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책과 기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원형 Apr 24. 2025

돌들의 카지노 쿠폰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하늘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카지노 쿠폰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카지노 쿠폰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中


로맹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썼을 때 처음 지은 제목은 ‘돌들의 카지노 쿠폰’이었다. ‘자기 앞의 생’이라는 관념적인 제목이 어떤 의미일지 곰곰이 생각해야 했던 것과는 다르게 ‘돌들의 카지노 쿠폰’은 쉽게 다가왔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존재들의 단단한 카지노 쿠폰 이야기다.


1960년대 말, 파리의 벨빌에 유태인과 아랍인과 흑인들이 모여 살았다. 그곳에 있는 7층 건물의 꼭대기층에 몸무게 95킬로그램의 병들고 나이 든 여자가 어린아이들과 생활하고 있었다. 그 여자가 로자 아줌마, 어린아이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아이가 아랍인 모모이다. 찾아오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아무 데나 똥을 싸고 꾀병을 부리거나 도둑질을 하는 모모는 너무 일찍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로자 아줌마와 벨빌에 사는 이웃들을 통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배워 간다.


로자 아줌마는 한때 몸을 팔아 먹고살았고 나이가 들고부터는 매춘부들이 낳은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일을 한다. 아줌마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은 젊어서 손님을 많이 맞이할 수 있었던 때이고,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끌려갔던 것이 가장 끔찍한 기억이다. 신분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어디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아서 사회보장 연금도 받지 못하고 아이들 부모가 보내오는 수표로 먹고 산다. 육중한 몸으로 7층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계단에서 죽는 상상을 한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엘리베이터 있는 곳에서 살 만한 자격이 있는 여자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찾아오기 전까지 열 살인 줄 알았던 열네 살 모모는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는 이유로 학교에 다니지 못 하지만, 양탄자 장수였던 하밀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배운다. 하밀 할아버지는 ‘아무것도 절대적으로 희거나 검은 것은 없는 법’이라며 ‘희다고 하는 것은 흔히 검은색이 숨겨진 것을 의미하고, 또한 검다고 하는 것은 때때로 너무나 흰 것이 드러나 있음을 말한다’는 말을 해 주는 분이다. 이야기 서두에서 모모가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카지노 쿠폰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하밀 할아버지는 대답을 분명하게 하지 못한다. 흰 것과 검은 것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밀 할아버지로서는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을 것 같다. 카지노 쿠폰 없이 살 수 없다고 믿지만 카지노 쿠폰이 없어도 그런대로 살게 되는데, 그렇다고 그런대로 사는 게 제대로 된 삶이냐는 의문도 있었을 것이다.


모모는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키우던 개를 돈 많은 사람에게 줘 버린 다음 펑펑 울고, 아버지를 만나 도리어 로자 아줌마의 카지노 쿠폰을 확인하고,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모두 가진 롤라 아줌마에게 ‘아줌마는 어느 무엇과도 닮지 않았다’는 말을 전해 아줌마를 기쁘게 한다. 우연히 만난 나딘 아줌마와 라몽 아저씨에게 특별한 관심과 카지노 쿠폰을 받기도 한다. 이 모두가 카지노 쿠폰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는 동안 하밀 할아버지는 늙어가고 로자 아줌마는 죽어간다.


모모는 무럭무럭 자라 무엇이 될까? 어린 시절의 바람처럼 늙고 못생긴 창녀들을 평등하게 돌봐주는 뚜쟁이가 될까, 다시는 늙은 창녀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방에서 울게 되는 일이 없도록 세상에서 제일 힘센 경찰관이 될까? 그 누가 되든 모모 주변에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롤라 아줌마 같은 이웃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모모만의 방식으로 로자 아줌마를 떠나보낸 뒤 모모는 '카지노 쿠폰해야 한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이 다짐처럼 앞으로도 넘치는 카지노 쿠폰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 하늘이 가장 귀해하는 사람들과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