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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May 12. 2025

내 품이 아니더라도

나의 위탁아동 'O' 이야기 - 13편

O가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며 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냥 설레고 기쁘기만 했던 내 마음은 훅 혼란에 빠져들었다. 깊은 서운함을 겨우 감춘채, 내쪽으로 걸어나온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내품에 와닥 안기는게 아니라 그냥 마지 못해 몸을 내어주는 정도였다.


허리까지 오는 아이의 긴 생머리는 단정하게 빗질이 되어, 양갈래로 야무지게 묶여있었다. 우리집 위탁 아동으로 와있을땐 워낙 정신이 없어 아이의 머리를 묶어주긴 커녕 아침 등교길 버스 안에서 겨우 빗질을 해줄 정도였다. 몇번 머리를 묶어주려고 시도해봤지만 손에 익지 않아 잘 묶이지 않았고, 그래서 포기했었더랬다. 덕분에 아이는바람에 사방팔방 휘날리며 얼굴에 자꾸 들러붙는 긴머리를 고사리같은 작은 손으로 매번쓸어내려야했다. 4개월 뒤, 다른 위탁가정으로 가게된 O의 모습은 훨씬 단정해져있었다. 입고 있는 옷들도 다 새옷이였다.형형색색 고무밴드로 여러 매듭, 누가봐도 정성들여 묶여진 카지노 게임 사이트 머리를 보며 괜시리 미안해졌다. 나와 함께 있을때 내가 너무 미숙하게 돌봐준것 같아서.


버스를 잘 못 타는 바람에 중간에 다시 내려 기차와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며 돌아가야 했다. 이동시간과 점심시간이 겹쳐 기차역에서 맥도날드를 사주었다. O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맥도날드 치킨 너겟이다. 어수선한 기차역에서 점심을 먹이면서 미안한 마음은 배가 되었다.


아침에 날 보고 대면대면 하던 아이는 금방 내게 적응해 조잘거리며 까불대었는데, 그러면서도 자꾸 'I miss nana'라며 중얼거렸다. '나나'는 아이를 현재 돌봐주고 있는 위탁부모다. 아이가 벌써 나를 잊어버렸다는 깊은 서운함에 난 자꾸 아이의 마음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나는 안보고 싶었어?" "우리 그때 파키(Parky=공원)가서 놀았던것 기억나?". 5살 먹은 아이가 날 대면대면해 한다고 상처받아 하는 내 모습이 참 유치하게 여겨지면서도 난 자꾸 이렇게 아이의 마음을 떠보며 살폈다.나와 있을땐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초콜렛을 찾았으면서, 카페에 진열된 먹음직스런 머핀을 앞에 두고도 '나나가 설탕 많이 먹으면 몸에 안좋댔어'라며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는 아이의 달라진 행동. 내가 아이를 '베이비'라고 친근하게 부르자 "I'm Nana's baby. Not your baby"라고 툭 던지는 말은 자꾸 내 마음을 아프게쿡쿡 찔러댔다.


참으로 화창한 하루였다. 동물원에서 몇시간을 놀고, 호수에서 패들보트도 탔다. 보트위에 앉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이의 모습은, 엄마가 남자친구에게 두들겨 맞아 갑자기 우리집에 맡겨지게 되어,집에 가게 해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던 콧물 범벅이 된 아이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우리집에 있을땐 들어보지 못했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 흥얼거림은, 그만큼 카지노 게임 사이트 마음과 생활이 안정됬다는 증거겠다.


예전에 한 탈북자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쩔수 없는 상황에 어린 자식과 생이별을 하고 탈북을 한 엄마가 몇 년 후 아이와 남한에서 다시 아이와 재회했는데, 아이는 다시 만난 엄마를 본척 만척 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갑작스러운 이별을 여러번 겪은 아이들은, 일종의 방어기제로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보호한다고 한다.


생전 처음 타보는 패들보트 위에서 뭉게뭉게 떠있는 구름 아래 꽥꽥거리는 오리때를 쳐다보며 노래를 흥얼리는 O. 이 조그만한 아이의 마음속엔 그 짧은 5년이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태풍들이 불어왔을지.


하루 나들이를 끝내고 쪼르르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쁘게 머리를 묶어주는 '나나'가 아이와 함께 있음에 위안을 삼았다. 더 이상 아이의 마음속엔 내가 없지만 말이다.



*이 글은 위탁부모로서 5살짜리영국 소녀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연재글 중 일부입니다.

O와 함께한 이전 이야기도 읽어보세요.


1.프롤로그

2.O와의 첫 만남

3.O와의 첫 만남 (2)

4.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5.아이에게 거짓말은 어디까지 해야 할까?

6.애 키우는 건 처음이라

7.너의 어둠의 그림자

8.영국 슈퍼마켓에서 엉엉 울어버린 사연

9.생모와의 첫 만남

10.많이 먹어, 아가

11.I don't like you. I love you

12.내 똥꼬는 누가 닦아줘?

13. O와의 두 번째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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