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찾은 여름의 상큼함
요즘엔 매주 새로운 마들렌 하나쯤은 꼭 포스팅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는데, 내 기준에선 쉼 없이 부지런히 움직여도 몸 상태가 여의치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결국 사놓고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재료도 꽤 많다. 덕분에 마들렌 만드는 일 외에 미처 쓰지 못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저장하는 일에도 제법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데, 이번 겨울 그렇게 저장해 뒀던 재료 중 하나가 바로 카지노 게임이다.
카지노 게임은 보통 제주도에서 1월에서 3월 사이 생산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품종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데코폰(청견과 폰칸 교배종)’이라는 일본 품종이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990년대 초반이며, 울퉁불퉁하다는 뜻의 ‘데코’와 폰칸의 ‘폰’을 합성해서 만든 데코폰이라는 이름 대신 제주도의 한라산을 닮았다 하여 ‘카지노 게임’이라는 이름을 붙인 덕에 제주도의 토종 과일이라는 오해를 종종 받고 있다.
내가 어릴 땐 카지노 게임이 꽤 고급 과일이었다. 흔히 먹을 수 있는 귤보다는 알맹이가 크고 껍질이 두꺼웠지만 귤만큼 과즙이 풍부해서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좋았고, 오렌지나 자몽보다는 껍질이 얇고 먹기 수월해서 마치 귤과 오렌지의 장점을 합쳐 놓은 듯한 과일이 바로 카지노 게임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카지노 게임 외에도 ‘천혜향’, ‘레드향’, ‘황금향’, 심지어 ‘한라향’이라는 품종도 판매되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카지노 게임의 입지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우리 집도 겨울이 되면 꼭 특정 품종을 고집해서 먹기보단 그때그때 상태가 좋아 보이고 가격대가 괜찮은 귤 속 과일을 집으로 데려왔는데, 워낙 다양한 종류를 먹다 보니 꼭 그중 하나쯤은 맛이 조금 떨어져서 냉장고 한 편을 차지한 채 시들어가는 녀석이 생겼다. 그게 올해는 카지노 게임이었다. 분명 맛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단맛은 조금 떨어지고 신맛은 살짝 강한 데다 조금 밍숭맹숭한 탓에 뒤이어 들어온 다른 귤 속 과일에 밀려 냉장고 속에서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이렇게 두면 괜히 먹지도 못하고 버리겠다 싶어서 고민 끝에 따로 저장해 두었는데, 정신없던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어 냉장고 청소를 하다 보니 한겨울 힘들게 저장해 뒀던 카지노 게임이 눈에 띄었다.
이번 겨울, 카지노 게임은 오랑제뜨를 떠올리며 당절임을 해뒀다. ‘오랑제뜨’는 보통 말린 오렌지나 설탕에 절여 말린 오렌지 콩피에 초콜릿을 입혀 만든 디저트를 의미하지만, 선명하고 상큼한 카지노 게임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초콜릿을 생략하고 1주일에 걸쳐 매일 시럽을 조금씩 끓여가며 천천히 절인 뒤 살짝 꾸덕한 상태까지만 말려 냉동 보관해 두었다. 여기저기 활용하기 좋은 형태여서 순간 머릿속에는 다양한 마들렌이 떠올랐지만, 역시 오랑제뜨를 떠올리며 만든 만큼 마들렌은 클래식한 오랑제뜨의 느낌을 살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 만든 마들렌은 바로 카지노 게임 초콜릿 마들렌이다.
우선 카지노 게임을 절일 때 사용했던 시럽을 끓여 꿀 같은 점도를 만들고, 카카오 파우더와 다크 초콜릿을 더해 진한 초콜릿 맛에 새콤달콤한 카지노 게임의 풍미를 더한 마들렌 반죽을 만들었다. 카지노 게임 당절임을 반으로 잘라 마들렌 반죽을 팬에 넣기 전 껍질 쪽에 깔아주었고, 마들렌 반죽 위에는 잘게 다진 카지노 게임 당절임을 잔뜩 올리고 맛에 특별한 포인트를 주기 위해 천일염을 조금 뿌렸다. 보통 이럴 경우 짠맛이 부드럽고 쓴맛이 없는 게랑드 소금의 일종인 ‘플뢰르 드 셀’ 소금을 주로 사용하는데, 단가가 무척 높고 집엔 천일염뿐이라 천일염을 사용했다.
완성된 마들렌은 한결 상큼하고 진한 초콜릿의 맛과 중간중간 씹히는 카지노 게임 당절임의 쫀득한 식감 그리고 여기저기 터지는 천일염의 강렬한 짠맛 덕분에 색다른 초콜릿의 풍미를 느낄 수 있어 마들렌 자체론 만족스러웠지만, 생각보다 천일염의 짠맛이 매우 강했고 초콜릿의 맛도 생각보다 진해서 더 선명한 카지노 게임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었던 건 조금 아쉬웠다. 참고로 천일염은 사진을 찍기 위해 추가로 올린 것이고 실제로 저렇게 많이 올려 먹으면 단짠이 아니라 단짜아악! 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겨우내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 오랜 시간 공들여 어렵게 만든 당절임인만큼 꼭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싶었는데, 나름 만족스러운 마들렌을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쫀득하게 씹히는 상큼한 카지노 게임에서 왠지 성큼 다가온 여름의 맛이 느껴졌다. 4월에 조금 무리를 한 탓인지 5월은 시작부터 몸에 부침이 있는 편이니 더 건강한 여름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