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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형 Jan 23. 2025

잘 카지노 게임 사이트고 계시기를

《눈부신 안부》 (백수린/문학동네)

J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건 광주 송정시장에 있는 전통찻집에서였다. 그날은 항암치료 중에 요양병원에서 만나 가까워진 H, Y와 함께 B의 집에 놀러 갔던 터였다. 시장 구경을 하다가 추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들어간 찻집은 밖에서 보기보다 넓었고 휑했고 추웠다. 주문한 대추차가 나오길 기다리는데 전화가 왔다. 발신인은 ‘J 어머니’, 그곳에 모인 모두가 아는 분이다. J가 떠난 지 3년 하고도 2개월이 지나고 처음 온 전화인데 J를 뺀 모두가 있을 때라니, 어떤 의미부여를 하게 만드는 우연이라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안녕하셨어요?

-원형 씨 전화받네요.

-제가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먼저 하시게 만들었네요.

-아유, 아니에요. 그냥 보고 싶어서... 건강히 잘 있지요?

-네 잘 카지노 게임 사이트요. 어머니도 아프신 데 없구요? 아버님도 안녕하시지요?

-네 별일 없어요. 원형 씨 요즘 일도 나가고 하지요?

-네, 조금씩 해요

-그럼, 그래야지. 목소리 들으니까 좋네요. 절대 아프지 말고 건강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요.

-어머니도 건강히 카지노 게임 사이트세요. 어디 좋은 데도 다니시고 음식도 잘 챙겨 드시구요.

-그래요, 그래야지요. 바쁠 텐데 이만 끊어요.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전화 감사드려요.


더 이상 평범할 수 없게 별다를 것 없는 안부 인사를 마치고 나니, 숨죽여 통화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몸을 웅크린 채 자기 몫의 찻잔을 손으로 감싸 쥐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 간단한 통화 중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가늠하고 있었다. J어머니와 내가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우리는 J와 J 어머니가 없는 곳에서 나누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맞는 순간엔 적어도 아프진 않으니까 행복하다고, “언니, 나 약쟁이야.”라며 배시시 웃던 J, 저 세상에 가면 Y에게 잘생긴 남자를 보내 주겠다고 약속했던 J, 맨날 책만 읽지 말고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글을 쓰라고 말했던 J.


J 어머니는 요동치는 그리움에 전화를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J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으리라. 그런데, 왜 나일까? J는 Y와 더 가까웠는데, 왜 나한테 전화를 하신 걸까? 그건 아마도 내가 했던 약속 때문인 것 같다. J의 장례식에서 구슬피 우시는 J 어머니 등을 쓰다듬으며 내가 한 말은 “연락드릴게요.”였다. 그 말을 믿고 3년을 기다리신 것이다. 나는 빈말을 많이 하는데,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언제 밥 한 번 먹자.’라고 한 적도 있고, ‘전화할게.’라고도 하지만 그걸 믿고 기다리는 사람은 없었(다고 믿)는데, J 어머니는 기다리신 거다. 물론 나도 그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은 아니다. 명절이 오거나 기일이 되면 문득 생각나서 전화를 드려 볼까 하다가 그만 두곤 했다. 어쩌면 평온하게 잘 지내시는데 나로 인해 다시 슬퍼지실까 봐 두려웠다. 뭘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건 훨씬 쉬운 일이고 나는 쉬운 쪽을 선택했다. 그런 나에 비하면 백수린 소설, <눈부신 안부의 주인공 해미는 얼마나 책임감 있는 인물인 것인지. 적어도 내뱉은 약속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지키려고 노력했으니!


해미는 어느 날 갑자기 가스폭발사고로 언니를 잃는다. 첫딸의 죽음 이후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멀어지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웃을 견디던 해미 가족은 아빠를 한국에 두고 이모가 사는 독일로 떠난다. 이모는 간호조무사로 독일에 파견되었다가 지금은 의사가 되어 혼자 살고 있는데, 이모 주변에는 파독 간호사였던 이웃들이 있다. 그들을 ‘이모’라 부르며 해미는 독일에서의 생활에 적응해 가지만 또래 친구들은 낯선 이방인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해미는 가상의 친구를 만들어 엄마에게 이야기카지노 게임 사이트, 거짓말을 눈치챈 이모는 꾸짖는 대신 친구를 소개해 주는데, 그 친구가 마리아이모의 딸, 레나이다. 레나를 통해 선자이모의 아들인 한수와도 친구가 되고, 이 셋은 뇌종양을 앓는 선자이모를 위해 첫사랑을 찾아 주기로 한다. 선자이모의 일기장을 통해 첫사랑의 단서를 찾으려 노력하다, 임무를 완수하지 못카지노 게임 사이트 해미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수년이 흘러 활발히 주고받던 편지가 뜸해진 어느 날, 해미는 한수에게서 전화를 받게 되는데, 선자이모의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첫사랑을 찾아 주지 못해 실망하는 한수에게 해미는 불쑥 거짓말을 하게 된다. 첫사랑을 찾았다고, 그 첫사랑이 곧 편지를 보낼 거라고. 이제 해미가 할 일은 중년 남자 느낌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이 거짓말을 수습카지노 게임 사이트 속죄하는 일이다.


어린 해미의 거짓말을 이해해 준 이모처럼 선자이모 또한 거짓말투성이 편지를 기쁘게 받았다. 선자 이모는 편지에서 거짓 너머에 있는 진실을 발견한 것이다. 오랜 시간 오로지 선자 이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애썼던 그 마음을. 언니의 죽음 이후 살아있다는 것이 미안한 해미는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워카지노 게임 사이트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거짓말을 하곤 했는데, 해미 주변의 어른들은 그런 해미를 감싸 주고 아껴 주었다. 어쩌면 파독 간호사로서 ‘산업 역군’이나 ‘불쌍한 누이’라는 납작한 이미지와 함께 여러 편견 속에 살았던 이모들은 사람의 뒷모습까지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열한 살 해미가 독일에 갔을 때 이모들로부터 받은 사랑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하게 만들었다.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 가?”

아, 아무것도 첨언하고 싶지 않은 문장이다. 다만, J의 기일이 되면 J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나 때문에 더 슬퍼지실 지도 모르겠지만 다정한 J 덕분에 병원에 있는 동안 따뜻했다고 꼭 전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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