 지나치게 복잡한 UI나 UX를 설계한 탓에 소비자가 이를 이해하기 어려워 구매를 포기하는 경우에서 볼 수 있다.
심리적 요인
웨버는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상대방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심리적 편향이 경제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교수나 전문가가 너무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여 강의하면 학생들이 이를 이해하지 못해 흥미를 잃고 거리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연구는 경제학뿐만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의 저주'가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그는 정보가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며, 이 현상이 단순히 비효율적인 의사소통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마틴 웨버의 연구는 '지식의 저주'가 단순한 인지적 편향을 넘어, 실제 경제적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이 개념을 더욱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식의 저주’는 우리가 가진 정보가 때로는 타인에게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이 개념은 정보의 양과 질이 때로 사람들 간의 소통을 방해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메이븐과 멘토라는 두 역할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도 한때 메이븐이었고, 그것을 지향했다. 한창 실리콘밸리에 눈이 돌아가있던 시절, 매일 밤 그네들 시계에 맞춘 생활 리듬으로 그네들의 테크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것이 낙이었다. 그리고 발 빠르게 정보를 실어다 SNS에 나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내 정보를 보고 있었음에 놀라기도 기쁘기도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고, 그 무엇보다 신선한 뉴스를 매일같이 접할 수 있었다.
한편, 대학원 진학을 계기로 그러한 활동에 큰 제동이 걸려버렸다. 빠듯한 학사 일정을 쫓다 보면 도저히 저 세상 트렌드를 눈여겨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정보에 중독된 나로선 쉽게 손 놓을 수도 없었다. 정형적인 FOMO(Fear Of Missing Out)였던 나는 그렇게 번아웃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손을 놓을 수밖에 없게 되면서, 더 이상 카지노 게임으로서의 역할도 종말을 맞게 된다.
이후 회사원이 되어 업무에 지친 나의 욕망을 분출할 창구로 멘토링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쌓아둔 지식창고의 수많은 정보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야말로 쌓아만 두고 쓰질 않았다. 내가 알알이 모은 데이터란 결국 디지털 쓰레기였나 생각을 하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리고 멘티와의 만남을 통해 깨달았다. 멘토링을 위해서 정작 필요한 정보는 따로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종류가 달랐다. 결이 달랐다. 그렇게 대학원 졸업 후 새로운 방향성의 새로운 공부가 시작될 수 있었다.
그렇다. 메이븐은 '지식의 저주'에 걸린 내가 이를 벗어날 생각을 주저하게 만드는 일종의 족쇄였다. 내 의지가 아닌 상황이 이를 벗게 해 준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축복이었다. 그렇게 점점 더 나는 멘토라는 존재에 심취해 갔고, 메이븐이 멘티에게는 긍정적인 영향 못지않게 부정적인 영향도 미침을 몸소 경험할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꿀팁은 달콤한 맛과는 다르게 그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러한 정보는 메이븐을 더욱 메이븐답게 만들어주는 날개일 뿐이었다.
카지노 게임과 멘토는 모두성장을 촉진하는 데 중점을 둔다는 공통점이 있다. 메이븐은 특정 기술이나 지식을 전달하여 멘티가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멘토는 멘티의사회적, 정서적 성장을 지원하며자아실현을 돕는다. 두 역할 모두 타인의 발전을 목표로 하지만, 그 방식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메이븐은 특정 분야에서 깊이 있는 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주로 정보 제공자의 역할을 한다. 이들은 코치나 트레이너처럼 직접적인 문제 해결이나 교육에 참여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바탕으로 조언이나 정보를 나누는 데 집중한다.이들은전문성에 기반하여수직적인 관계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메이븐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열렬한 활동을 한다. 또 개인 블로그나 SNS를 통해 활발히 정보를 제공하며, 특히 해외 아티클을 열심히 번역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을 널리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둔다. 업계 입장에서는 굉장히 필요한 비타민 같은 존재다. 하지만 비타민이 날 낫게 할 약은 아닐 확률이 매우 높다.
반면, 멘토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을 돕는 역할을 한다. 멘토는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멘티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제공하며, 때로는 감정적 지원과 동기부여까지 해준다. 즉, 멘토는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그들의 성장 가능성을 끌어내는 복합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멘토와 멘티의 관계는수평적이거나상호적인 경우가 많으며,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멘티의 전반적인 성장을 돕는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메이븐을 멘토라 여기는 것이다. 메이븐은 정보를 전달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마치 특정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배우와도 같다. 반면, 멘토링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조언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이는 책을 직접 쓴 저자와 번역가의 차이와도 유사하다. 번역가는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역할을 하지만, 저자는 직접 경험하고 고민하며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낸다.
메이븐은 번역가처럼 정보를 정리하고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 멘토는 저자처럼 직접적인 경험과 관계를 통해 답을 형성하고, 멘티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한다. 이는 메이븐이나 번역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 역할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알고 열심히 산다고 해서 멘토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멘토는 그의 다양한 경험을 덕분에 멘티가 필요로 하는 본질적인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멘티를 많이 만나서 그들의 고름 같은 고민을 직접 손대고 짜줘야 하는 것이다.
멘토링은 현대 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정서적 지원과 개인적 성장이 강조되는 오늘날, 멘토링은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멘티의 전인적 발전을 돕는다. 멘토링을 통해 멘티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미래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또한, 멘토링은 멘티와 멘토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와 지지를 형성하며, 이는 멘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특히, 멘토링은 조직 내에서도 중요한 리더십 개발 도구로 활용되며, 멘티가 조직 문화에 적응하고 장기적인 경력 개발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다.
결국, 메이븐과 멘토는 각각의 역할에서 고유한 가치를 지닌다. 메이븐은 자신의 전문 지식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며, 멘토는 이를 넘어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 둘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역할에 맞는 기대를 설정할 줄 아는 안목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과 정보는 사회적 가치 창출의 중요한 요소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과 목적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 메이븐은 정보를 빠르게 전달하고 공유하는 데 집중하지만, 멘토는 정보 제공을 넘어 멘티의 성장과 발전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메이븐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보의 세계에서도, 진정한 의미의 멘토링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단순한 정보 제공자에서 벗어나, 상대방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식의 저주'를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메이븐과 멘토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보다 효과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