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 (카를로 콜로디 글/시공주니어)
글쓰기 수업하러 오는 아이 중 사랑스러운 수다쟁이가 한 명 있다. 이 아이 이야기는 내용이 매우 독창적이다. 이웃집에 살던 앵무새가 밥도 안 먹고 열린 창문을 통해 날아갔는데, 그 새를 동네 마트에서 만났다는 이야기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스럽고, ‘꿈 학교’ 시리즈는 기승전결의 구성을 제법 갖춘 이야기라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곤 한다. 꿈 학교는 매일 가지만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는 학교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은데, 어떤 날은 땀에 흠뻑 젖도록 놀기도 하고 다른 날은 친구랑 싸워 씩씩대며 집에 오기도 한단다. 꿈 학교 이야기가 재미있어 맞장구치며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러던 아이가 아홉 살이 되고 꿈 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더 이상 깜찍한 카지노 게임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카지노 게임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다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나는 흥미보다는 공포와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괜히 납작한 코를 만져보고 피노키오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어린 친구처럼 나도 이야기 꾸며내기를 좋아했으니까. 그 이야기 속에서 세상 끝까지 떠나는 참새도 되고, 불쌍한 고아도 되었다.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엉엉 울다가 살아있는 엄마한테 들켜 머쓱해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도덕교과서도 아닌데 카지노 게임 좀 한다고 코가 길어지는 벌을 준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가혹해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피노키오의 행각을 알고 나서도 가혹하게 느껴질까?
피노키오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인 제페토를 괴롭혔다. 코는 아무리 잘라도 제멋대로 커졌고 입을 만들었더니 깔깔거리거나 혀를 쏙 빼고 약 올린다. 손을 만들었을 때는 제페토의 가발을 벗기고 발이 완성되자 도망가 버렸다. 제페토를 가정폭력범으로 몰아 감옥에 다녀오게 만들더니, 맘 잡고 공부하라고 입던 외투를 팔아서 책을 사 주었는데 인형극을 보려고 홀랑 팔아 버린다. 약이 되는 충고는 싫어하지만 달콤한 꼬임에는 잘 넘어가서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다.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피노키오 코가 길어지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점점 길어지는 코에 당혹스러운 피노키오에게 파란 머리요정이 말한다.
“카지노 게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 다리가 짧아지는 카지노 게임이랑 코가 길어지는 카지노 게임. 네 카지노 게임은 코가 길어지는 카지노 게임이야.”
이게 무슨 뜻일까? 왜 하필 코일까? 얼굴에서 카지노 게임을 하는 주체를 굳이 말하자면 입일 테니, 입이 비뚤어지거나 새 부리처럼 점점 튀어나오게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코가 되어야 했던 이유는 아무래도 코가 얼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눈에 가장 잘 띄는 자리에 있어야 카지노 게임이 금방 들통날 테니까. 어린이의 카지노 게임은 대개 코가 길어지는 카지노 게임이다. 그리고 그 카지노 게임 버릇을 고치지 못한 일부 어른들도 간질간질한 코를 연신 만지며 <피노키오 같은 이야기를 지어낸다.
나무인형이 아니라 ‘진짜 어린이’가 된 피노키오는 이제 코가 길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서 카지노 게임도 안 하겠지만 이제 사람이니 카지노 게임을 해도 코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다리가 짧아지는 카지노 게임을 하게 될 것 같다. 다리가 짧아진다는 것은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지노 게임에 대한 알리바이 때문에 활동 반경이 점점 좁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가 만연한 어른의 세계에서 카지노 게임은 기본 값으로 기능한다. 그 속에서 속지 않기 위해, 때로는 적당히 속아 주기 위해, 그리고 효과적으로 속이기 위해 제자리에서 동동거리느라 다리가 점점 짧아진다. 그러니 가끔 다리 상태를 살펴볼 일이다. 짧아지고 짧아지다가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될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