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 시동생, 그리고 친구
새벽 1시 17분, 전화가 걸려온 후부터 내 옆에서 잠못이루던 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나에겐 친정 엄마. 갑자기 부고 소식을 전해온 작은 아빠에겐 형수. 하지만 엄마에게 작은 아빠는 시동생 그 이상. 작은 아빠에게 엄마는 형수 그 이상의 존재였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부여받은 법적인 관계를 넘어서말이다.
각자의 가정 속 테두리 안에서 누구보다 묵묵하게,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던 사람들.늘많이 배려했지만싫은 소리도 많이 감내하던 이들. 올곳은 심성이 때론 약점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 하나쯤 손해 보고 말지..." 하던 두 사람.
하지만 이제 와서야 환갑이 넘은 엄마는 "내 마음이 이제는 고작 대추씨알만큼이야."라고 고백했고. 한 살 차이로 역시나 환갑을 넘은 작은 아빠는 여전히 멀리 내다보는 눈으로, 깊이 꿰뚫어 보는 혜안으로, 우직하게 행동하는 발빠름으로, 베풀면서, 늘 손해 보고 살았다. 어쨌거나 결은 무척 달랐지만 둘 다 좋은 사람이었다.
한국에선 친정 아빠와 동생을 돌보다, 독일로 넘어가서 손주들을 돌보았던 친정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3개월 여행 비자 만료로 인해 한국에 들어왔다. 여러 연유들로 인해 친정 아빠이자 본인의 남편 장례식장엔 못 갔지만 자신을 돌볼 틈도 없이 유족으로 남은 살림 정리에 나서야 했다.
안심 온라인 카지노 게임 원스톱 서비스로 국세 정보를 조회했다. 하지만 원스톱 서비스라는 단어가 주는 빠릿빠릿한 느낌과는 다르게 조회 후, 처리 절차는 까다로웠고 동선은 번거로웠다. 가장 닮은 성향의 첫째 딸인 나와는 전화 통화하는 것에서부터 딱히 매끄럽지가 않아서 그랬는지... 수많은 관공서와 은행, 증권사, 보험회사들을 돌기엔 공사다망한 딸이어서 그랬는지... 몇 군데를 제외하곤 대부분을 엄마 혼자, 자전거로 돌았다. 피온라인 카지노 게임인인 세 딸들의 인감 증명서와 가족 관계 증명서를 비롯해 수많은 종이들을 담은 배낭을 짊어지고서 자전거로 하루에도 몇 십 킬로를 달렸다.
하지만 엄마가 공무원 연금수령자라는 이유로 아빠의 연금은 총금액의 30%만 지급되는 것으로 대폭 삭감되었다. 자녀의 질병에 한해 15%가 더 지급될 수도 있다 안내하였지만 병상의 아빠가, 또 다른 병상의 자녀에게 금액적으로 지원했던 내역을 통장에서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애당초 온라인 카지노 게임의 연금은 아빠의 그것에 비할 만큼도 아니었던지라 노후 자금으로 기대할 것은 아빠의 연금이었건만... 결론적으론30%만큼의 연금만 수령하는 꼴이었다.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그 과정에서 온라인 카지노 게임가 또 다른 병원에 있었던 그 기간을 서류로서 증명해야 했다.돈도 돈이었지만 자녀의 질병과 그간의 고생을 설명하면서 마음은 마음대로 미어졌을 테다.
보험회사는 손해사정사를 고용해 병명 속 단어 하나를 트집 잡았고. I코드라는 알파벳 하나를 이유 삼아, 지방의 온라인 카지노 게임를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까지 기어코 다녀오게 했다. 일부 보험금이 지급되었지만 입원 관련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온전히 보상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돌고 돌았건만 예상했던 바와 같이 온라인 카지노 게임받을 재산은 많지 않았다. 수익 중이던 몇몇 종목들은 3개월에 1,700만 원어치 약값들을 계산하느라 속속들이 매도했던 탓에... 마이너스 굴 파고 있는 몇몇 종목들만 넘겨받았다. 손절하기에는 아깝고, 평단을 맞추기엔 애매한 그런 비실비실한 종목들만 엄마의 주식 계좌로 기어들어왔다.
그래도 온라인 카지노 게임절차가 대부분 진행되고 유품 정리만이 남았던 어느 날. 온라인 카지노 게임는 아빠의 모든 옷을 태우고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대신, 몇 번 안 입은 브랜드옷들은 온라인 카지노 게임와 작은 아빠가 나눠서 마저 입겠노라 이야기했다.
내 눈에 봐도 새 옷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깨끗한 브랜드의 옷. 유행도 타지 않아 제법 쓸만한 옷들이었다. 어디에서 그 모든 옷들을 태울 것이며, 가뜩이나 기후 위기가 심각한 판국에, 옛날에의 유품정리 방식은 옳지 않다고 하며 잘 생각했다고 말해주었다.
만약 엄마에게 샤넬이나 디올, 불가리 같은 브랜드의 옷과 주얼리들이 있거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유품을 받아 간직하겠노라 우스갯소리까지 했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잔스포츠 느낌 꽃배낭을 메고 내달리는 엄마에게 샤넬백이나 디올 스카프, 불가리의 주얼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우스갯소리를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건만... 오전에 걸려온 전화에선, 사고 현장에 옷만 온전히 남아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왔다. 또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49재를 끝으로, 막을 내렸던 '이상란 나라의 장례식 단막극장'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장 흠결도 없고, 적도 없던 '사람 좋기만 한 게 큰 흠이라면 흠일' 그런 좋은 분의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