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 사이의 갈등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을 찾으려고 이웃에게로 가고,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을 잃고 싶어서 이웃에게로 간다. 그대들 자신에 대한 그대들의 그릇된 사랑은 고독을 감옥으로 만든다.'라는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어떠한 사람일까? 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리고, 낯선 사람과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아이들이 어렸을 적 학부모 모임만 다녀와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물론 모임에서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오는 일이 많았다. 그때의 지인들은 내가 아주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친구들과 만나거나 몇몇 취미가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좋아한다. 그러한 모임에서 나는 내성적이지 않고 외향적으로 믿고 있다. MBTI 검사에서 I가 나온다고 이야기하면 나와 친한 사람들은 전혀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시간도 좋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아주 조용히 혼자만의 두세 시간이 꼭 필요하다. 생각도 정리하고 재충전도 하는 고독의 시간이 없으면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믿지 않는 지인들에게 더 이상의 변명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본 것만 믿으니까.
나는 내가 외향적인지 내향적인지 잘 모르겠다. 성격검사 결과가 맞다면 내향성이 더 강한 것도 같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아닌 것도 같고. 이렇게 흔들리다가는 내가 사라지고 말 것 같아서 E와 I의 논쟁은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차라투스트라를 만나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생각의 방향, 관점의 방향을 바꿔보았다.
나를 찾으려고 사람을 만나는지, 나를 잃어버리려고 사람을 만나는지.
그러니 명확하게 답이 보였다. 어쩌면 이렇게 니체는 성격검사라는 지표보다 더 현명한 결론을 지어줄까?
나는 나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만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만나면 나도 모르게 그 속에서 내 존재감은 항상 드러나는 편이다. 속된 말로 톡톡 튀는 사람이라는 뜻.
독특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개성이 강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눈에 띈다는 말도 많이 듣고, 그러한 표현들을 즐기고 있으니 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찾아가고 있는 게 확실하다.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 보다, 책 속의 한 구절이 어쩌면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그렇게들 열심히 읽고 있나 보다.
올해는 작년 보다 더 열심히 책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