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에이.아이.와
요새 AI 덕분에 생산성이 폭증했다. 생각이 늘 앞서고, 상상력만 비대해졌던 나에게, 생각을 초월하는 녀석의 등장은 실현의 재미에 빛의 속도를 붙여준 셈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노트에 스케치만 하다 말았을 아이디어들이 이제는 GPT가, 프롬프트가 생각보다 빠르게 눈앞에 그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의 스크립트, 하나의 흐름, 혹은 하나의 목차가 순식간에 형태를 갖추고, 그것이 다시 다음 생각을 끌어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단순히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이디어 자체가 예전보다 훨씬 구체화되고, 실행 가능성의 두께가 달라졌다. 상상이 이제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실행 대기 상태’에 가깝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오는, 아니 어쩌면 초월하는 도구가 생겼다는 건 단지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감각, 그리고 내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재구성되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너무 멀게 느껴졌던 결과물의 세계가, 이제는 손에 잡히는 거리로 성큼 다가와 있다. 더 이상 ‘언젠가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상상’이 아니라, ‘지금 바로 시도해도 되겠다’는 감각이 먼저 반응하는 시대. 비용이라는 개념도, 실패에 대한 감정도, 시도에 대한 정의도 바뀌고 있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무자본 창업을 한기분으로 매일을 살고 있다. 과거에는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아이디어들이 대부분 흩어지고 사라졌다. 책 한 권 분량의 서사를 떠올려도, 그건 시작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너무 많은 내용을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몰랐고, 끝이 보이지 않는 작업 앞에서 행여 하더라도 번아웃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AI와 함께하면서 이 구조는 급격하게 무너졌다. 지금은 아주 작은 문장 하나, 흐릿한 단어 하나만 있어도 그것들이 서서히 얼개를 갖추고 뼈대를 세운다. 내가 애써 조직하지 않아도, 시스템은 나를 따라오고 때로는 앞서간다.
AI가 단지 대신해 줬다고? 그렇지 않다. 공동 작업에 가깝고, 녀석의 빈틈을 잡아낼 때 쾌감도 제법 크다. 오히려 내가 가진 생각을 믿고 밀어붙일 수 있게 해주는 ‘확신의 스위치’에 가깝다. 심지어 어떨 때는 지가 고집을 피우기도 하더라. 예전 같으면 상상에서 멈췄을 어떤 주제, 어떤 프로젝트도 이제는 "이건 해보면 되겠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감각 자체가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건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느끼느냐이다. 이 감각의 차이가 행동을 결정짓는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게 아니라, 그 가능성을 바라보는 내 감각의 반경이 넓어진 것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내 안의 무엇을 흔드느냐가 중요하다. 정확히는 ‘내가 이걸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이다. 이 사소한 감정의 진동이야말로 UX에서 가장 중요하게 설계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 마음의 경계선, 즉 '역치'는 사용자의 행동을 결정짓는 심리적 기준점이다. 아무리 좋은 도구, 아무리 강력한 기능이 있어도 그 선을 넘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실제로 미끄럼틀도 제대로 오르지 못했던 어린이였다. 높이를 감당하지 못했고, 낯섦을 버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초고층 빌딩의 유리바닥 위에 서서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실재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마음 안에서 그 감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이제 내가 ‘그런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것이 역치의 변화다. 단순히 도구를 익혔다는 게 아니라, 그 도구로 인해 ‘나의 가능성 감각’이 재설정된 것이다. 한번 바뀐 감각은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AI는 그 변화의 조각을 자주, 그리고 부담 없이 우리 손에 건네준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그 조각들로 새로운 정체성을 조립하고 있다.
“만약 화성행 우주비행선이 없어서 그렇지, 있으면 갈 것 같다.” 이 말은 얼핏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직관적인 진심이다. 우리 대부분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한다고 느끼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행동을 가로막는 건 환경보다 감각이다. AI는 그 감각을 건드린다.
‘나는 못 해’라는 말이 ‘지금은 할 수 있어’로 바뀌는 건 기술의 발전 덕이 아니다. 그것은 그 기술이 내 안에 새겨놓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근거 덕분이다. 어설퍼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시도해도 괜찮다는 근거를 자기 안에서 납득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이 생기면 행동은 따라온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여백을 마련해 주면 된다.
AI가 보여주는 실현의 속도, 즉시적인 피드백, 결과의 명확함은 모두 그런 여백을 채워주는 요소들이다. 기술은 수단이다. 핵심은 항상 사용자 자신의 감각이다. 그 감각이 흔들리는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역치가 생겨난다. 그리고 UX가 할 일은 그 ‘감각의 틈’을 얼마나 예민하게 포착하고, 넓혀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