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지방으로 평수를 넓혀 이사를 하고 집값을 조금 아꼈을 때 제일 먼저 새 차를 살지 고민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서로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는지 묻고 그걸로 계급을 나눈다는 어디서 들은 괴상한 소문때문이었다. 한동안 나는 주차장에 있는 차들을 유심히 살피고 다녔다. 학교 앞에 학원 앞에 세워져 있는 학부모의 차를 눈여겨 봤다. 아이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갈 때면 그 집 아파트 단지에 주차된 차도 살폈다. 가끔 엄마들끼리 의기투합해서 장거리로 나들이를 갈 때면 상대방 차종이 뭔지 안보는척 관찰했다. 그리고 내린 최종 결론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차종이 뭔지 보다 중요한건 인성이다.'
차종으로 계급을 나눈다는 소문은 사실일지 몰라도 그건 아이들끼리 주고 받는 농담의 일종일뿐 구형 차를 탄다고 해서 소외되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내가 만난 사람은 그랬다. 오히려 괜히 주눅이 들고 눈치가 보였던 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인 나였다.
이쯤되면 우리가 타는 차를 소개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차는 아반떼 2012년형 모델이다. 연애시절 여자친구가 생긴 아들을 자랑스러워하며 아버님이 남편에게 사 준 첫 차였다. 가성비와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남편은 신형이 나오기 직전 구형 모델을 옵션도 하나 없이 저렴한 가격에 샀다. 덕분에 우리 차는 여전히 열쇠를 꽂아 시동을 걸어야 하고, 내비게이션이 없으며 안전을 위한 각종 센서나 장치가 아무것도 장착되어 있지 않다. 후방카메라는 있으나 모니터가 없어 주차를 할 때면 감각에 의존해야 한다. 그래도 우리 부부와 역사를 함께한 차였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할 때, 신혼여행을 떠날 때, 주말부부로 지낼 때, 아이가 잠을 자지 않아서 차에 태워 온 동네를 누비던 시절에도 늘 함께 했으니까.
주변에서 신카지노 게임 뽑거나 광고에서 신형 모델이 나올 때면 우리도 새 카지노 게임 살 때가 되었다고 느끼며 카탈로그를 뒤지고 일부러 쇼핑몰을 찾아시승을 했다. 견적을 뽑고 그냥 질러버리자고 결심하던 그 때쯤 남편은 육아휴직을 선언했다. 1년간 수입이 없으니 목돈을 쓰기 어려웠다. 모아둔 돈은 생활비로 사용해야 했고, 휴직이 끝나갈 때쯤에는 더이상 여윳돈이 없었다. 그렇게 새차에 대한 염원은 휴직과 함께 조용히 사라졌다.
사실 우리 집에는 차가 두대다. 그럼 두번째 차는 좀 좋은 차인가보다 할 수도 있겠지만 남은 하나는 경차다. 남편만큼이나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나는 퇴직금으로 운전도 쉽고 주차도 편리하고 각종 혜택도 있는 경차를 선택했다. 그때까지는 내가 지방에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기 때문에 고속도로 주행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 흔한 하이패스도 장착하지 않았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안전문제도 있고 하이패스도 없어 불편하기도 하고 때문에 고속도로를 탈 때는 남편 소유의 차를 주로 이용했는데 문제는 아이가 아빠 차만 타면 심하게 멀미를 했다. 때문에 명절같이 장거리를 갈 때도 우리는 거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솔직히 남편 차는 별로 쓸모가 없었으나 가끔 출장을 갈 때나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해야 할 때는 필요했으므로 일단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파트에서 주차제도가 변경됐다. 앞으로 차를 2대 이상 소유한 세대에게는 별도의 주차요금을 부과하겠다고 공지를 했는데 제도가 변한 이후로 관리비가 월 5만원 이상 더 나왔다. 때문에 남편 차는 번번이 집 주변 공터에 있는 무료 주차장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형편이 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수도권으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아파트 주차시설에도 눈이 갔다. 이사하는 아파트는 주차난이 더 심한 모양이었다. 딱 봐도 주차공간이 많지 않아보였는데 부동산 중개인 말로는 밤이 되면 도로에 주차를 하기도 한단다. 그렇다보니 이 아파트에서도 차를 2대 이상 소유한 세대에게는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처럼 공터를 찾아 주차하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고심한 끝에 차를 팔기로 했다.
부서를 옮겨서 출장을 다닐 일도 없어지고, 출장을 가더라도 회사 차를 이용하면 된다. 수도권으로 가니 대중교통으로 양가를 방문할 수 있고, 아이도 커서 버스나 지하철 타는 일도 수고스럽지 않다. (더욱이 경기도는 청소년에게 대중교통비를 지원해준단다.) 여행을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현지에서 렌트를 하면 된다. 차 한대를 유지하는 드는 각종 경비를 계산한다면 그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각종 혜택을 볼 수 있고, 세금 부담도 덜 한 경차를 남겨두는 쪽이 여러모로 합리적인 결정같았다. 더욱이 최고 성수기 때 이사를 앞둔 터라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갈텐데 이 참에 자동차를 판 돈으로 이사경비를 충당하고 가구도 좀 사면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버님께서 본인의 오래 된 차를 폐차하고 우리 차를 가져가시겠다며 선언하셨고 남편은 새 차는 못 사드릴망정 돈을 받고 파는건 안되는 일이라며 그대로 차를 아버님 명의로 넘겼다. 애초에 이 차를 사 준 사람도 아버님이었으니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간 셈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제 경차만 덩그러니 남았다.
지방에서 경기도로 34평에서 24평으로 작은 집으로의 여정은 추억 많은 우리의 첫 차마저 가볍게 떠나보내게 만들었다. 이제는 또 뭐를 더 정리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