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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r 21. 2025

밧데리, 카지노 게임, 빠떼리아

< 라라크루 화요갑분글감

미국에 처음 간 것은 1991년 중3 겨울방학 때였다. 70년대 초에 이민을 간 고모와 고모의 초청으로 80년대 후반에 이민을 간 작은아버지가 계신 애리조나였다. 작열하는 태양과 선인장, 담벼락 없는 단층 주택, 마당 한가운데에 카지노 게임 수영장, 물건이 넘쳐나는 쇼핑몰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신기했다.


이후로도 여러 번 방문했고 대학생 때는 잡화점을 하는 작은아버지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드리곤 했다. 회계사, 간호사로 이민을 간 고모부, 고모와 달리 전문 기술이 없던 작은아버지가 할 수 있던 일은 LA에 카지노 게임 도매상에서 물건을 사 와 마진을 붙여 파는 일이었다. 가게에는 아이들 장난감부터 시작해 금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었다. 가게 안에 카지노 게임 물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갔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카지노 게임 조카의 등장은 삼촌에게 약간의 여유를 주었던지, 이따금 가게를 내게 맡기고 외출을 다녀오시곤 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파리 날리던 가게는 하필 내가 맡을 때마다 손님이 밀려들곤 했다. 실제 그랬다기보다는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낯선 나라에서 어눌한 카지노 게임 실력을 갖춘 이방인,판매 경험도 없고 심지어 물건이 어디 카지노 게임지도 잘 모르는 작은 동양 여자가 카지노 게임를 지켰다.가게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상 고객은 거의 저소득층이었으며 스웩 넘치고 몸집 큰 흑인과, 영어를 못하거나 묘하게 다른 발음으로 말카지노 게임 멕시칸들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새벽 종로 YBM을 다니며 갈고닦은 영어 실력으로는 감당이 안 됐다. 특히, 작은아버지도 없는데 여러 명의 손님이 몰려와 금 장신구를 보여달라고 하면 바짝 긴장이 됐다. 작은아버지는 눈 깜짝할 새에 도난당할 수 있다며 "반드시 한 번에 하나씩만!"이라고 강조하셨지만 작정하고 온 사람들은 허술해 보이는 나를 계속 흔들어댔다. 이것도 꺼내달라, 저것도 꺼내달라 끊임없이 요구하다가 한 번에 하나씩만 보여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카지노 게임 내게, 입에 담을 수 없고 글로도 옮길 수도 없지만 영어 실력이 부족한 외국인의 귀에도 쏙쏙 박혀 아직도 정확히 기억나는 엄청난 욕을 하고 사라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장 잘 팔리는 것은 장난감이었다. 실감 나는 소리가 나는 기관총이나 뉘어놓으면 우는 갓난아기 인형, 회전하는 앙증맞은 물고기를 더 앙증맞은 자석 낚싯대로 잡는 낚시 놀이 등 소리 나고 반응하는 장난감들이 잘 팔렸다. 그러니 장난감을 팔면서 카지노 게임를 함께 팔아야 하는 것은 장사꾼의 상술을 넘어서는 예의이자 배려였다. 문제는 언어였다.

"Do you need batteries?"

이 간단한 영어가 잘 통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었다. "배러리?" "밧데리?" "카지노 게임?" 몇 번을 바꿔가며 말해도 잘 못 알아듣던 상대는 어느 순간 눈을 반짝이며 "오~ 빳데리아!"라고 답했다. 이후로 나는 멕시칸 손님들이 오면 문법이고 발음이고 다 날려버리고 "빳데리아?"라고만 물었다. "우노, 도스, 뜨레스, 꽈또르.." 같이 기본적인 숫자 세기와 "그랴샤스~"(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 정도는 익혀두었다. 미국에 있는 두어 달 동안 영어는 거의 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국인인 나와 미국 내에서 이방인 취급받는 이들과의 소통은 값진 기억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나라의 사람이 소통하기 위해 상대의 언어를 익힌다. AI가 발달해 통·번역이 수월해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직접 소통, 원활한 소통을 갈망한다. 나 역시 오랫동안 손 놓았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매일 20분 정도를 할애해 듣고 말하고 읽고 쓰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우연히 멕시칸 사람을 만난다면 밑도 끝도 없이 이 단어부터 떠올릴 것이다.

"빳데리아?"

어쩌면 내게 "빳데리아"는 "안녕? 잘 지냈어? 반가워~"와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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