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짜 한가족은 맞는 거지..?
다들 기나긴 설 연휴의 시작은 즐겁게 맞이하셨는지요. 예전만큼 명절을다 같이 쇠진 않는다 해도, 주변의 자취인들이 본가 가기 싫다고 곡소리를 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 함께 맞는 명절이 흔적처럼 남아있음을 실감한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모여 보면 몇 안 되는구성원임에도어쩜 그리생각도 다르고 성향도 다르고 취향도 다른지, 옛 어른들의 우스갯소리처럼 "00이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대" 정도가 아니라생판 모르는 사람을 랜덤 뽑기로 배정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최근그 생각을 유독 강하게 한 부분은 바로 위생 관념. 같이 사는 아빠, 엄마, 나는 우리대로, 한 가정으로 독립한 언니는 언니대로 이렇게 다를 수가 있나? 싶어 절로 혀를 차게 되는 게 바로 이놈의 위생 관념인데요.. 로맨스 드라마를 고집하는 아빠와 정치 드라마만 보는 나만큼이나 갭차이가 큰 그들의 위생 관념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청소. 아빠와 언니는 청소에 예민한 편이 아니다. 정리정돈도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거나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 반면 엄마와 나는 청소와 정리정돈에 사활을 건다. 바닥에 먼지, 머리카락이 있는 걸 눈 뜨고 못 보고 이미 수납장이나 박스에 놓여있는 것도 눈에 거슬린다 싶으면 다 꺼내서 보기 좋게 정렬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유난히 집착하는 디테일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데, 엄마는 거울에 얼룩이 있는 걸 참지 못해서 시도 때도 없이 닦아대지만 나는 내가 쓴 안경에 얼룩이 있어도 그냥 쓰고 다닌다. 대신 나는 물건들이 열을 맞추고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에 집착한다. 일종의 강박이겠지만 질서 정연한 모습이 보기가 조크든요.
부엌으로 가보면 상황이 좀 달라진다. 엄마가 집을 비운 동안 아빠가 설거지를 담당할 때가 있었는데, 아빠는 설거지에 진심이며 배수구 청결에는 더더욱 진심이다. 매일 요리를 하고 밥을 먹다 보면과일, 야채 껍질 등 음식물 쓰레기가 찰 일이 잦아지는데, 아빠는 배수구에 음식물이 차는 모습을 못 본다. 설거지가 끝나면 꼭 배수구를 비운 후 기계를 활용해 청소까지 마쳐야 한다. 반면 빵 부스러기나 기름이 가스렌지를 더럽히는 건 별 신경을 안 쓰는데, 엄마와 나는 가스렌지가 깨끗한 것이 중요하다. 특히 기름기 있는 음식을 조리한 후 바닥에 기름이 튀는 걸 엄마는 극도로 싫어한다. 나는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둔감한 편이지만 여름이면 예민해지고, 가스렌지 청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설거지를 얼마나 깔끔히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화장실은 또 다르다. 아빠는 화장실 청소에 사용하는 도구는 많이 사는 편인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화장실 대청소를 수시로 하는 편인데, 희한한 건 그렇게 청소하고 머리카락 모아놓은 건 버리지 않는다는 거다. 하하.. 그럼 머리카락이 뭉쳐져 있는 꼴을 못 보는 내가 그걸 버린다. 또 엄마는 치약이나 비누 같은 화장실 내에서 사용되는 소비재에는 희한하리만큼 쿨(?)한 모습을 보여 다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내다 버리는 기행을 보이는데, 물건은 무조건 못 쓸 만큼 다 쓰고 버려야 한다는 지조를 갖고 있는 나와 이 문제로 매번 씨름을 한다. 분명히 치약을 꼭지까지 다 안 쓴 걸 내가 봤는데! 자꾸 다 썼다고 버리는 그녀의 심리는 뭘까.
마지막으로 침실. 가끔 커뮤니티에 논쟁으로 올라오는 글 중 하나가 '씻지 않고 침대에 올라가도 되는가'인데,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는 걸 보고 제일 놀란 사람이 바로 나다. 어떻게 머리부터 발 끝까지 씻지 않고, 잠옷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침대에 올라가죠? 하지만 그 의견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빠다. 아빠는 하루종일 회사에서 근무하고 왔던 날이라도 본인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하면 그냥 잘 때가 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카지노 쿠폰는 특이하게 씻진 않았어도 잠옷을 입으면 침대에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반반치킨도 아니고 그건 대체 뭐예요.
일상의 한 부분이나 이렇게 다른 점들을 꼽다 보면 어떻게 우리가 한가족으로 살고 있는지 궁금해질 따름이다. 태어난 이래 줄곧 같이 살아왔지만 엄마, 아빠를 보다 보면 '어떻게 저러지!?!?!?!' 하는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얼마나 다른지가 아니라 다른 서로를 얼마나, 어떻게 포용하느냐겠지. 엄마가 청소한 화장실의 머리카락을 줍는 사람이 나이듯, 서로가 있기에 보완하고 채워나갈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가 같이 사는 이유로 충분하다. 설거지가 가득 찬 싱크대를 보며 한숨 쉬고 짜증내기 보단 고무장갑을 끼는 게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