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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리 Mar 08. 2025

◆당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시절인연

*브런치북에 연재한 것을 수정하여 하나로 묶었습니다.


1부 내가 싫어하는 여자


너는 불연속적이고 모호하며 마구잡이다. 네가 그리는 검은 세상을 아무렇게나 섞는다. 널 떠올리면 어둡고 칙칙하고 야비한 웃음이 떠오른다. 이리도 널 증오했나 싶지만, 그렇게 대상화되어 멀어진 건 전적으로 네 탓이다. 넌 유난히 검정을 좋아했다. 세련미가 철철 넘치고 우아하면서도 단아한 매력을 풍기는 색상이라나. 어릴 때부터 검정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너의 엄마는 밝고 화려한 색상을 좋아했으니까. 언제부터 너는 검정에 유혹됐을까. 알 것 같으면서도 너에 관해 모르는 것이 많다. 짙은 브라운을 좋아하는 줄은 알았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네게 썩 어울리는 색이라 그랬을까. 어느새 검정으로 갈아탄 너는 마치 흑설 공주 같았지.


곧게 뻗은 직모에 머리숱이 참 많았던 너는 탐스런 머릿결을 자랑했다. 여섯 자매 중 둘째였는데도 외동딸에게나 해준다는 디스코머리를 하고 다녔다. 외모와 성격이 닮아 편애한 네 엄마 덕을 봤지. 겨드랑이 털, 다리털도 직모로 거칠었어. 한때 제모기로 다리털을 밀다 새까맣게 올라온 털 때문에 계속 제모기를 사용했다. 그걸 본 셋째가 자신의 다리도 제모기로 미는 바람에 평생 제모기 사용자가 되었다며 원망을 토로했다. 첫째와 둘째가 부러워한 셋째의 부드러운 다리털은 그렇게 제모기의 희생양이 되었다.


대학시절 넌 참 이상했다. 이해하기 힘든,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고 할까. 법학과에서 몇 안 되는 여자 중 네가 과대표를 했다. 그럴 만했다. 워낙 똑똑하고 강단이 있었으니까. 네가 자원했는지, 누군가의 추천 덕이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수긍이 갔다. 남자가 대다수인 법학과 신입생 중에서도 네 외모와 말발은 눈에 띄었고,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정말 믿기 힘든 건 한동안 대순진리회에 빠져 네 아버지의 입학 축하금을 탕진했다는 소문이었다. 논리와 설득력으로 중무장했을 법한 네가 대순진리회에 돈을 바쳤다는 게 영 믿기지 않았다. 대순진리회와 너라는 조합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수께끼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닌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학생이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이랄까. 급조된 대학생의 자유와 오백만 원이라는 큰돈, 게다가 존재론적 질문을 받는 상황이라면? 자기 탐색의 시간을 박탈당한 인간에게 처음으로 진지하게 접근해 온 ‘도를 아십니까?’의 종교. 제사를 지내야 가정이 편안해진다, 조상에게 잘 보여야 앞길이 편다는 메시지들. 한복을 입고 제사상 앞에 엎드렸을 널 떠올리면 이상한데, 어울렸을 것 같기도 하다. 넌 어깨가 좁아 한복이 잘 어울렸거든.


언젠가부터 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너에게 재킷은 갑옷이었다.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무기 같은 것. 만만히 봤다간 가만있지 않겠다는 전투적인 눈과 앙다문 입도 한몫을 했다. 책을 많이 읽었고, 내게 보여준 글은 없지만 글도 많이 썼을 거다. 사회과학 서적이나 철학책을 자주 봤고, 어떤 이야기든 똑 부러지게 답했다. 논리 정연하다고 할까, 설득력 있는 언변을 갖췄다고 할까. 말로는 못 당한다는 느낌. 아무튼 듣게 만드는 전달력이 있었다. 네가 우연히라도 거론한 책은 꼭 읽었고, 네 말을 들으면 금세 빨려 들곤 했다.


괴이하게도 비닐봉지를 많이 썼다. 뭔가를 담을 때도 그랬지만, 가방에 검정 비닐봉지 몇 개를 넣고 다녔다. 술 취한 뒤의 구토용인지, 다른 용도였는지는 모르겠다. 쇼핑백도 아니고 비닐이라는 용도가 고급 진 느낌은 아니었다. 네게 안 어울린다고 느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가까운 사이라도 불편한 얘기는 삼가는 법인데, 너와 난 앙숙이잖아. 어디서부터 마음이 틀어졌는지 여기서 밝혀야겠다. 후에라도 네가 변명하거나 핑곗거리를 못 찾게 하기 위해서. 넌 정의파였고, 난 반대편이었다. 넌 나를 비겁하다며 친구들 앞에서 몰아세웠다. 그땐 정의를 알지도 못했고, 데모대에 합류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넌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정의로웠지만, 난 수줍음이 많고 조용히 내 자리를 지키는 편을 택했어. 그게 편하기도 했고, 내 형편에는 최선의 선택지였다. 누구나 나름의 처지와 입장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행운이란 아무나 가질 수 없으니까.


물이 썩으면 마실 수 없다. 인간은 썩은 물, 오염된 물을 여전히 배출하면서 오염물을 배출하는 동물 또한 지속적으로 사육하고 죽이고 먹는다. 악순환의 고리는 지금도 이어진다. 물은 재생 능력과 직관, 신비주의, 강박관념, 그리고 약간의 편집증과 연관된다고 주디스 베넷이 말했던가. 너는 유난히 깔끔 떨었다. 유기농, 친환경 먹거리를 공급하는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으로 아이를 키우고, 3살까지 모유를 먹였다. 모유를 먹여야 면역력이 높고, 자녀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한참 동안 운전을 배우지 않았던 너는 사실 운전할 이유를 못 찾았다는 말이 옳다. 남자들이 서로 태우겠다고 줄을 선 탓이다. 네가 운전의 필요성을 느낀 건 아이 학원을 보내고 픽업하려는 이유였다. 기동성 있는 사회인의 데뷔가 꽤 늦었다. 한참 전에 운전을 넘어 경비행기나 패러글라이딩 자격증을 딸 법한 담력과 도전의 아이콘이었는데. 너를 날지 못하게 한 건 너 자신일까. 굳이 날지 않아도 맞춰주는 주변 환경 탓일까. 너를 꼭 빼닮은 엄마의 극성스러운 애착 때문이었을까.


넌 유독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쌀밥을 좋아했다. 건강을 이유로 잡곡 열 가지 이상을 섞어 붉다 못해 검은 밥을 먹인 엄마를 원망했다. 다른 집에는 다 흰쌀밥인데, 왜 우리 집만 이런 밥이냐고, 도시락 꺼낼 때마다 창피하다며 투정을 부렸다. 잡곡밥이 그래 보여도 몸에는 정말 좋다며 네 엄마는 널 다독여 학교에 보냈다. 너는 엄청나게 긴 머리카락을 사다리 삼아 갇혀있던 탑을 오가던 라푼젤을 떠올렸다. 라푼젤은 아마 금발이었지. 넌 오래도록 긴 머리 흑발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터인가 네 엄마에게 반항한다며 몇 년간 기르던 아름다운 흑발을 버렸다. 단발로 싹둑 자르고는 더 이상 기르지 않았다.


어느 볕 좋은 날, 너는 딸아이들이 쏟아낸 빨랫감을 세탁기에 털어 넣고 멍하니 베란다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는 거리를 내다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자신을 위해 밤을 지새운 날이 언제였나를. 대학에서 법학 공부할 때도 떠오르고, 신림동 원룸에서 고시 공부할 때도 기억났다. 그놈과 미친 듯이 싸웠던 이유도 너 자신을 위해서였다. 치열하게 공부했고, 끝까지 싸웠다. 그렇게 마음잡고 공부하던 사법고시를 내려놓고 결혼을 택했다. 1차에 아깝게 떨어지기를 몇 번한 후에 정말 쉬고 싶었니? 모의점수가 너보다 못 한 녀석들이 척척 1차에 붙고 으스대는 꼴에 자존심이 상했니? 아니면 부모님께 약속한 1차 시험의 3년 기한을 넘겨 수치심 때문에 고시를 포기했니? 그때 네가 사법고시 아니면 결혼이란 두 선택지 외에 다른 선택도 고려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그놈과 헤어지는 마당에 애초에 결혼하라고 등 떠민 네 엄마를 원망하진 않았겠지.


널 갈아 넣을 만큼 똑 부러진 육아에도 시가에서 고생한다는 말 한번 듣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 등골 빼먹는다는 소리나 들었지. 그렇게 아들, 아들 하는 시가에서 너는 연이어 네 딸을 낳고 한 아이를 유산했다. 그 아이가 아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요즘 시대에 누가 애를 그렇게 낳느냐고, 너 같이 똑똑한 애가 집에만 있는 게 큰 사회적 손실이라는 지인의 잦은 충고도 귓등으로 흘렸다. 어떤 거대한 신념이 널 그렇게 붙들었는지, 피임의 실패인지, 정력을 핑계로 정관수술을 안 받은 그놈 탓인지 몰라도 네 명의 딸을 낳고도 부지중에 유산한 아이가 가엽다며 지인을 붙잡고 목 놓아 울어댔다.



2부 히로시마에 떨어진 검정 고무신


그날 히로시마는 이상하게 찬란했다. 유성이 쏟아지는 걸 올려다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삶에 찌든 마음이 와르르 녹아내리는 밤이었다. 그날이었다. 단아한 엄니와 선비 같은 아부지 셋째 딸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태어난 밤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뜰은 아늑하고 포근했다. 평온함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어야 했다. 어느 봄날, 엄마 손에 이끌려 히로시마 수산 시장에 갔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잠깐 한눈 판 사이, 엄마 손을 놓쳤다. 아찔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언제나 가슴이 아렸다.

“청자야?”

“네, 아부지.”

“넌 어디서나 보이는 백자가 아니랑께.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청자란 말일시.”

국민학교 5학년 막내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가 말했다. 한국에 돌아와 고생만 하다 떠난 아내의 장례를 막 치른 후였다.


“아부지, 왜 중학교 가면 안 되는디. 나도 공부하고 싶고, 학교 가고 잡은디 말이여.”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마음껏 떼쓰고 싶었다. 울며불며 중학교 안 보내주면 밥도 안 먹고 아부지 바지도 안 꼬매고 암 일도 안 할 낀 게 그리 아시소. 이러코롬 소리소리 질러서라도 동무들이 다 가는 중학교에 갔으면 싶었다. 성아들 틈에 자라 눈치 9단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부지가 자신을 중학교에 보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려운 살림에 두 성아를 시집보내고 엄니 장례를 치른 지 막 2년째였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 몰래 한숨만 내리쉬는 아부지 심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날 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동무들과 같이 깔깔거리며 등교하는 꿈을 꿨다. 울지 마,라고 누군가 희망의 말을 하면 웃기지 마,라고 침을 뱉었다는 시가 연상되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등교하는 동무들의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나무 뒤에서 숨죽여 동무들을 바라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눈에 조르륵 눈물방울이 맺혔다.


동무들이 중학교 2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의 어느 날, 아내 앓이를 하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아부지 역시 사랑하는 딸을 남겨두고 떠났다. 시리고 엄혹한 겨울이었다. 다들 어려운 시절이라 시집간 언니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마침 어미 없이 아부지를 건사하며 살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눈여겨본 서울 댁이 친척이 운영한다는 서울의 봉제공장을 소개했다.

“청자 너라면, 어디 가도 네 몫을 할 거야. 거기는 기숙사도 있으니까 먹고 자는 건 신경 안 써도 되고. 시다로 일하다 잘만 하면 반장도 할 수 있대. 내가 잘 말해놓을게.”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의 봉제공장을 검정 고무신 달랑 신고 나선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걸음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보다 더 멀고 길게만 느껴졌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햇볕 한 줌 안 드는 좁은 다락방에서 하루 16시간씩 천을 자르고 미싱을 돌렸다. 옷감을 잔뜩 쌓아놓고 작업판 앞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인 자세로 일했다. 실수라도 하면 재단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침 일찍 출근해 통행금지 직전인 밤 11시 30분에야 귀가했다. 밥도 못 먹고 점심시간에 일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잠 깨는 약을 수시로 먹으며 며칠씩 철야작업을 했다. 희뿌연 먼지를 많이 먹은 탓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주 검은 가래를 뱉었다. 기숙사 방에 돌아오면 친구들이 깰까 봐 이불속에서 김소월의 ‘부모’를 위안 삼았다. “낙엽이 우수수 떠러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월급 탄 기념으로 영화관에 간 날도 유난히 추웠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친구는 모처럼 보는 영환데, 우리도 멋 부리고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 했다. 영화배우 김지미처럼 검은 뾰족구두에 유행하던 선글라스를 끼고 한껏 멋을 부리며 영화관에 갔다. 공교롭게도 친구가 늦는 바람에 심한 동상에 걸렸다. 동상은 출산 후에도 지속적으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괴롭혔다. 양쪽 엄지발가락이 언 채 줄곧 ‘검은 발톱의 여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인연의 바람은 어떤 모양으로 불어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먼 지인의 소개로 한 사내를 만났다. 열 살 가까이 나이차가 났지만, 성실하고 듬직해 보였다. 무엇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보면 히죽히죽 웃는 게 싫지 않았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주변에 결혼 안 한 친구가 없을 정도로 꽉 찬 나이기도 했다. 남자 쪽에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한 가지 주저하는 이유라면 농촌 사람이라는 것. 고단한 서울 살이지만 좋아하는 영화도 볼 수 있고, 친구도 다 여기 있으니까 타지로 가면 외롭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중매한 지인은 이런 사람 없다며 잘 생각해 보라고 거듭 권했다. 몇 달을 만나다 사내가 청혼을 했다. 언니들도 그만하면 괜찮다 하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 역시 나이 차가 있으니 사랑받겠지 싶었다. 그래도 돌아가신 부모님께 상의하고 싶어 휴일에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사느라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아뢰고, 무덤가에 소주를 뿌리며 이 사내와 결혼해도 좋을지를 여쭈었다. 어떠한 답도 들을 수 없었다. 매섭고 스산한 바람만이 울부짖을 뿐.


딸아이를 데리고 셋방살이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첫딸이 태어나 입 하나가 는 덕분에 더 열심히 벌어야 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봉제공장에 다닌 이력으로 동네사람들의 일감을 받아 수선하고 옷을 만들었다. 새댁 손이 매워서 빈틈이 없고 일도 빠르다는 소문에 일감이 몰려들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사내는 건성으로 동네사람들의 농사일을 거들었다. 큰아이는 자그마한 소리에도 놀라고 밤새 울어대는 통에 아이 달래랴 일감 마감하랴 밤새우는 날이 잦았다. 바느질삯은 봉제공장에 비하면 적은 액수지만, 집에서 아이를 보며 일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사내의 경제관념이었다. 사내는 농사일로 받은 얼마 안 되는 품값도 술로 탕진하거나 노름하기 바빴다. 몇 번이나 이렇게는 못 산다고 엄포를 놨지만, 며칠 잠잠한가 싶다가도 어느새 노름판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단호히 시가살이를 선언했다. 시가로 들어가면 셋방살이로 나가는 세를 절약하고, 네 식구의 식비를 아낄 수 있었다. 살림이 일어나진 못해도 축나지는 않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시가에 내려온 사내는 노름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육아에 농사일, 집안 살림까지 과중한 노동은 온전히 온라인 카지노 게임 몫으로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 기댈 데라곤 사내 하나뿐인데, 사내는 연애할 때랑 딴판으로 데면데면 굴었다. 더욱 기막힌 건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잘난 아들 빼앗은 요망한 년’ 대하듯 괄시하는 시어머니 태도였다. 거친 자갈밭을 맨발로 딛는 심정이 이럴까 싶었다. 장가 못 간 두 시동생과 일꾼들의 매끼 밥상을 차리고, 늦은 밤까지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했다. 다 마치고 차가운 방에 들어서면 잠든 남매의 눈물자국이 남의 일인 양 생경하게 다가왔다. 심란한 마음도 가라앉히고 어디서 노름하는지 돌아오지 않는 사내를 기다릴 겸 외등 하나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나섰다. 사랑한다는 것은 얼굴이 썩어 들어가면서도 보랏빛 꽃과 푸른 덩굴을 피워 올리는 고구마 속처럼 으리으리하다고 한 시인의 비유가 무색한 결혼생활이었다. 누구를 이롭게 하는 희생인가. 우리 집은 과연 사랑이 꽃피는 전당인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 항의하듯 자꾸만 솟구치는 의문들이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성냥을 켜고 또 켜도 어둠은 물러가지 않는다는 시인의 말대로 시가살이는 고달팠고, 예상 난이도는 최상이었다. 진짜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못 견디게 한 장본인은 단연 사내였다. 둘째가 태어났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내를 참아낼 재간이 없었다. 성실하고 듬직한 점이 좋아 결혼했지만, 실상은 거짓이었다. 마침내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 순간이었다. 갈라설 거면 계속 노름하며 살고, 아이들 대학 보내려면 3년간 일본 배를 타러 가라고. 집 나갈 채비를 조용히 끝내놓고 최후통첩을 했다. 사내는 처음에는 농인 줄 알다 금세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진심을 눈치채고 잘못했다며 싹싹 빌었다. 어린 남매를 3년간 못 본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몹시 쓰렸지만, 사내는 지체 없이 검푸른 바다를 택했다. 형편이 못 돼 국민학교도 졸업 못한 설움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는 없었다. 3년만 고생하면 자식들 대학 보낸다는 말이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사내는 마지막 기회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외항선에 올랐다.


사내 없는 3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모를 일이다. 둘째는 아빠 얼굴도 모른 체 뛰놀고, 첫째는 우리 아빠는 어디 갔냐며 찾았다. 밤새 삯바느질을 하고, 일감을 찾으러 온 이웃 아낙들과 수다를 떠는가 하면 두 아이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해 질 녘, 검은 나비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한참 온라인 카지노 게임 주변을 맴돌다 가만히 비상하는데, 신비한 위로를 주었다. 검정을 슬픔의 컬러로 부르는 소설가가 있다지만,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은 위로의 컬러라 부르고 싶었다. 여러 겹의 양육 돌봄이 필요한 시기에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경험한 독박육아는 거의 죽음과 맞바꾼 시간이었다. 독박육아를 자처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오롯이 3년을 버텼다. 엄마, 눈이 뻘게. 어디 아파?라고 첫째가 물으면 어, 눈에 뭐가 들어갔나 봐. 엄마, 이제 괜찮아. 하며 얼버무렸다. 그런 다음 날이면 새벽 일찍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간절히 빌었다. 어서어서 3년이 지나가기를, 제발 무사히 사내가 돌아오기를.


비쩍 마른 모습으로 3년 외항선에 다녀온 사내는 더 이상 예전의 철부지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의논상대가 되는 사람으로 변모해 귀국했다. 사내가 보내온 돈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알뜰살뜰 모아 저축으로 불려놓았고, 자녀들의 미래 청사진도 어느 정도 세워둔 상태였다. 어느덧 아이도 3명이라 잘 방도 모자랄뿐더러 공부를 시키려면 대도시로 나가야 했다. 큰 애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가를 떠나 부산으로 갔다. 부산은 바닷바람이 유독 매서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자녀들의 겨울장비를 단단히 챙겼다. 어릴 적 아이들의 필수 아이템은 무조건 목 폴라티와 장갑, 모자였다. 뉴스에 겨울에도 반팔을 입혀 학교를 보낸다는 일본 보도라도 나오면 그건 그 나라 얘기고, 애들 감기라도 걸리면 다 내 고생인 걸.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괜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귀를 탈탈 털며 빠르게 채널을 돌리는 선수였다.


팍팍한 살림에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기운 나게 하는 딸이 있었다. 셋째가 태어나고 살림이 폈는데, 복덩이라며 예뻐했다. 딸-아들-딸-아들. 2살, 4살 터울로 출산했는데, 상가 건물을 친척과 나눠 사서 집짓기 전 몇 달간 근처에 세를 살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이사 다닐 때마다 집주인에게 자녀가 둘이라고 들어가서는 두 명 더 있다며 사과했다. 그렇다고 쫓겨나지는 않았다. 주인은 2층에 살고, 셋집인 우리는 일층을 사용했는데, 겨울에는 창고에 연탄을 쟁여놓고 살기 편했다. 연탄을 갈러 가는 곳은 한 명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통로였다. 밤새 연탄을 안 꺼뜨리고 자려면 불쏘시개로 번개탄을 써야 했다. 가끔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새벽에 연탄을 갈러나갈 일이 생겼다. 그럴 때면 첫째가 졸린 눈을 비비며 온라인 카지노 게임 옆을 지키기도 보고 거들었다. ‘연탄가스로 일가족 몰살’이라는 뉴스가 종종 충격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시로 연탄이 꺼지지 않게 살피는 일은 긴장을 동반하면서도 가족의 생명을 책임지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 중차대한 일은 또다시 사내가 아닌 온라인 카지노 게임 몫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에게는 삶의 그림자에 쉽게 잠식되지 않는 보호책이 있었다. 그 보물은 다름 아닌 시였다. 사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김소월 전문시인’으로 통했다. 어디서든 유창하게 김소월의 시를 읊었다. 진달래꽃은 물론이고,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초혼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과 심장에 옹골찬 시를 시원스레 퍼 올리는 재주가 있었다. 누구에게도 침해받거나 뺏기지 않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의 영토, 그것이 바로 시의 세계였다. 언젠가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만의 시를 쓰리라,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목소리와 삶의 곡절이 담긴 소박하고 구성진 시를 마음껏 쏟아 내리라 다짐했다.


그 주간은 늘봄보신탕에 유달리 단체손님이 많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 혼자 요리 전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사내는 주방직원을 충원하지는 않고 어리바리한 동생 둘에게 카운터와 서빙을 맡겼다. 사내는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음식 솜씨를 앞세워 한옥 한편을 식당으로 개조해 보신탕집을 냈다. 그 힘든 일을 왜 시작하고 허락했는지는 사내와 온라인 카지노 게임, 둘만의 비밀이었다. 그날은 광견이 갑작스레 달려들어 막내아들의 볼을 물고, 보신탕을 만들던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하혈을 쏟았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막내아들이 동시에 병원에 실려 가는 상황이 누가 봐도 기이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과로 탓인 줄 알았지만, 자연 유산이었다. 그때였을 것이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병원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 건.

“이제 그만! 죽이지 말아요!! 살인을 멈추라고, 제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악에 받쳐 외친 소리는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했다. 사내가 어떻게 장사 도구를 정리하고, 늘봄보신탕을 마무리했는지 모르지만.



3부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학창 시절의 밥은 엄마의 채근에 억지로 꿀꺽 삼키며 달아나는 효도였고, 직장 생활할 때는 허겁지겁 해치우는 업무였다가 혼밥이 잦던 시절에는 홀랑 털어 넣는 쓰디쓴 약이었다. 언젠가는 압력솥에 누룽지를 만들다 새까맣게 태운 솥바닥을 닦느라 괜스레 고생도 했다. 먹이고 살리는 밥을 지을수록 밥상은 흙과 물, 햇빛 그리고 농민들의 노고와 여기의 나를 잇는 숭고한 명상임을 조금씩 알아간다.


마법의 시간은 언제 우리를 찾아올까. 헨젤과 그레텔이 숲 속에서 만난 과자의 집을 상상하며 눈을 반짝였고, 한 날은 회오리바람을 타고 마법의 세계에 떨어진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처럼 유랑하는 꿈을 꿨다. 은하철도 999나 원더우먼, 소머즈를 본 날은 안드로메다 행성에 가려고 메텔과 열차에 오르는 탐험가가 됐다가 번개처럼 나타나서 사람들을 구해주는 정의의 심부름꾼 원더우먼 패션에 매혹되고, ‘뚜뚜뚜뚜’ 뛰어난 청력의 소머즈를 몰래 연기하며 달뜨기도 했다. 하나같이 외국 주인공들이었다.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우리나라 만화나 영화의 대부분이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상상의 날개가 푹석 꺾이면서 나를 둘러싼 모든 마법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국적 상상력은 어디에 있을까 정말 궁금했다. 제주 여신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의문이 풀렸다. 창세신 설문대할망, 바람의 신 영등할망, 농사의 신 자청비, 계절의 신 오늘이, 운명의 신 가믄장아기 등이 마법의 시간을 새롭게 채운 주인공이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신분증, 나이, 실명, 사는 지역, 관심사 등으로 어떻게든 타자의 환경과 취향을 파악해 이득을 취하려는 디지털정보시스템이 위협적이다. 다양한 방법과 루트를 동원해 정보를 선취하고 이용하려는 기업의 공략에 비해 정보를 뺏긴 한 인간의 싸움은 이미 승패가 결정 난 싸움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개인정보를 지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하이에나처럼 몰려드는 수많은 정보침해에 저항하려고 가능한 상업 앱을 덜 깔고, 가입하면 누적 포인트를 준다는 상술에 노(NO)라고 말하고, 다양한 별명을 사용하면서 동기화를 설정하지 않는다. 이 작은 노력조차 부질없게 종종 배달되는 해외 도박사이트나 국내의 아르바이트 광고 문자에 헉하고 놀라는 게 흔한 일이지만.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견고한 벽을 마주할 때가 있다. 이유도 모른 체 당하는 수모도 있고. 다들 침묵으로 자리를 연명하려 할 때 누군가 쏘아 올린 작은 화살이 견고한 벽에 흐릿한 금을 긋는다. 장벽의 단단함에 화살촉이 부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건 분명 잘못된 것’이라며 견고한 벽과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동조한 세력을 잠시 흔드는 효과는 있다. 설령 그들의 가치관과 사고체계 전체를 강타할 작은 흠집조차 못 낸다 할지라도.


처음 쏘아 올린 화살의 타격이 미미하더라도 균열은 이미 시작됐다. 헛되이 친 손바닥이라도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한 시원함이 있고, 누군가는 순간이라도 찔끔했을 테니까. 간혹 다수의 시민이 견고한 벽을 뚫어 개벽의 역사를 만든다. 또다시 견고한 벽에 부딪힌대도 한번 뚫어본 경험은 굽히지 않고 전진하는 방향으로, 트랙터를 몰고서라도 돌파하고 이기는 힘으로 끝내 취약하고 허술한 피라미드를 무너뜨리고 말리라.





*이미지 출처:Pinterest@Boon A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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