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남편은 청소 궁합이 잘 맞다. 사실 궁합이라고 할 것은 없는 것이, 둘 다 청소를 생활화하지 않는다. 청소를 잘 안 하니까 잘 맞는다. 그러니 이 집에 청소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구성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둘 다 잘 안 하니까,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더럽게 살아도 불편함을 못 느끼니까.나는 가끔 남편이 청소를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보다도 더 대충 살아가는 인간과 결혼을 한 것 같기도 하다.
3년 전이였을까, 남편이 총각시절 살았던 옥탑방에 한 번 간 적이 있는데, 마치 그곳은 집이 아니라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 박혀있던 아무도 열지 않은 작은 비밀창고 같았다. 바람 빠진 농구공이랑 축구공 따위를 넣어두고 1년 동안 열지도 않았던 거미줄 쳐져있는 그런 창고 같은 공간. 문을 열면 오래 묵은 먼지들과 빛들이 새어 나오는 그런 낡은 공간.
그런 공간에서 남편은 즉석식품 같은 것을 뜯어먹고 컴퓨터 한 대 놓고 살아가고 있었다. 거대하고 통통한 햄스터 한 마리가 부잣집 지붕 아래에서 도토리 같은 것을 훔쳐다가 몰래 살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그냥 "그런가 보다"라며 만족하고 살았다는데, 어떻게 이런 데서 살았던 거지? 나보다 더 심한 인간이라니.난 남편의 비밀창고를보면서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평생 청소 문제로 다툴일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동거기간을 포함해서 2년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때때로 내게 "누구와 한 집에 같이 살아야 하나요?"로 들린다. 결혼을 하면 어찌 됐든 상대방과 한 집에 살아야 한다. 한 집에 살려면 같이 사는 사람은 생활 습관이비슷해야 평화롭다. 인생에서 갈등은 적으면 적을수록 삶의 질이 올라간다. '더러움의 정도'는 동거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남편은 뭐라 하지 않고, 남편이 거대한 햄스터처럼 도토리를 까먹고 아무 데나 버려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 우리는 서로의 더러움의 정도를 인식하고 있고, 평화롭게 지낸다.
그때 그때 필요한 최소한의 빨래를 하고, 최소한의 정리만 한다. 바닥에 떨어진 먼지, 머리카락, 정돈되지 않는 물건들은 우리에게 별로 신경 쓰이는 존재들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면서, 비난하지 않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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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우리가, 의식처럼 대카지노 게임 하는 날이 있다. 바로 "카지노 게임"하는 날, 우리는 그날이 오면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았던 곳까지 청소를 구석구석한다. 로봇 청소기도 돌리고, 빗자루 질도 하고, 미루고 미루던 빨래들도 하고, 각 방에 있는 쓰레기통도 다 비우고, 냉장고 안에 있는 썩은 채소들과 음식들을 모두 갖다 버린다.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처음 방문을 열었을 때의 신선하고 쾌적한 공기를 맡았을 때처럼, 깔끔하고 새것 같은 집을 만들어놓는다. 우리에게 "카지노 게임"란길게 떠나는 여행을 의미한다. (자유를 향해 두 마리의 꼬질꼬질한 햄스터들이 도망가는 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나 혼자 이렇게 지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이 함께 가는 첫 해외여행이었는데, 그때아버지가 떠나기 전에 집을 깨끗하게 해 놓고 가야 돌아올 때 심난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첫 입주하고 청소하지 않던 집을 거대한 햄스터와 함께 힘을 합쳐서 청소를 했는데, 여행에 돌아올 때 깨끗한 집을 마주하니 아빠 말대로 기분이 좋았다.
벚꽃이 핀 4월, 두 번째 카지노 게임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우리는 이번에도 카지노 게임를 떠나기 전, 꼭 해야하는 의식처럼 춤을 추듯이 집을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떠났다.그렇게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올 때, 먼지 한 톨 없는 깨끗해진 집을 마주했다.
또 다른 여행지에 도착한 기분을 느꼈다.
글 여미
yeoulhan@gmail.com
여행 떠나기 전에 뭘 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