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는_해녀가_산다_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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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 주민들에게 청보리는 특별한 식량이었다. 씨만 뿌려도 절로 자라고 세찬 바람 탓에 나무 한 그루 변변히 자랄 수 없는 척박한 섬에서 보리는 유일한 주곡이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생명의 씨앗이었다. 요즘은 전국에서 찾는 방문객들로 주민들은 청보리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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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면 보리지 청보리는 무언지? 보리는 품종이 다양한데, 황금색 또는 짙은 갈색을 띠는 일반보리와 푸른빛을 띠는 청보리로 크게 나뉜다. 가파도는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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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전역은 유채로 봄을 맞고, 가파도는 청보리로 봄을 맞는다. 내가 당도했던 12월, 겨울의 회색빛 하늘 아래 거센 바람이 하루걸러 휘몰아쳐 어서 빨리 그 날들이 지나기를 손꼽았다. 그런데 하늘엔 흰 구름이, 바다엔 윤슬이, 땅엔 청보리가 넘실대는 요즘 하루하루 가는 게 아꼽다(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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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조그만 섬의 주 수입원은 무얼까. 해녀들이 건져 올리는 뿔소라·전복·해삼·성게 등과 어부들이 잡아 오는 생선, 그리고 청보리다. 논농사는 없고 청보리가 유일한 밭농사로, 전체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밖에는 집집마다 우영팟(텃밭)에서 심는 시금치·상추·파·양배추 정도다. 전에는 누구나 보리농사를 지었고, 수확 철엔 일주일 동안 보리방학이 주어질정도였지만 이젠 두 가구가 전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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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게임농사가 시작되는 12월 초, 땅을 갈아엎는다. 여러분은 땅이 갈리며 나는 흙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으신지. 난 맡아보았다. 외출했다가 상동에서 하동 집으로 걸어오는데 달큰한 듯한 냄새가, 옛 향수를 끌고 오는 듯한 땅의 싯누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참을 서 있었다. 땅을 갈고 나면 씨를 뿌린다. 1월이 되자 타닥-타닥-타닥 청카지노 게임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 키를 불리더니 요즘은 가는 바람에도 일제히 돌아누울 만큼 높이 자랐다. 가지 끝에는 통실통실 열매를 달고서. 이제 전국에서 손님을 불러 모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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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자원이 고갈되고 농어업 인구의 고령화로 고민하던 중 한 이장이 가파도의 상징인 청보리를 축제 콘텐츠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렇게 2009년부터 청보리축제의 막이 올랐다. 방문객들은 섬에 닿으면 유채밭과 청보리밭에서 인생컷을 남긴 다음, 청보리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손에 들고 바닷길을 걷는다. 점심 삼아 원조해물짬뽕이나 짜장면을 먹고, 카페에 들어가 청보리미숫가루나 냉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따가운 자외선에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그렇게 두세 시간의 방문을 알차게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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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도에 매혹된 이유는 두 가지. 해녀가 많다는 것과 청보리에 끌려서였다. 베프 해녀 삼촌은 수시로 나를 배려하고, 청보리는 원 없이 두 눈에 담고 있다. 2025년 4월, 가파도 일년살기의 정점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