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감을 뺏어가는 얄미운 그
요즘 번역 일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요?
한때는 스스로를 번역가라고 소개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넷플릭스 자막 없이 볼 수 있겠네요?" 정도였는데, 요즘은 위와 같은 생계를 위협하는 묵직한 질문을 받는다.
최근에 저 질문을 받은 건, 하필 덩그러니 비어 있는 평일 저녁 일정을 채우러 간 어느 모임에서였다. 매년 연말 연초는 원래 비수기이기도 해서 갑작스레 늘어난 시간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고 있었는데, 이 질문을 받고 나서 이상하게 마음 한편 신경이 쓰였다.
"저도 당분간 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쿨한 척 답했지만, 사회적 가면 뒤의 진짜 나는 전혀 쿨하지 않았다. 요즘 내 비수기의 주범이 AI인 걸까, 의심스러웠다.
사실, 예전에도 이런 유의 질문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AI로 인한 타격은 없는지, 번역가로서 기계번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부분 나는 이와 같은 우려 섞인 진지한 질문에 "조수로 잘 활용하고 있어요, 덕분에 번역하는 속도가 빨라졌어요."라고 몇 차례의 경험을 통해 찾은, 준비된 모범 답안으로 대응했다.
그랬던 내가…
호랑이 새끼에서 어느덧 용맹한 짐승으로 훌쩍 자란AI로부터 위협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얼마 전 챗지피티를 활용해 직접 번역을 하고 영어책을 냈다며, 앞으로는 누구나 챗지피티를 활용해 글을 번역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어느 저자의 실용서를 우연히 접하고 나서부터다. SNS로 팔로우하고 있던 한 출판사의 카드뉴스를 보고 내용을 대충 슥~ 훑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 짧은 찰나에 저자의 설명에 설득당해 버렸다.
그 책은 단순히 직역이 가능한 기술번역이 아닌, 문학번역까지 예로 들면서, 챗지피티를 활용해 원어민의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으로 옮길 수 있음을 어필했다. 예시로 언급된 한국 소설들은 내가 평소에 익히 본 유명한 작품들이어서 충격은 더욱 컸다.
물론 책 내용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해 보였다. 단 몇 장의 카드 뉴스 안에 담긴 몇 문장만으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으니, 다른 독자들 또한 매력을 느꼈을 터. 이런 고급 정보를 손에 넣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 같은 인간 번역가를 고용하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아무래도 내 돈 주고 사기에는 자존심이 상해, 우선 동네 도서관에 책 대출을 예약했다.
충격의 그날,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안일했던 건 아닌지, 기계의 위력을 너무 얕잡아 본 건 아닌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챗카지노 게임 추천의 존재는 전혀 새삼스러울 게 없는데, 이 녀석이 나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느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그동안 챗카지노 게임 추천가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는 사실은 매일 직접 사용하면서 목격해 왔고, 최근에는 귀여운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까지 활용해 나의 감정을 건드려 사뭇 놀라기도 했지만, 남들은 모르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나만 아는 사소한 포인트에 불과할 거라며 애써 외면해 왔었다.
며칠을 방황하고 쭈그리처럼 풀이 죽은 채 지냈다. 그러다가 이제 더는 미룰 수 없는 밀린 번역이나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몇 달째 이어가고 있는 한국 SF 소설을 영어로 옮기는 작업에 다시 착수했다. 이미 초안을 다 완성하고 한창 퇴고카지노 게임 추천 단계에 접어들어, 어색한 문장은 없는지, 다시 한번 원문과 비교하며 빠진 내용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카지노 게임 추천 작업에 돌입했는데, 늘 해온 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날따라 유독 상당한 품이 들었다.
나름 전문가로 불리는(정말?)나도 이렇게 비교 분석하며 한 문장 한 문장에 온전한 집중력을 쏟으며 영어로 옮기기가 이토록 힘든데, 아무리 챗지피티가 위대해졌다 할지라도 언어에 재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활용해 번역을 완성하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 같았다. AI가 수려한 문장들을 눈앞에 촤르륵 펼쳐놓는다고 해도, 내용을 최종 점검하고 선택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일 테니까.
문득 한때 나의 골머리를 앓게 한 사업 소득세 신고가 떠올랐다. 프리랜서로 일하면 매년 5월, 사업 소득세 신고를 해야 하는데, 프리 생활 초반에는 내가 직접 정부 24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며 빈칸을 찬찬히 채우고 직접 세금 신고를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프리랜서 코로나 지원금을 신청하려다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내가 몇 년간 직접 신고한 세금 내역이 정확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 계기로, 수소문 끝에 세무사를 소개받았고, 그를 통해 수월하고 정확하게 세금 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수료가 조금 들긴 해도전문 세무사를 통해 매년 세금 신고를 하고 있다.
물론, 나의 사업은 상당히 귀여운 규모로 충분히 내가 직접 소득을 신고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워낙 숫자에 약한 사람인지라(뼛속까지 문과다) 숫자와 씨름하느라스트레스받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느니 그 시간에 내 본업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는 정부 24 사이트에 얼씬도 하지 않고 있다. 능숙한 세무사가 다 알아서 정확히 처리해 주니까. 유튜브든 네이버 지식인이든, 직접 검색해서 세금 신고를 하는 사람도 많지만, 역시 뭐든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여러모로 마음도 편하고 정확하다는 교훈을 얻은 사례였다.
어쩌면 언어는 매일 사용하는 것이기에 세금보다 비교적 쉬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와 정반대로 뼛속까지 이과인 누군가에게는 아무리 단순한 영어라 할지라도 (내게 숫자와 세금이 그렇듯) 골머리를 썩이는 존재가 아닐까. 거기다 영어 기본기가 없는 사람이 좋은 툴만 있다고 해서, 좋은 글을 알아보고 선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챗지피티를 활용해 누구나 번역을 할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숙련되게, '제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 수준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과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챗지피티가 번역하거나 다듬은 글들을 직접 감수하고 원문과 비교하는 수고를 감내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짧은 텍스트는 몰라도, 일정 분량 이상의 긴 텍스트는 단순히 표현과 문장을 넘어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말이다.
한편으로 번역은 단순히 언어를 떠나 '뚝심'의 문제이다. 아무래도 그동안 내가 수년간 이런저런 작품을 옮기며 고뇌하느라 엉덩이 딱 붙이고 한자리에 앉아 끝까지 작업을 완주해내며 기른 마감 체력과 근성, 끈기는 분명 하루아침에 만들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수그러졌던어깨가 다시 조금은 펴지는 듯하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 사람 누구나 성공하지 않고
부자 되는 법에 대한 책을 읽는 사람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듯,
챗지피티로 번역하는 방법을 담은 실용서를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번역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결국, 이 글은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챗카지노 게임 추천 때문에 걱정 안 되냐'는 식의 질문을 받으면, 다시 보고 흔들리지 말고마음을 다잡으라고,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한 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그토록 애정하는 나의 업을 얕잡아 보게 만들고, 한순간에 내 생계를 위협해 버릴 것마냥 구는 카지노 게임 추천가 너무나도 밉다. 하지만 결국 내일이 되면 또다시 함께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번역하는 데 이런저런 도움을 받게 되겠지.
(어금니 꽉 깨물고) "앞으로도 자알~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