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헌 Apr 12. 2025

김훈의 <하얼빈

영화 <하얼빈 2024년

1908년 1월 7일, 일본 제국 천황 메이지(明治)는 도쿄의 황궁에서 대한제국 황태자 이은(李垠)을 접견했다. 이은은 열두 살이었다. 한국 통감 카지노 게임 사이트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한국 황태자의 보육을 책임지는 태자태사(太子太師)의 자격으로 작년 말 이은을 서울에서 도쿄로 데려왔고 이날 메이지의 어전으로 인도했다.

메이지는 일본 제국 대원수의 군복에 군도를 차고 있었고, 이은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신년 하례용 연미복 차림이었다.

메이지가 군복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침의 일정을 시작할 때 군복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도쿄에 주재하는 서양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이 이날 접견의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으므로 지엄한 법도와 위엄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신하들의 중론이었을 것으로 메이지는 생각했다. 메이지는 의전의 세부 사항은 신하들의 뜻에 따르는 편이었다. 군복 단추를 끼우면서 메이지는 조선의 어린 황태자에게 주는 인상이 지나치게 위압적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서양 외교관들에게도 일본이 조선을 문명적으로 대하고 있으며, 일본 천황이 조선의 어린 황태자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자애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조선 황태자는 인질이 아니라 문명한 교육을 받게 하려는 조선 황제의 요청에 따라 일본 천황의 무육(撫育)에 맡겨진 것임을 세계에 알리려면 군복 차림은 어색했지만, 신년의 첫 접견이므로 범하지 못할 만큼의 위엄은 필요할 것이었다. 메이지는 군복을 입으라는 신하들의 마음을 그렇게 헤아렸다. 두려움은 못 느끼듯이 느끼게 해야만 흠뻑 젖게 할 수 있을 것이었다. (P7-8)

카지노 게임 사이트

제2차 한일협약 때, 병력으로 조선 황궁을 포위하고 조선 황제와 대신들을 헌병으로 협박하기는 했지만, 병력을 부딪치지 않고 도장을 받아내서 오백 년이 넘은 나라의 통치권을 인수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역량을 메이지가 모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러시아를 도모할 때까지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것이 도장으로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나, 그후 조선 사대부들과 자주 상종할수록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뜻은 도장 쪽으로 기울었다. 왕권의 지근거리에서 세습되는 복락을 누린 자들일수록 왕조가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갈 때는 새롭게 다가오는 권력에 빌붙으려 한다는 사실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점차 알게 되었다. 도장의 힘은 거기서 발생하고 있었다. 도장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살육을 피할 수 있고, 조선에서 밀려나는 서양 여러 나라들의 간섭을 막을 수 있고, 사후 처리가 원만할 것이었다. 도장을 찍어서 한 나라의 통치권을 스스로 넘긴다는 것은 보도 듣도 못한 일이었으나, 조선의 대신들은 국권을 포기하는 문서에 직함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도장의 힘은 작동되고 있었으나, 조약 체결을 공포한 후 분노하는 조선 민심의 폭발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예상하지 못했다. 지체 높은 사대부들이 비통한 글을 남기고 잇달아 자결했다. 그들은 독약을 마셨고 물에 뛰어들었다. 조선 황제는 자살한 신하들에게 표창을 내려서 충절을 기렸다. 오백 년을 지탱해온 나라의 관리와 식자 몇 명이 치욕을 못 견디어 자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 죽음에 따른 민심의 동태를 주시하면서도 못 본체했다. 이 동시다발적 죽음들은 무력하기는 했으나 충(忠)의 반열에 올랐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조선 사대부들의 자결이 아닌 무지렁이 백성들의 저항에 경악했다. 왕권이 이미 무너지고 사대부들이 국권을 넘겼는데도, 조선의 면면촌촌에서 백성들은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P17-18)

카지노 게임 사이트

빌렘이 손가락에 성수(聖水)를 찍어서 아이의 이마를 적셨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신부를 올려다보았다. 안중근 도마와 김아려 아그네스는 신부 앞에 무릎을 꿇고 합장했다. 빌렘이

--베네딕도.

라고 아이에게 세례명을 주었다. 빌렘이 팔을 들어서 아이의 머리 위에서 십자를 그렸다.

--베네딕도야. 내가 너를 씻기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을 인하여 하노라.

베네딕도는 사랑의 힘으로 세상의 온갖 악을 물리쳤고, 인간의 야만성에 짓밟히는 인간을 사랑했고, 성령의 뜻으로 세상의 어두움을 밝혔던 성인이라고 빌렘은 이름을 내리는 뜻을 설명했다. 빌렘은 이 아이가 하느님의 아들로 새롭게 태어났으니 베네딕도 성인의 가호 아래 자라나서 이 간고한 조선의 빛이 되라며 강복했다. 조선 천주교회는 베네딕도를 한자로 옮기면서 ‘분도(分度)’라고 바꾸어서 불렀다. 안중근은 장남의 이름을 분도로 정했다. (P30)

카지노 게임 사이트

큰 구도가 필요하다. 폐허를 크게, 조선 황제를 작게 나타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만월대 돌계단 앞에서 일본인 사진사에게 명령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손짓으로 송악산 능선과 계단을 가리키며 지시했다. 무너진 돌계단과 그 너머의 송악산 능선을 구도의 횡축에 들어앉히고 조선 황제의 대열이 그 폐허에 종축으로 길게 늘어선 사진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요구했다. 미리 현장을 답사한 사진사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요구를 무리없이 소화해냈다.

사진사는 멀리 떨어져서 카메라를 설치했다. 시야의 범위를 넓게 잡고, 렌즈의 각도를 위쪽으로 오 도쯤 올려 잡았다. 뷰파인더 안에서 돌계단의 폐허가 화면 중앙에 가득차고 그 너머로 송악산 능선이 구름처럼 떠 보였다. 조선 황제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일산이 받쳐져 있어서 거기가 황제의 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그 옆에 희미하게 보였고 군도를 찬 일본군 장교가 그 앞에서 대열을 인도하고 있었다. 돌계단을 내려 오느라고 황제의 대열은 흐트러졌다. 대열이 폐허를 배경으로 종축을 이루었을 때 사진사는 셔터를 눌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일본 해군 기함에서 찍은 사진과 만월대에서 찍은 사진에 만족했다. 이 사진 두 장이 조선의 운명과 조선의 앞날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판단했다. (P51)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원고를 직접 쓰기로 하고 만년필을 들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말년에 미국의 흑선(黑線)이 에도 연안을 침범했을 때, 우리의 젊은 지사(志士)들은 그 검고 추악한 배의 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고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우리는 다가오는 세기의 공포를 각자의 젊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앎이 통절한 자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데, 앎이란 곧 사물의 실상을 보는 정신의 작용이다. 실상을 보는 자는 몸 둘 자리를 알고 몸 쓸 방편을 스스로 안다.

이 세계는 인간이 만드는 구조물이다. 이것이 우리의 앎이다. 우리의 앎은 사물을 향해 나아간다. 이것이 제국의 길이다. 이제, 풍운은 울고 있다.

이 개벽을 서양인들은 혁명이라 일컫지만 제국의 깃발은 유신이다. 유신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황통(皇統)을 제국의 추기(樞機)로 삼는다. 황통은 제국의 체(體)로서 불가침하고 이 존엄의 핵심부는 고요하다.

추기는 천래(天來)의 은총이며 인간이 만드는 신성(神性)이다. 여기서 제국의 권능은 비롯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쓰기를 멈추었다. 치솟으려는 문장의 숨을 죽여서 주저앉혀야 하는데, 한번 들뜬 문세(文勢)가 가라앉지 않았다. 제국 정신 핵심부의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조선 대신들도 참석하는 송별연의 자리에서 일본의 높고 깊은 부분을 말하기보다는 후임 통감의 시정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는 것이 합당할 것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사환을 불러서 차를 마셨다.

..... 알아듣지 못할 자들이 많다. 쉽게 말하자.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만년필을 들어서 계속 써나갔다. (P80-81)

도주막의 어둠 속에서 잠을 청하는 밤에, 안중근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육신에 목숨이 붙어서 작동하고 있는 사태를 견딜 수 없어하는 자신의 마음이 견디기 힘들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목숨을 죽여서 없앤다기보다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살아서 이 세상을 휘젓고 돌아다니지 않도록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존재를 소거하는 것이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바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렇다기보다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애초에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한 생애의 자취를 모두 소급해서 무화(無化)시키는 쪽이지 싶기도 했는데, 그 지우기가 결국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목숨을 제거하는 일이 되는 것인지는 생각하기가 머뭇거려졌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목숨을 제거하지 않고서, 그것이 세상의 헝클어뜨리는 작동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그렇기 때문에,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殺)에 있지 않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그렇게 살하고 나서 말했다 해서 말하려는 바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세상에 들릴 것인지는 알기가 어려웠다.

이 세상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지우고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작동을 멈춰서 세상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로부터 풀어놓으려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살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를 안중근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생각은 어둠의 벽에 부딪혀서 주저 앉았다. 생각은 뿌연 덩어리로 엉켜 있었다. (P88-90)

만월대에서 찍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사진은 벼락처럼 안중근을 때렸다. 벼락이 시야를 열었다. 몸속의 먼 곳에서 흐린 구름처럼 밀려다니던 것이 선명한 모습을 갖추고 눈앞으로 다가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몸이 안중근의 눈앞에 와 있었다.

...... 시간이 없구나. 연추를 떠나자. 운신할 수 있는 자리로 가자. 내 몸을 내가 데리고 가서 몸을 앞장세우자. 몸이 살아 있을 때 살아 있는 몸으로 부딪치자......

신문 속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사진을 보면서 안중근은 조준점 너머에서 자신을 부르는 손짓을 느꼈다.

우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일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내내 분명하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은 자각 증세가 없는 오래된 암처럼 마음속에 응어리져 있었는데, 만월대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암의 응어리가 폭발해서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안중근은 몸을 떨었다. (P97)

--이걸 좀 봐.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하얼빈에 온다는군.

이강 주필이 일본 신문 한 장을 안중근 앞으로 내밀었다. 기사는 일본 내각의 공식 발표를 인용하고 있었다. 이토는 10월 하순께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와 회답할 예정이었다. 신문은 이토의 만주 방문은 개인 자격의 여행인데, 유람중에 남만주철도를 시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신문 1면 상단에 이토의 인물 사진이 실려 있었다.

이강이 말했다.

--안선생, 어떤가?

안중근은 이강이 무엇을 묻고 있는지 알 듯도 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얼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안중근은 숨이 막혔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얼굴은 차가운 평면의 느낌이었다. 턱수염이 무성했다.

..... 이것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이목구비로구나. 보통 사람과 아무 차이 없구나......

남만주철도를 시찰한다면 이토는 시모노세키에서 기선 편으로 대련에 와서, 열차를 타고 봉천, 장춘을 거쳐서 하얼빈으로 올 것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가려면 만주의 내륙을 서북쪽으로 관통해야 했다. 여러 산맥과 강들과 산골 마을의 정거장들을 지나는 철도가 안중근의 눈앞에 펼쳐졌다. 철도는 눈과 어둠 속으로 뻗어 있었다. 그 먼 끝에서 이토가 오고 있었다. 멀리서 반딧불처럼 깜박이는 작은 빛이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었다. 빛이라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이 강렬한 끌림 같은 것이었다. 두 박자로 쿵쾅거리는 열차의 리듬에 실려서 그것은 다가오고 있었다. 문득 빌렘에게 영세를 받을 때 느꼈던 빛이 생각났다. 두 개의 빛이 동시에 떠올라서 안중근은 이토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눈을 감았다.

이강이 말했다.

--이토는 추밀원 의장 신분인데, 개인 자격의 여행이라니 어불성설이오. 게다가 러시아 재무장관을 하얼빈에서 만난다고 하니까. 청국과 조선을 제치고 무슨 흥정을 하려는 것이 틀림없소. 아마도 만주횡단철도의 관리권에 관한 협상이 아닐까 싶소. (P99-100)

--시간이 없구나.

우덕순이 혀로 마른 입술을 적셨다. 안중근이 냉수를 우덕순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자네는 권총이 있는가?

--있다. 광산촌에서 행상질 할 때 호신용으로 사둔 것이다. 중고품을 팔 루블 주고 샀다. 거기서는 다들 총을 지니고 다닌다. 좋은 물건은 아니지만 쓸 만하다.

--총알은 몇 발 있는가?

--세 발 있다. 처음에 열 발 있었는데, 일곱 발로 꿩을 쏘고 세 발 남았다.

--권총으로 꿩을 쏘는가?

--꿩이 가까이 왔을 때 쏘았다. 모두 한 방에 맞혔다. 한 마리는 먹었고 나머지는 팔아서 밥을 사 먹었다.

--꿩을 쏘고 남은 총알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쏘는구나.

우덕순이 소리 없이 웃었다. 웃음은 엷게 얼굴에 번졌다.

--우습지만 그렇게 되었다. 겨누어 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총을 많이 쏘아보았는가?

--많이 쏘지는 않았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꿩보다 덩치가 크니까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겠구나. 그렇겠어.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덩치가 너무 작아서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웃음은 흐렸고 소리 끝이 어둠에 스몄다.

--총알 세 발은 너무 적지 않겠나. 좀더 구할 수 있겠나?

--세 발은 많지 않지만, 적지도 않다. 세 발이면 적당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경호원을 여럿 데리고 있을 테니까 아마도 나는 세 발 이상은 쏘지 못할 것이다. 근접할 수만 있다면 세 발 이상은 필요 없다. 경호원이 많아도 먼저 쏘는 자를 당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총이다.

너는 참으로 총을 아는 자로구나..... 라는 말을 안중근은 참았다.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지만 총은 한번 쏘면 돌이키지 못한다. 생각에 잠긴 안중근에게 우덕순이 물었다.

--자네는 몇 발 가지고 있는가.

--일곱 발짜리 탄창 한 개다. 그리고 몇 발 더 있다.

--다 쏠 수 있을까? 탄창을 갈아 끼울 시간은 없을 것이다.

--총을 많이 쏴본 사람 같구나.

--몇 번 쏴보면 다 알 수 있다.

우덕순이 잠시 말을 멈추고 안중근이 그린 지도에서 하얼빈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대륙의 철도가 모두 하얼빈으로 모이는구나. (P115-116)

열차는 어둠 속을 달렸다. 차창에 물방울이 달렸고, 먼 들의 가장자리로 불빛 몇 개가 흘러갔다. 열차 안에서 안중근과 우덕순은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쏘는 일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안중근은 열차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았다. 여러 갈래의 철길이 망막 안쪽에 떠올랐다. 권총은 외투의 왼쪽 안주머니 속에 있었다. 안중근은 심장을 누르는 권총의 무게를 느꼈다. 권총은 묵직했는데, 너무 무겁지는 않았다.

하얼빈역 구내에서 철도는 여러 갈래로 겹쳐 있었다. 바이칼 호수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았다. 평양에서 오는 철도와 대련에서 오는 철도가 하얼빈역에 닿았다. 북태평양과 바이칼이 하얼빈에서 연결되었고 철도는 하얼빈으로 모여서 하얼빈에서 흩어졌다. 하얼빈역에서는 음과 감이 같았고 만남과 흩어짐이 같았다.

열차는 저녁 아홉시 십오분에 하얼빈에 도착했다. 철도 앞쪽 열차 정지선에서 빨간색 파란색 신호등이 명멸했다. 남루한 차림의 사내들이 짐 보따리를 지고 열차에서 내렸다. 마중나온 사람들이 도착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울었다. (P137)

안중근은 우덕순을 데리고 다시 하얼빈역으로 갔다. 기관총을 든 러시아 군인들이 역전 광장을 순찰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역사 안 대합실의 구내 다방으로 들어가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다방은 이층이었다. 플랫폼에 닿아 있어서 창가에서 철도 복선구간이 눈 아래로 내려다보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열차에서 내려서 다방 밑으로 지나간다면,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구경하기는 좋지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쏘기에는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표적이 멀어지면 실탄의 살상력이 약해질 수 있었다. M1900 권총은 반동이 약해서 삽시간에 여러 발을 쏘면서도 조준을 유지하기가 수월했지만 유효사거리가 짧고 살상력이 모자랐다. 바싹 다가가야 급소를 맞힐 수가 있는데, 근접은 위태로웠다. 열차가 플랫폼의 어느 지점에서 정차할 것인지와, 열차가 도착했을 때 러시아 경비대, 청나라 경비대의 포진 위치를 짐작할 수 없었다.

순종을 앞세워서 만월대를 시찰하던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사진이 떠올랐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덩치가 작던데, 열차에서 내린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덩치 큰 러시아인들과 섞여 있을 때 표적을 식별해서 조준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열차가 들어오기 전부터 경비병들이 다방 안 사람들을 쫓아낼 수도 있었다.

.... 이 자리는 아니다. 하얼빈역에서 쏘려면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서 쏴야 한다. 십 보 이내로 근접해서 경비병들 사이로 조준선을 확보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안중근의 말을 들은 우덕순은 창밖으로 철도를 바라보면서 줄 담배를 피웠다. 우덕순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우덕순이 말했다.

--이 자리는 좋지 않다. 구경하는 자리다. 쏘는 자리가 아니야.

--애매하다. 표적이 어디로 올지 알 수 없구나. 내려가서 바싹 붙어야 한다.

--그렇다. 도착 시간도 확실치 않고.

안중근이 한참 후에 말했다.

--채가구역으로 가보자. 거기서 철도가 교행한다. 열차들이 거기서 오랫동안 정차한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그때 내릴 수 있다. (P151-152)

안중근은 러시아 병대 뒤쪽에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주악 소리가 커졌다. 소리가 커지면 총소리가 묻힐 터이므로 유리한 조건이고 러시아 의장대들의 부동자세도 불리한 조건이 아니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권총은 상의 안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더욱 다가왔다. 러시아 군인들 사이로 두 걸음 정도의 틈이 벌어지고 그 사이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보였다. 키 큰 러시아인들 틈에 키가 작고 턱수염이 허연 노인이 서 있었다.

저것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로구나...... 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저 오종종한 것이.....

안중근은 러시아 군인들 틈새로 조준선을 열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의 주변에서 키 큰 러시아인들이 서성거려서 표적은 가려졌다. 러시아인과 일본인들 틈에 섞여서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이동하고 있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가물거렸다.

안중근의 귀에는 더 이상 주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러시아인들 틈새로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보였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조준선 위에 올라와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손가락은 저절로 움직였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안중근은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가늠쇠 너머에서,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이토의 모습이 꿈속처럼 보였다. 하얼빈역은 적막했다.

탄창에 네 발이 남았을 때, 안중근은 적막에서 깨어났다. ...... 나는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본 적이 없다..... 저것이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아닐 수도 있다.......

안중근은 다시 조준했다. 안중근은 고요히 집중했다. 손바닥에 총의 반동이 가득찰 때 안중근은 총알이 총구를 떠난 것을 알았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 주변에 서 있던 일본인 세 명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안중근은 외쳤다.

--코레아 후라

안중근은 쓰러지면서 총을 떨어뜨렸다. 탄창 안에 쏘지 못한 한 발이 남아 있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의 몸을 무릎으로 눌렀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철도 가에서 묶였다. (P166-167)

뮈텔은 저녁 무렵에 안중근과 빌렘을 주교관으로 들였다. 뮈텔은 안중근이 먼저 말문을 열기를 기다렸다. 안중근은 미리 준비하고 연습해온 말을 꺼냈다.

--지금 조선 교인들은 무지몽매해서 교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나라의 발전에도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서양 나라의 수사(修士)들을 모셔와서 조선에 대학교를 세우고 인재를 키우면 교회와 나라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주교님께서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안중근은 몰아붙이듯이 말했다. 뮈텔은 안중근의 말투에서 청년의 환상과 열정을 느꼈다. 빌렘은 옆자리에 앉아서 뮈텔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뮈텔은 빌렘과 안중근이 말을 맞추고 왔음을 알았다. 뮈텔이 느린 말투로 말했다.

--대학교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다. 많은 자금과 인력이 필요하고, 이윤이 아니면 세속의 자금을 움직이기가 힘들다.

--그러니까 주교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사제가 어찌 세속의 일에 통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일은 조선 황실에 진언하라.

--조선 황실의 무력함을 주교님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주교님께서 서양 여러 나라에 발의하시면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중근은 물러서지 않았다. 뮈텔은 안중근의 어조가 맡겨놓은 물건을 내놓으라는 투라고 느꼈다. 안중근은 또 말했다.

--주교님께서는 서울 한복판에 이런 거대한 성당을 이룩하셨으니, 뜻을 정하시면 대학교를 세우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뮈텔은 말했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세우신다. 세속의 일을 교회의 일에 빗대어 말하지 마라. 아름답지 않다.

안중근은 뮈텔을 찾아온 것을 후회했다. 안중근은 주교관 창밖으로 대성당의 종탑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탑이 저녁노을에 빛났다.

뮈텔이 말했다.

--조선의 대학교는 가당치 않다. 조선인은 우선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조선인이 학문을 배우면 신심을 헤치게 된다. 좋지 않다. 다시는 이런 말을 꺼내지 마라.

안중근은 뭐라고 더 할 말을 참는 듯하다가 돌아갔다. 뮈텔은 안중근을 데리고 황해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빌렘을 나무라고 싶었다. 뮈텔은 돌아가는 안중근의 뒷모습에서 불손한 기운을 느꼈다. 그후로 안중근은 소식이 없었다. (P183-184)

우덕순은 안중근과 두어 번 만난 적은 있었지만 흉금이 통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성장 과정이나 세습된 환경이 전혀 달랐다. 불온한 떠돌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우덕순은 극빈의 하층민이었고 안중근은 토호의 자식이었다. 안중근은 한학(漢學)의 기초를 갖추었고, 무골(武骨)의 기상이 있었다. 우덕순은 이톨르 죽이러 가자는 안중근의 제안에 즉석에서 동의하고 이틀 뒤 둘이서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났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여야 하는 이유를 둘이서 말하지도 않았다. 둘 사이에 정치적 대화는 없었다. 이 과정은 우덕순의 진술과 안중근의 진술이 일치했다.

이 두 사내들 사이에 어떤 신통력이 작동해서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인지 미조부치는 헤아릴 수가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이 두 사람만의 일인가, 아니면 다른 조선인들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는 일인가를 미조부치는 우덕순에게 물어볼 수가 없었다.

이 난감한 질문은 사건의 핵심일 수도 있지만 법률가가 대답할 사안은 아닐 것이라고 미조부치는 스스로 대답했다. 우덕순에게서 사상적 동기를 박탈하고 우덕순을 안중근의 사주를 받은 하수인으로 규정해서 기소하기로 미조부치는 가닥을 잡았다. (P211-212)

안중근은 미조부치에게 물었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는 총 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걸 알고 죽었는가?

안중근의 질문은 대답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묻고 있었다. 총 맞아 죽은 자가 총 쏜 자의 국적을 알고 죽었는지, 모르고 죽었는지가 안중근에게 중대한 문제가 되는 까닭에도 사건의 본질이 있을 것이었다. 미조부치는 말했다.

--나는 모른다.

미조부치는 신문의 방향을 바꾸었다.

--그대는 정치적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다지만, 이런 행위는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다. 그대의 그릇됨을 모르는가?

--사람의 도리에 반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카지노 게임 사이트가 죽었다니,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이려 한 까닭을 카지노 게임 사이트에게 설명해줄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그대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를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나는 그 죄악을 제거했다.

미조부치는 그물망을 더 좁혔다.

--그대가 받드는 빌렘 신부도 그대의 범행 소식을 듣고 자신이 세례를 준 사람 중에 이러한 자가 나온 것을 한탄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대의 소행이 사람의 도리와 종교의 가르침에 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안중근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조부치가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신부의 이름으로 뒤통수를 치려는 것인지 안중근은 판단할 수 없었다. 미조부치의 말대로 빌렘이 안중근의 소행을 신도들과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빌렘은 성직자로서 크게 상심했을 것이라고 안중근은 짐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면서 작별인사를 드릴 때, 붙잡지는 못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못마땅해하던 빌렘의 표정이 떠올랐다. (P221-222)

--그렇다면 앞으로 진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바를 지금 진술하라.

--나의 목적은 동양 평화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자신의 생명과 재산의 안전을 도모하지 않는 것은 없다. 인간 된 자는 이것을 위해서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토는 통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태황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를 자기 부하처럼 부렸다. 또 타국민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히고 십수만 한국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이토, 이자는 영웅이 아니다. 기회를 기다려 없애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얼빈에서 기회를 얻었으므로 죽였다.

검찰관은 내가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오해해서 죽였다고 말하는데, 나는 검찰관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오해해서 죽인 것이 아니다. 검찰관이 내 다섯 살 난 아들에게 내 사진을 보여주니까 아버지라 말했다고 조서에 썼다. 그 아이가 세 살 때 내가 집을 떠났으니 아이가 내 얼굴을 알 방도가 없다. 이로써 검찰취조가 엉터리임을 알 수 있다. (P236-237)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고 2월 17일부터 <동양평화론을 쓰기 시작했는데 탈고까지는 한 달 남짓 걸릴 듯싶었다. 그동안의 신문과 재판 과정에서 말로 대꾸했던 내용들을 틀을 갖추어서 글로 쓸 작정이었다.

동생들에게 일러서 매조지할 집안일도 많았다. 빌렘 신부를 만나서 죽기 전에 해야 할 말들과 들어야 할 말들, 용서받아야 할 일들과 용서될 수 없는 일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건너가야 할 길은 멀었다. 안중근은 서예를 공부 삼아 배운 적은 없었지만, 옥리들이 지필묵을 들이밀며 글씨를 써달라고 졸랐다.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죽인 엄청난 범인의 자취를 지니고 싶어하는 호물심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어서 안중근은 글씨를 써주었다. 먹물을 찍어서 획을 그을 때는 방아쇠를 당겨서 총알을 내보낼 때처럼 몸의 힘이 종이 위로 뻗쳐나갔다. 안중근은 글씨 쓰기가 쑥스러웠지만 불편하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우덕순과 만나 카지노 게임 사이트를 쏠 때까지 며칠 동안 많은 실수와 불비가 있었다. 그것들이 하나라도 뒤틀렸다면 사업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어쩌자고 그렇게 허술했는지, 생각하면 진땀나고 숨막혔다. 잡히고 나니 돌아다닐 일이 없어서 남은 일들을 차분하게 정리해나갈 수 있었는데,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사형 집행일이 언제인지를 알고 싶어서 조바심났지만 옥리들에게 ‘언제 죽일 거냐?’고 물어보기도 어색했다. 재판 절차를 서두르던 것으로 보아서 집행은 그다지 멀지 않을 것이었다. 문명개화한 절차를 과시하면서 서둘러 사건을 종결하려는 일본의 기획은 처음부터 분명히 감지되고 있었다. 고등법원에 항소하면 여생의 시간은 다소 연장되겠지만, 길지는 않을 것이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사흘 후에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관의 논고와 변호사의 변론을 들으면서 안중근은 항소는 쓸데없는 짓이 될 것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배운 자들이 구사하는 지배적 언어는 헛되고 또 헛되었지만 말쑥한 논리를 갖추어서 세상의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검찰관과 변호사는 한나절씩 번갈아가며 길게 말했다. 신문기자들이 그 말들을 받아 적고 있었다. 안중근은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자리의 우덕순고 고개를 숙이고 졸고 있었다.

안중근은 고등법원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항소 포기의 뜻을 밝혔다. 안중근은 죽기 전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 형의 집행을 3월 25일까지 연기해달라고 고등법원장에게 탄원했다. 달력을 보니까 3월 27일이 부활절이었다. 3월 26일은 부활 성야(聖夜)를 맞는 신성한 날이므로 죽기에 합당치 않았다. 부활절에 죽을수는 없었고 부활절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죽어 있어야 부활의 은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안중근은 생각했다. 그래서 3월 25일은 죽기에 합당한 날들 중에서 맨 마지막 날이었다. 고등법원장은 안중근의 탄원에 대답해지 않았다. (P252-254)

구리하라 전옥이 집행을 선언하고 나서 안중근에게 말했다.

--할말이 더 있는가?

안중근이 대답했다.

--없다. 다만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르게 해다오.

구리하라가 말했다.

--허락하지 않는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머리에 흰 종이를 씌웠다. 안중근은 종이가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옥리가 안중근의 겨드랑을 팔에 끼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옥리가 안중근의 목에 밧줄을 걸고, 교수대 바닥을 밟았다. 바닥이 꺼졌고, 안중근의 몸이 허공에 매달려서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십일 분 후에 검시의(檢屍醫)가 절명을 확인했다. 안정근, 안공근이 감옥 문 앞에 와서 시신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구리하라가 옥리를 보내서

--불가하다.

라고 통보했다.

안정근, 안공근은 땅을 치며 울었다.

옥리들이 안중근의 몸을 마차에 싣고 가서 감옥 공동묘지에 묻었다. 하관 때 가는 비가 내렸고, 문상객은 없었다. 관동도독부는 집행 날짜를 25일로 정해놓고 있었으나 서울의 통감부가 25일은 한국 황제의 생일이므로 날짜를 바꾸어야 한다고 여순 감옥에 전보로 알렸다. 집행은 하루 연기되었다. 안중근은 3월 26일에 죽었다. (P276-27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