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야기 하나
잿빛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금방 뇌성번개라도 휘몰고 올듯하다. 쏴~바람이 휘몰아치더니 소몰이하는 목동처럼 낙엽을 몰고 휘~ 지나간다.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앉았던 까치가 날개를 펼치며 제집을 찾아 날아간다. 유리창밖에는 듬성듬성 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첫눈이다. 젊은 여인들은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한다. 카페에는 첫눈 오는 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젊은 연인들로 가득할 것이다. 설렘을 안고 기다리던 첫눈은 눈인 듯 아닌 듯 내리다 말고 비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이번 첫눈은 확실하게 첫눈 값을 톡톡히 한 듯 나뭇가지 위에 하얗게 쌓여 눈의 얼음알갱이가 고드름같이 붙어 있다. 자동차 지붕 위에도 이불을 덮은 것처럼 하얗게 쌓여 반짝이는 햇볕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자동차들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눈 온 후에 크고 작은 충돌사고로 이어지고 지나가는 행인도 미끄러져 정형외과에는 부상자들이 눈길사고로 많이 찾는다고 한다. 사고로까지 이어질 만큼은 아니지만 보행에 신경이 쓰인다.
2000년 겨울, 그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자고 일어나니 길거리가 하얗게 눈으로 덮여있었다. 나무 위에는 하얀 솜조각을 얹어 놓은 것처럼 설경이 펼쳐졌다. 길은 얼음판으로 덮인 스케이트장 같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바지주머니에 손을 넣고 조심스레 길을 걸었다. 교통카드를 충전해 달라는 아들의 부탁으로 손 안에는 학생용 정액교통카드를 쥐고 충전하러 버스표 파는 정류장에 가는 길이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추운지 목을 움츠리고 잰걸음으로 제 갈길을 가기 바빴다. 살금살금 걷다가 아이스 링크 안의 피겨선수처럼 한 바퀴 스르르 돌더니 몸의 중심을 잡으려 오른발로 버티려다 사정없이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주변에 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일어나질 못 했다. 우선 사람들의 웃음거리는 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일어서려는 다리는 말을 듣지 않고 휘청거렸다. 학생용 할인카드 어렵게 구했다며 좋아하던 아들의 정액카드는 충전도 하지 못하고 허리가 잘린 채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허무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카지노 게임 사이트데 누군가 나를 보더니 왜 이렇게 힘없이 다니느냐며 얼굴을 힐끔 본다. 카드 충전하러 가다가 구하기 어려운 학생용 카드만 부러뜨려 먹고 엉덩방아만 찧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 길이라고 했더니 까짓 카드보다는 사람 안 다치는 게 다행이라며 웃는다.
흰색은 순결의 의미로 많이 쓰인다. 흰 눈 위를 달리는 강아지도 신이 났는지 주인 앞을 앞장서며 뛰어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앞발을 들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하며 신명이 나있다. 하얀 설국을 연상케 한 흰 눈으로 덮인 거리는 눈 축제를 벌인 것 같다. 아이들은 거리에 나와 눈사람을 만들기에 정신이 팔려있다. 가족끼리 나와서 눈을 굴리며 조형물처럼 작품을 만들어 놓고 흐뭇한 표정으로 눈사람을 보고 있다. 얌전한 숙녀처럼 조용히 내린 눈은 염화칼슘을 거리에 뿌리고 지나간 자리에는 녹아 질척거린다. 차바퀴사이로 튀는 질펀하게 녹은 눈이 지나가는 차들끼리 서로 튕기며 개펄처럼 지저분하게 튀어 엉겨있다. 거북이걸음으로 기어가는 차들 사이에 승용차 지붕 위에 하얀 눈을 산더미처럼 쌓은 채 달리는 승용차의 모습도 눈에 띈다. 떡가루를 날리듯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을 연출한다.
저녁에 아들은 교통카드 충전했냐고 묻는다. 길가에서 넘어져서 엉덩방아만 찧고 교통카드는 반쪽으로 부러졌다는 말은 듣고 버스회사에서 발행을 중단해서 구하기 어려운 걸 친구한테 얻었는데 써먹지도 못하고 버렸다며 투덜거렸다. 은빛세상으로 뒤덮인 카지노 게임 사이트 온 뒤에 생긴 사고로 병원 신세 지는 사람들이 많은 겨울날에 그래도 눈을 기다리는 낭만은 어린아이들의 정서가 아니어도 한 번쯤 눈 위를 걷고 싶은 마음은 변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